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황과의 우연한 조우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뜻밖의 반가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미대륙을 종횡으로 누비는 트럭커 황길재씨입니다. 뉴스로(www.newsroh.com) 필진으로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이라는 칼럼을 연재(連載)하고 있는데요.
제가 있는 샬럿에 왔다고 문자가 오지 않겠어요. 안그래도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에 배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요. 안올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린스보로는 샬럿과 약 2시간 거리인데 만약 온다고 했으면 가볼 생각이었어요.
왜 그렇잖아요. 같은 동네 살다가도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면 무지 반가운 것처럼. ^^ 하물며 뉴욕에서 샬럿은 차로 12시간 거리이고 저도 이곳에 잠시 있는데 매일 수백마일을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대륙의 트럭커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두어달전 황길재씨가 트럭커 연수를 받을 때 샬럿을 통과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도 샬럿에 있었는데 황길재씨가 샬럿 다운타운을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라구요. 바로 연락을 했더니 이미 애틀랜타 방향으로 한참 가고 있는 중이더군요.
당시엔 트레이너인 네이슨(Nathan)과 동행하며 솔로운전을 위한 노하우를 익히는 TNT(Trainer and Trainee) 과정이었지만 이젠 솔로 드라이버로 일을 시작한 터라 더욱 특별한 만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셀폰 문자를 살펴보니 샬럿에 왔다고 하더라구요. 찍어준 주소를 검색하니 8마일(12km) 밖에 안되는 아주 가까운 곳이더군요.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원래 맥주 컨테이너를 그린스보로에 배달하는건데 짐을 내리는 곳이 너무 좁아서 안올까 하다가 경험삼아 그냥 온거에요. 그런데 물건을 내리다 트레일러 끝쪽이 파손돼 고치러 왔다고 하더군요.
황길재씨가 회사인 프라임에 연락했더니 샬럿 인근에 트레일러 수리하는 곳을 알려줬는데 마침 제가 있는 곳과 아주 가까웠던거죠. 파손 사고가 난 것은 안좋은 일이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큰 사고가 아니었고 덕분에 이렇게 반가운 만남을 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죠.
샬럿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77번 도로를 타고 네비가 시키는대로 로컬길로 빠졌습니다. ‘트윈트레일러’라고 간판이 달려 있는 야적장(野積場) 같은 곳인데 100여대는 넘는 트레일러 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황길재씨는 덥수룩한 턱수염에 야성미 넘치는 트럭드라이버가 돼 있었습니다. 미국 이름으로 불러볼까요. 트럭커 필 황..^^
올 3월초 트럭 일을 시작하기 위해 뉴욕을 떠나기 직전 플러싱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나고 근 5개월만의 조우(遭遇)였습니다. 사실 그때만해도 이렇게 빨리 트럭커로 자리 잡을줄은 몰랐습니다. 그간의 과정은 뉴스로 칼럼을 통해 세세하고 생생하게 연재된터라 며칠전까지 만나던 사람을 다시 본 것처럼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솔로 운전을 하면서 처음 배정된 트럭 ‘히마찰’도 다정하게 보였구요. ‘히마찰(Himachal)’이란 이름은 인도 북부의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서 따왔습니다. 인도 히말라야의 성자(聖者)들이 많이 사는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주석(駐錫)하는 다람살라가 바로 히마찰 프라데시주에 있습니다.
사실 황길재씨의 이력(履歷)은 남다릅니다. 제가 황길재씨를 처음 만난 건 10년전쯤 뉴욕의 유일한 라디오방송이었던 ‘라디오코리아’ 보도국장으로 일하던 시절이었어요. 지인으로부터 좋은 기자 재목이 있다고 추천을 받아 면접을 하게 되었지요.
이력서를 받고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다채로왔습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했고 사회에 나와 영화감독. 프로듀서, 연극배우로도 활동했고, IT기업에서도 근무한 IT전문가요, 정신세계수행자로 인도에서도 1년 가까이 생활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보도국에서 인연을 맺고 저는 2010년 ‘뉴스로’ 창간을 하면서 독립을 하였습니다. 황길재씨는 2년정도 후에 사직을 하고 뉴욕의 옐로캡 드라이버로 또다른 삶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뉴욕의 움직이는 아이콘’으로 불리는 옐로캡의 세계를 좀더 가까이 할 수 있었구요. 한인으로는 보기드문 옐로캡 드라이버 황길재씨를 몇 번 인터뷰했고 팟캐스트 ‘노창현의 뉴스로뉴욕’을 통해서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황길재씨는 초등학생인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륙을 누비는 트럭커의 삶을 꿈꾸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옐로캡을 하며 틈틈이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도 운영하는 등 언론인으로서의 삶도 병행하면서요.
