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봉원사 설날부터 시행
세계문화유산 '영산재'도 특별봉행
Newsroh=정현숙기자 newsroh@gmail.com
해외동포들을 위한 전통사찰가정제사 프로그램이 한국의 유서깊은 사찰에서 시범 운영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한국불교 태고종 총본산 봉원사(주지 운봉스님)는 18일 ′전통사찰가정제사′를 해외동포들의 추모문화와 연계하여 2018년 설 명절 차례를 시작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사)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와 ㈜아마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바쁜 현대사회생활과 가정형편상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힘든 가족들을 위해 시대흐름에 맞게 개선한 ′전통사찰가정제사′이다.
국내에서는 종교문제와 핵가족, 재혼가정 등 가족공동체의 변화와 경제적 불안 등으로 집안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일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해외동포들은 이민환경과 문화적 이질감 등으로 모국의 추모 문화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천년사찰 봉원사에서는 가정제사프로그램을 통해 부모와 자녀세대가 소통하고, 조상을 섬기며, 해외동포들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평안한 안식을 가져오는 제례행사로 자리매김할 방침이다.
가례(家禮)를 지키는 전통사찰제사로 모국의 그리움과 영원한 안식을 함께하다.
제(재)례는 매월 음력 초하루 날 당월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지내는 합동기일제사 및 명절(설/추석)차례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봉행하며 기간은 3년, 5년으로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추가로 연장 할 수 있도록 했다.
제사 상차림은 불교의례인 육법공양과 일반인도 선호하는 음식으로 하고, 바라춤, 나비춤, 북춤, 국악(대금) 등이 함께하는 유/불교 제례의식으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한다.
특히 봉원사는 이번 문화사업에 참여하는 각 가정의 평안과 국태민안을 위하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영산재를 기간 내에 특별 봉행한다고 밝혔다.
영산재(靈山齋)는 불기(佛紀) 약 2600년전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중생(衆生)이 모인 가운데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실 때의 모습을 재현화한 불교의식이다.
부처님 당시의 영산회상을 도량에 꾸며 망자(亡者)로 하여금 해탈과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대중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모든 중생이 불법 인연을 짓고 업장소멸과 깨침을 주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이 영산재(靈山齋)는 범음(梵音)과 화청(和唱)등의 불교 음악에 맞추어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추고 삼현육각(三鉉六角), 호적, 취타 등의 각종 악기가 동원되어 장엄한 불교의식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현하고 있다.
영산재는 대한민국국가무형문화재 제 50호(大韓民國重要無形文化財 第 50號) 봉원사(奉元寺) 영산재보존회(靈山齋保存會)가 봉행하고 있으며 그 가치와 우수성으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봉원사는 “이번 사찰가정제사는 우선 기존 집안제사의 30% 비용밖에 들지 않아 경제적이며, 제사에 참여 못해도 전 과정이 실시간 또는 편집된 동영상으로 국내외에서 모바일로 볼 수 있도록 디지털의 편리함을 갖추었다”고 소개했다.
봉원사가정제사 윤영웅 사업본부장은 “이제는 가정제사도 의례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에 맞게 개선된 제사문화를 확대하고, 해외동포들의 평안한 안식을 위한 추모문화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선 시범사업으로 봉원사 1곳으로 시작하여 사찰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 1877-1194 문의하거나 웹사이트( www.homejesa.com)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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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천년고찰 봉원사 신라 51대 진성여왕때 창건
봉원사(奉元寺)는 신라(新羅) 51대(代)(서기 889년) 진성여왕(眞聖女王) 3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가 현 연세대(연희궁)터에 처음으로 지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태고(太古) 보우(普愚)스님이 중창하여 도량을 화려하게 조성, 당시 사람들로 부터 크게 찬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한산군(韓山君)이 이색(李穡)에게 명하여 태고국사의 비문을 짓게 하고 스스로 국사의 문도(門徒)임을 자처하여 봉원사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 5년(1396)에는 원각사(圓覺寺)에서 삼존불을 조성해 봉원사에 봉안했고, 태조 사후에는 전각을 세워 태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했다.
제14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전각이 소진됨에, 17대 효중 2년(1651) 지인(智仁)대사가 중창하였으나 동, 서 요사채가 다시 소실되어 극령(克齡), 휴엄(休嚴) 두 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제21대 영조 24년(1748) 찬즙(贊汁), 증암(增岩)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터전으로 이전,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奉元事)라 현액하였고, 신도들 사이에는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제22대 정조 12년(1788)에는 전국의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설치되었으며, 제25대 철종 6년(1856) 은봉(銀峯), 퇴암(退庵)화상 등이 대웅전을 중건했다.
제26대 고종 21년(1884) 발생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李東仁) 스님이 5년간 주석하였던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고종 31년(1894) 주지 성곡(性谷) 스님이 약사전을 건립하였으나 소실됐다. 1899년 인천 감옥에서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법명 원종)이 공주 마곡사를 떠나 서울 서문 밖 이곳 새절(지금 봉원사)에 머물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형세를 살폈다. 새절에서 인연이 닿은 사형(師兄) 혜정(慧定)스님과 동행해서 평양으로 가서 부모님과 해후했다.
1911년 주지 보담(寶潭)스님의 중수와 사지(寺地)의 확보로 가람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1945년 주지 기월(起月)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광복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8년 봉원사를 다시 방문하였다.
봉원사의 옛 모습 <봉원사 홈페이지>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 병화(兵火)로 광복기념관이 소진되었고 이때 영조의 친필 현판 등 사보와 이동인 스님 및 개화 파 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다.
1966년 주지 영월(映月)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소실된 염불당(念佛當)을 중건하였는데 이 건물은 대원군(大院君)의 별처였던 아소정(我笑亭)을 헐어 옮긴 것이다.
1991년 32세 주지 김성월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삼천불전 건립도중 대웅전이 소진됨에 즉시 중건을 시작하여 1994년 주지 혜경(慧鏡)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복원 낙성하였고 같은 해 1,100평 규모의 삼천불전을 새로이 건립했다.
2009년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세계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 4차 회의에서 영산재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11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고 2014년 7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 363호 아미타괘불도와 제 364호 범종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태고종의 총본산으로서 전법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대중은 50여스님, 신도는 10만을 헤아리며,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단청) 이만봉 스님과 제50호(범패) 영산재보존회에서 단청과 범패분야의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옥천범음대학, 불교교양대학이 있고, 신행 단체로는 관음회, 화엄법회, 청년회, 학생회, 인경회, 거사림 등 법회가 개최되며, 대외적으로도 교도소, 소년원, 양로원, 고아원, 군부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교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처 봉원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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