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나비매듭 속 흰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적혀진 1664는 슈퍼, 카페, 길거리, 시골주점 어느 곳이든 프랑스 서민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숫자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좋은 유명한 프랑스 맥주브랜드이다.
크로넹부르(Kronenbourg, 이하 크로넨버그로 표기) 1664는 올해 창립 350주년을 맞이하여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국내외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제공용어 ‘메이드 인(Made in)’은 각국의 산업 및 경제척도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품격도 대변한다. 프랑스인들 스스로가 ‘메이드 인 프랑스’에 자부심을 지니는데, 크로넨버그 1664도 프랑스 제품이 지니는 이미지와 품격을 바탕으로 마케팅전략에 나서겠다는 취지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유럽이 심각한 제정,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프랑스 경제도 건강하지 못한 편이다. 중소제조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실업률 증가로 경제에 붉은 신호등이 켜짐에 따라 프랑스 제품 애용운동마저 생겨나고 있다.
2012년 10월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을 내건 시사주간지 파리지앵 창간호의 표지모델로 몽트부르 현 경제부장관이 블루와 백색 줄무늬 ‘마리니에르(marinière)’ 티셔츠 차림으로 포즈를 취하여 당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선원복장에서 착안된 일명 ‘마리니에르 룩’으로 세계적 패션을 낳은 아르모르-뤽스(Armor-Lux)는 브르타뉴지방 켕페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메이드 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의류제조업체로 손꼽힌다.
작년 11월 환경세와 과중한 세금, 실업률 증가에 반발하여 켕페르에서 ‘붉은 모자(Bonnet rouge)’ 시위운동이 일어났을 때, 시위자들에게 붉은 모자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진 아르모르-뤽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돌려졌었다. 시위자들의 붉은 모자가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아르모르-뤽스는 켕페르 시위에 모자 1만개를 주문받았으나 단시일에 제조할 수 없어 이웃 스코틀랜드 지사로부터 긴급조달을 받았노라고 해명했다. 문제의 붉은 모자들이 결국 ‘메이드 인 스코틀랜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잠재워졌는데, 프랑스 브르타뉴사람들과 스코틀랜드인들이 같은 켈트족으로 ‘이웃사촌’이나 다름없는 이유에서였다.
아르모르-뤽스 제품도 40%만이 프랑스에서 제조되고 있는데, 고가의 명품브랜드를 제외하고 프랑스 국내시장에서 ‘메이드 인 프랑스’ 제조품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몽트부르 장관이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출전하는 프랑스축구대표단의 유니폼이 태국산 제품에 미국브랜드라고 비난하며 국가대표단은 ‘메이드 인 프랑스’ 유니폼을 착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이드 인 프랑스’를 자랑하는 프랑스 최초의 맥주제조업체 크로넨버그는 알자스지방 스트라스부르의 거리 크로넹부르(Cronenbourg)에서 탄생됐다. 1664년 6월 9일 제롬 아트(Hatt)가 거리이름으로 맥주공장을 설립했는데, 크로넨버그의 첫 알파벳 C가 K로 바꿔진 것은 1947년 이후이다.
크로넨버그가 생산한 ‘티그르 보크(Tigre Bock)’는 1920년대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즐겨 마셨던 맥주브랜드라고 한다. 크로넨버그가 창립년도에서 따온 1664를 새로운 브랜드로 탄생시켜 맥주문화에 획을 그은 것은 1952년, 이후 ‘메이드 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크로넨버그는 350년 동안 프랑스맥주문화를 주도하면서 제품포장디자인에서도 취급과 보관이 용이하며 심미적으로 혁신을 가져왔다. 1949년에 맥주를 작은 병에 담아 판매했으며, 1953년에는 캔 맥주를 고안해냈다. 2000년에는 알코올이 없는 맥주를 시판, 맥주가 술이라는 개념보다는 목이 마를 때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수라는 이미지로도 변환시켰다.
1664는 포도주처럼 ‘블랑’, ‘로제’, ‘프리미엄’ 등 다양한 색깔과 맛을 선보이는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개발해내고 있다. 요즘에는 프랑스인들이 쓴맛보다는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추세이며 달라지는 입맛을 감안하여 새로운 맥주 맛을 선보일 것이라고 1664 홍보팀에서 밝혔다.
사실상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와인과 달리 맥주는 서민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편이다. 맥주를 많이 마시면 뚱뚱해진다는 선입견도 있다. 이러한 맥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크로넨버그 1664는 격조 높은 분위기와 현대적인 감각이 가미된 맥주로서 식사와 곁들여 마시는 주류로 이미지 변신을 추구하며 동시에 프랑스적인 맛과 전통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2013년에 프랑스 맥주시장이 15% 세금인상과 더불어 찬바람이 불었고, 크로넨버그는 브르타뉴지방 렌느 제조공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하이네켄 등 전 세계적으로 약 5백여 맥주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1664는 프랑스국내시장 점유율 30%로 1위를 차지하며 작년 매상고는 약 9억32백만 유로에 이른다는 통계이다.
크로넨버그는 1977년까지 가족형 기업체로서 아트 가족이 운영해왔으나 2008년에 덴마크그룹 칼스버그 사에 합병됐다. 바로 여기에서 1664가 맛과 즐거움에 혁신을 가하며 ‘메이드 인 프랑스’의 지존을 살리겠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1664 맥주는 지속적으로 스트라스부르 근처 오베르네(Obernai) 제조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며, 이곳 직원은 7백여 명으로 1년에 약 7억 리터를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메이드 인 프랑스’ 마케팅 전략으로 올 6월 창립 3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프랑스 가족형기업체의 역사를 담은 책자출판과 더불어 다양하고 대대적인 홍보행사도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