그런데 몇해전부터 우버와 리프트 등 차량공유서비스가 등장하고 1~2년전부터는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옐로캡 드라이버들이 직격탄을 맞고 말았습니다. 뉴욕의 옐로캡은 우버 시대가 열리기 전만 해도 메달리온(면허) 가격이 최고 100만 달러를 홋가하는 등 재산가치가 컸습니다.
소유주들은 이재(理財)에 밝은 유태계들이 많은데요. 메달리온 택시를 많이 보유하고 기사들을 고용하거나 임대하는 식으로 돈을 버는데요. 황길재씨 경우는 메달리온 한 대를 소유한 한국인 한분과 2교대로 나눠서 근무하는 식이었습니다.
블랙캡이나 그린캡 등 다른 택시들은 맨해튼 외부에서 승객을 태우고 들어와 내려줄 수는 있어도 맨해튼에서 태울 수는 없기 때문에 옐로캡은 사실상 독점 사업이 가능했어요. 임대 기사들도 벌이가 괜찮은 편이었지요. 하지만 우버와 리프트의 출현으로 이같은 독점사업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메달리온 가치가 급락(急落)하고 뉴욕의 택시기사들은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할만큼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황길재씨의 트럭커 입문은 결국 외적 환경으로 인해 본래 계획보다 4년 정도 일찍 시작하게 된 셈이지요. 아직은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둘째가 있고, 한번 일을 떠나면 2,3 주는 집에 들어오기 힘든 근무환경으로 고민했지만 다행히 아내와 가족들의 이해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황길재씨의 애마(愛馬) ‘히마찰’에 올라가 봤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차를 타보는 순간입니다. 히마찰은 짐을 많이 싣도록 무게를 줄인 경량트럭이어서 조수석 자리도 없고 잠을 자는 슬리퍼 공간도 작은 편이었어요. 사수였던 네이슨이 주고 간 미니 냉장고를 조수석에 설치했으니 냉장고가 필 황 트럭커의 동반자인 셈입니다.
파손된 트레일러는 이곳에서 수리하도록 놓고 다른 곳에서 빈 트레일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멀리 가기는 힘들어서 근처에 있는 히코리 태번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다소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고 던킨에서 아이스 커피를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칼럼을 통해 그간 상식이 많이 늘었지만 대륙의 트럭커는 단지 시간에 맞춰 물건만 잘 배달하면 끝나는게 아니더군요. 차량관리부터 챙기고 딜리버리 전후로 따지고 계산해야 할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체력은 기본이요. 고독(孤獨)과 인내는 숙명(宿命)이구요. 그럼에도 중년의 나이에 언어와 문화적 불편을 딛고 과감한 도전을 하는 황길재씨가 새삼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참으로 많은 트럭들을 보게 됩니다. 바퀴가 열 개도 넘는 긴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단 트럭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는데 올트럭닷컴에 따르면 미대륙엔 무려 350만명의 트럭커들이 운행을 하고 있다는군요. 트럭킹 회사에 종사하는 수만 870만명이나 되구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가 도로를 누비니 광활한 대륙임에도 많은 트럭들을 만나는게 당연합니다.
미대륙에서 트럭의 존재는 산업과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실핏줄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트럭이 없다면 우리의 생활은 한마디로 엉망이 될 것입니다. 물론 트럭커들은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지만 황길재씨를 통해 그들의 어려움과 애환(哀歡)을 알게 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그가 전공을 살려 트럭커들의 삶을 영화로도 제작할 것을 기대합니다.
황길재씨는 지난 넉달간 네이슨과 동행한 것을 포함해 누적 운행 거리가 3만5천마일(5만6천km)이나 되었다고 하는군요. 미 대륙횡단거리가 약 5천km되는데 벌써 11번을 오간 셈입니다.
나중에 2인이 탈 수 있는 풀사이즈 트럭을 받게 되면 한번쯤 동행하기로 약속도 했습니다. 트럭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한번 지켜보고 그것을 뉴스로를 통해 소개할 기회가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대륙을 누비는 트럭커 황길재씨의 건승과 안전운행을 기원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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