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남들은 한 방에 잘만 하는 후진이 내겐 왜 그리 어려울까?
오늘은 여유롭게 푹 자다 오전 9시에 일어나 출발했다. 약속은 오후 1시 30분부터다. 출발 전에 트레일러 문을 열고 어제 주스 흐른 흔적을 닦았다. 아무래도 세차는 못 할 것 같다. 2시간 정도 걸려 화물 발주처인 오하이오 주 웰스턴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경비 아주머니가 트레일러 검사를 한다. 열어서 보여주니 오케이 했다. 다행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문한 것은 트레일러의 건조(乾燥) 상태다. 이 근처에서 트레일러 내부 세차를 했다면 그 시간까지 다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트레일러 퇴짜의 가장 큰 요인은 냄새다. 마지막 배달에 주스를 실었으니 냄새가 날리 없다.
“여기 전에 와 본적 있어요?” “아뇨 오늘 트럭 운전 사흘째예요.” “오마이갓. 행운을 빕니다.”
아주머니는 자세하게 안내를 해줬다. 그래도 나는 혹시 못 알아들은 것이 있나 싶어 들은 대로 반복하며 물어봤다.
주차하라는 곳에 트럭을 세웠다. 배운대로 했더니 큰 어려움 없이 주차했다. 사무실로 가니 드랍 앤 훅이다. 16번 닥에 트레일러를 대고 이미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다른 장소에서 연결해 싣고 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무리 없이 해냈다. 아무 사고 없이 세번째 트레일러를 내려 놓은 것이다. 앞의 두 트레일러야 미안해.
새로 연결한 트레일러에는 월마트로 가는 냉동 피자 2,587판이 실려 있다. 무게가 44,000 파운드가 넘는다. 거의 한계 중량이다. 이런 경우 트랙터 드라이브 휠과 트레일러 휠의 무게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어느 한 쪽이 한계 중량을 넘지 않아야 한다. 중량 측정소에 들어가 걸리면 막대한 벌금이다.
트럭을 평지에 세웠다. 이때는 브레이크를 모두 풀어 놓는다. 그래야 차량에 달린 저울이 제대로 작동한다. 만일을 대비해 운전석 문을 열어 둔다. 전에 네이슨과 다닐 때 트럭이 앞으로 굴러가 내가 잽싸게 타서 브레이크를 잡은 적이 있다. 두 휠의 무게 차를 계산해 텐덤 고정핀을 몇 개나 앞으로 이동할 지 계산한다. 공식이 있지만 대충 어림짐작으로 했다. 확인해보니 얼추 비슷하게 맞는다. 드라이브 휠에 무게가 조금 더 실렸지만 한계 중량 이하다. 이 정도면 좋다. 히마찰이 경량 트럭이어서 이런 점은 좋다. 콘도 트럭에 이 정도 중량을 실으면 오버되기 쉽상이다. 원래 경량 트럭이 만들어진 이유가 더 많은 짐을 싣기 위해서다. 차체와 화물 총 합쳐서 8만 파운드 이내라야 한다. 약 40톤 중량이다. 트럭이 가벼울 수록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운전해 가는데 또 메시지가 들어 왔다. 가까운 휴게소에 세웠다. 냉방 장치 세팅이 달라져 있다. 아까 프리트립 테스트를 했었다. 그걸 하면 세팅이 바뀌나 보다.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화씨 -1도. 섭씨 -18도 정도다.
다음 주유소까지는 8시간 정도 거리다. 시간 내에 갈 수는 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오후 6시 정도까지만 운전하고 쉬기로 했다. 너무 늦으면 주차 공간이 없을 지도 모른다.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는 편이 내게 좋다.
히마찰과는 날마다 호흡(呼吸)을 잘 맞춰가고 있다. 히마찰은 30만 마일 뛴 중고 트럭 답지 않게 엔진 소리도 부드럽게 잘 달린다. 인터내셔널 제품이라고 실망했던 게 미안할 정도다.
오하이오 - 인디애나 - 일리노이까지 왔다. 처음 트럭을 시작하기 위해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왔던 길이다. 그때는 지금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로드 레인저라는 트럭스탑에 멈췄다. 주차 공간이 100대나 된다. 듣보잡 주유소라 파일럿이나 러브, TA 같은 대형 주유소 체인보다는 한산할 것으로 기대했다. 입구에는 트럭이 다 찼는데 뒷쪽에 별도로 마련된 주차장은 한산했다. 그런데 여기도 사선(斜線) 주차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울 것 없는데 나는 사선 주차가 어렵다. 아무리해도 생각과 달리 각도가 만들어진다. 사선이라 착시 현상이 생기나? 결국 옆의 트럭 기사에게 뒤를 봐달라고 했다. 그는 후면 주차가 아니라 전면 주차를 한 상태였다. 믿어도 되나? 그는 그냥 봤으면 노숙자라 할 정도로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시하는대로 하니 제대로 주차가 됐다. 아까 시도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도대체 뭐지? 그는 내 주차를 도와주더니 트럭을 몰고 떠났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주위의 트럭 운전사가 모두 구세주다. 그야말로 예수요 부처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내 주변의 예수와 부처를 놔두고 교회와 절에서 기도로 찾아질 턱이 있나.
