음식의 연대기

 

음식을 혐오했다. 몸이 살아가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겼다. 어릴 때부터 밥상 앞에서 시원스럽게 먹지 않았다. 된장찌개에서 파를 골라냈고 생강 양파는 입에 대지 않았다. 향이 독특한 오이는 일찌감치 비호감 야채로 멀리 했다. 고기 국물 위에 둥글게 떠 있는 기름기에 거부감을 느꼈다. 라면을 끓여도 기름 방울이 비치면 입맛을 잃곤 했다. 어머니로부터 “입이 짧아서 걱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버지가 즐겨 먹던 삼겹살은 난감했다. 고기 구울 때 나는 노릿한 냄새가 역겨웠다. 이리저리 튀는 돼지기름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물질이었다. 물컹물컹한 비계에 비위가 상했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상황에는 젓가락으로 비계를 잘라내고 살코기를 골라 먹었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 눈치를 보며 비계를 피하는 일이 곤혹스러웠다.

 

십대 시절 고향 영천에서 즐겨 먹은 음식 삼대장은 삼송만두, 할매떡볶이, 경주황남빵이었다.

 

삼송만두는 고구마 같은 군만두였다. 금방 튀겨 내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한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컸다. 냅킨을 조금 뜯어 손가락에 대고 만두 꼬리를 잡아 아이스크림처럼 세워서 먹었다. 젓가락으로 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장을 집어 만두에 올렸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만두 냄새와 새콤한 양념장 맛이 어우러졌다. 1인분이 6개였는데 알뜰하게 먹으면 포만감을 느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기름기 섞인 구수한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떡볶기는 ‘할매분식’이 자랑하는 간판 메뉴였다. ‘할매분식’은 영천교 다리 근처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했다. 이른바 ‘할매떡볶기’는 화끈한 매운맛과 푸짐한 양으로 영천 청소년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좌석이 많아 친구들과 우르르 달려가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름은 떡볶이였으나 달큰한 고추장 양념 아래 뒹구는 달걀, 어묵, 쫄면이 더 매혹스러웠다. 알에서 덜 깬 어설픈 어린 것들이 나누는 맵고 달달한 이야기가 넓적한 냄비 위로 흩날렸다. 남은 양념이 아쉬워 숟가락으로 알뜰히 닦아 먹다가 선배 누나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경주황남빵’ 가게는 영천에서 가장 큰 ‘덕일문구점’ 옆에 있었다. 새 학기에 문구를 사러 가면 옆집에 들러 빵을 사먹었다. 황남빵을 먹으면 입과 목구멍 언저리가 부드러운 단맛으로 가득했다. 풍성한 빵 안에 단팥 앙금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먹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경주에서 파는 원조 황남빵보다 배나 컸다. 중학교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라 자주 빵을 덤으로 주었다. 그래서 후덕하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식사가 고난이었다. 아침은 요거트로 때우고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했다. 설렁탕, 칼국수, 육개장, 된장찌개, 짜장면이 주 메뉴였다. 그저 허기를 채웠을 뿐 기억에 남는 음식이 없었다. 집에서는 라면밖에 끓여 먹지 않았다. 한 끼 먹는 게 번거롭고 힘들었다. 차라리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다.

 

20대 후반 아내를 만나 호주로 이민 오면서 식생활의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활달한 식성을 가진 아내는 음식을 만들면 손이 컸다. 자기는 넉넉한 마음이라고 했으나 내 눈에는 양 조절 무능으로 보였다. 맛은 몰라도 양은 무조건 풍성했다. 집에서 모임이 끝나면 손님에게 남은 음식을 싸주는 걸 자랑으로 여겼다. 나는 시골에서 쌀 한 톨 버리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문화에서 자랐다. 남은 음식을 먹다 못해 상해서 버리면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랐다. 음식을 두고 자잘한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졌다.

 

28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남편과 아내 사이의 차이는 전혀 좁아지지 않았다. 아내는 여전히 양이 넘치게 음식을 한다. 나는 식생활에서 아예 아내로부터 독립했다. 현미, 기장, 팥, 콩, 귀리를 볶아 두었다가 조금씩 끓여 먹는다. 마늘쫑, 장아찌, 부추김치를 직접 만들어 반찬으로 곁들인다. 30분이면 끓이고 먹고 설거지를 마치기에 충분하다. 과식을 조장하는 아내의 요리는 중년 남편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식생활이 분리되면서 음식을 두고 싸울 일이 없어졌다. 다른 가족은 몰라도 내가 생존하는 데 낭비하는 음식은 영에 가깝다.

 

이제 나에게 음식은 필요악이 아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소중한 먹거리다. 흔하지 않고 풍부하지 않아 더욱 기특하고 갸륵하다. 한 톨도 헛되이 버리지 않고 꼭꼭 씹어 모든 생명의 기운을 흡수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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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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