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은 지난 4월 16일, 고등학생 수학여행단을 포함 476명이 탑승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를 특보로 전한 이후, 구조현황과 이에 관련된 한국소식을 연일 주요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피가로지 등 주요일간지들은 물론이고 국내 지방소식에 치중하는 일간지 웨스트프랑스도 세월호 침몰사고를 1면 기사로 다루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웨스트프랑스는 4월 25일자에서 ‘선장과 15명의 선원 전원구속’이라는 제목으로, 4월 28일자에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표명과 함께 고개 떨군 그의 사진을 내보냈다.
이처럼 지구촌이 한국의 국가적 재난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얼굴 없는 억만장자’로 알려진 사진작가 ‘아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하면서도 여객선 실소유주가 루브르와 베르사유궁전에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했던 사진작가 ‘아해’라는 사실을 전하는데는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는 편이다.
반면 일간지 라크르와(la-croix.com)는 4월 27일자에서 촛불을 켠 조문행렬을 담은 사진과 함께 ‘침몰여객선의 파렴치한 소유주’라는 제목으로 ‘아해’의 정체를 자세하게 고발했다. 20만 신도를 둔 사이비종교 교주로서 신도들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1980년대 32명 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에 연루된 혐의, 1992년에 징역 4년 실형선고 등 ‘과거가 미심쩍은 사업가’가 다름 아닌 ‘아해’라고 설명했다. 이 일간지는 2013년 8월 29일자에 이미 louvrepourtous.fr 사이트를 통해 ‘얼굴 없는 억만장자’가 재력의 힘을 빌려 루브르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장소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다고 고발한 베르나르 아스끄노프(Hasquenoph)의 글을 인용, ‘아해’는 ‘억만장자 아마추어 사진가(un milliardaire photographe amateur)’라고 표명했다.
‘아해’는 2013년 6월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도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베르사유궁전 관장 카트린 페가르(Pégard)는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통해 ‘아해’가 베르사유궁전의 오랑쥬리(L’Orangerie)관을 대여하면서 후원금을 기부했음을 공식 시인했었다. “액수는 비밀이며 관례상 밝히지 않는다”고 덧붙이면서 “건축물로서 걸작이나 다름없는 오랑쥬리관을 (아해의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사실 ‘아해’의 개인전을 계기로 오랑쥬리관은 10년 만에 일반대중에게 문을 열었던 터이다. 페가르 관장은 ‘아해’의 작품이 오랑쥬리관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11년 베르사유궁전 신임관장 임명을 둘러싸고 프랑스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일었던 편이다. 페가르 신임관장이 예술문화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부기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시사전문주간지 ‘르포엥’지의 기자였다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정치고문으로 발탁된 후 엘리제궁에서 다시 베르사유궁전으로 옮겨진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에 휩싸인바 있다.
올 여름 베르사유궁전은 정원분수대(Théâtre d’Eau)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음악과 조명이 첨가되는 분수축제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일간지 라크르와에 따르면, 이 보수공사에 ‘아해’가 후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 예술가와 사이코패스의 차이
세월호 여객선의 실소유주와 그 측근에 관련한 비리를 밝혀내는 것은 한국검찰청의 임무이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사진작가 ‘아해’와 관련하여 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아해의 사진을 진정한 예술차원에서 작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취미활동에 집착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이기적 산물로 간주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진작가 ‘아해’의 가면이 벗겨진 이후, 그의 사진들이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는 점이다.
사진전문가라고 밝힌 한 저명 블로거는 “사진의 작품성을 떠나 그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쓰레기 취급받는 것이 마땅하다” 고 밝혔다. 바로 여기에서 각 예술인이 지녀야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 없는 억만장자’가 ‘돈의 힘’을 빌어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장소에서 거나하게 개인전을 열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돈’과 ‘인맥’ 없으면 출세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풍경 사진들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 얼룩진 짙은 어두움이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담은 풍경사진들 이면에는 안타깝고 순진무구한 죽음들, 부패와 비리의 그늘이 너무나 짙게 깔려있는 것이다.
일간지 라크르와가 4월 27일자 디지털판에서 밝혔던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혈안이 된 아마추어”에게서 일종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이기적인 모습마저 엿보게 된다. 천재라는 환각에 빠진 화가가 자기만의 독특한 붉은 색감을 추구하려다 살인까지 감행하는 엽기적인 추리소설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라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작은 시골마을에 도착한 수사관은 우연히 화방 앞을 지나다 진열장에 걸린 화폭으로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바다를 붉은 색으로 칠한 기이한 풍경화로, 그림에 문외한인 수사관의 눈에도 붉은 색감이 예사롭지 않은 화폭이었던 것이다. 차츰 수사가 진행되면서 마을에서 괴짜로 소문난 유명화가에게로 초점이 맞춰지고, 결국 그 기묘한 바다 색깔은 물감이 아닌 인간의 피라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수사는 종결된다. 이 사이코패스의 광기는 바로 붉은 색감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시단에 깊은 영향력을 미쳤던 시인이자 화가였던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년)는 이성에 통제받지 않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철저하게 탐험하고 실험하고자 10년 동안 환각제를 사용했다. 환각제 메스칼린 효력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 감각과 이미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천재성의 광기를 맛보고자 했다. 앙리 미쇼는 오늘날에도 문학성을 인정받아 대학에서 지속적인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천재와 광기는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이다.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얼굴없는 사진작가 ‘아해’의 실체가 드러났고, 그가 4년여에 걸쳐 매일 2, 3천장씩 찍었다는, 그 집요한 집념의 산실인 수많은 사진들에 대한 재평가는 다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베르사유궁전이나 루브르박물관 측에서 ‘아해’의 실체를 알게 된 지금,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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