주차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니 트럭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리 주차하길 잘 했다. 이런 때 내가 헤매고 있으면 민폐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자리가 조금 남아 있다. 아마 다음 주유소까지 갔어도 자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자. 지금 내 실력으로는.
내가 후진이 힘들다 했더니 아내는 편해지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라 했다. 오는 겨울을 넘길 때까지도 고생할 각오를 하라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하겠지. 남들도 다 하는데. 그리고 약간의 위안. 나만 헤매는 것은 아니었다. 수련생이 운전하는지 누가 후진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 네이슨과 내 모습도 저랬을텐데. 그런데 그는 트레이너가 아니었다. 이후로도 다른 트럭들의 후진도 도와주고 있었다. 아 여기 예수가 또 계시는군.
내일은 일찌감치 출발해 시간되는데까지 멀리 갈 작정이다. 8일 중으로만 배달하면 된다. 거기서 프라임 본사까지는 두어 시간 거리다. 가서 냉장고 달고 부식거리 조달하면 한결 편히 움직일 수 있다. 굳이 트럭스탑에 가지 않아도 주차 공간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쉴 수 있다.
냉장고 찾아 삼만리
새벽 5시에 출발했다. 간 밤에 커피 탓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아 늦게 잠들었다. 더 잘까 하다가 일찍 가서 자기로 했다. 아직 어둡다. 서쪽을 향해 가느라 뒷편에서 여명(黎明)이 밝아왔다.
주유소에 도착했다. 리즈 드라이버들은 연료비를 자신들이 내기 때문에 회사에서 추천하는 주유소 아닌 다른 곳에도 갈 수 있다. 회사 네트워크 내에만 있으면 된다. 네이슨은 회사 앱으로 검색해 회사에서 추천하는 곳보다 더 싼 곳에서 주유했다. 나 같은 컴퍼니 드라이버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라는 곳에서 넣으면 된다. 그러다보니 특정 주유소 포인트 적립이 어렵다. 오늘 온 곳도 이 동네에만 있는 것 같다. 다음 번에 이 근처 지날 때 샤워하고 가야지.
주유기에서는 최대 65달러치 밖에 입력이 안 됐다. 다른 주유소에서는 못 보던 시스템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얘기하고 카운터에서 정보 입력한 후 밖으로 나와 연료를 넣었다. 130갤런 정도 주유했는데 금액이 500달러 정도 나온다. 명목상 금액이고 실제 회사에서는 이 보다 훨씬 할인된 가격으로 지불한다. 이름 없는 주유소치고는 주차 공간도 넓고 괜찮았다.
미주리 주에 들어선 이후 세인트 루이스를 지났다. 아침 시간이라 교통이 복잡할 줄 알았는데 별로 막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주말이다. 트럭일 하면 요일 가는 줄 모른다. 중간에 트레일러가 전소(全燒)된 현장을 지났다. 트레일러 화재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미주리는 의외로 언덕이 많다. 히마찰로 평지를 달릴 때는 편했다. 화물이 무거운 탓이지만 조금만 가파른 언덕에서는 힘이 딸려 저속 기어로 낮춰야 했다. 수동 기어로 언덕에서 변속하니 탄력 다 까먹고 기어갔다. 운전하기에 적잖이 고달프다. 나중에 록키 산맥 같은 곳은 어떻게 넘을까 상상이 안 된다.
혼자서 운전을 하다보니 평소 네이슨이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너무 빠른 속도로 회전하거나 진출로에 들어갈 때 트럭이 전복(顚覆)될까 겁이 났다.
원래 계획은 월마트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에서 쉬다가 내일 새벽 쯤 배달할 생각이었다.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스프링필드에 가서 오늘 냉장고를 설치하고 장을 본 다음 월마트에는 내일 가기로 했다. 월마트 가는 거리나 스프링필드 가는 거리나 비슷했다.
오후 2시쯤 스프링필드에 도착했다. 나로서는 고향집에 온 셈이다. 늘 네이슨과 오던 곳을 혼자서 오니 기분이 묘했다. 네이슨이 늘 하던 일을 기억했다가 그대로 했다. 들어올 때는 입구에서 기술자들이 항상 트럭과 트레일러를 점검한다. 그 다음은 세차장을 갔다. 트럭을 받고 세차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필요도 없었다. 금새 벌레에 더러워지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자동 세차가 됐으니까. 회사 내에서 하는 세차야 무료니까 안 할 이유가 없다. 오늘은 양아치풍의 아저씨가 세차를 하고 있었다. 그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었다. 세차를 마치고 나니 트럭이 더 더러워졌다. 인터넷 게시판에 회사 세차에 대한 불만글이 올라오던데 이것이었구만.
트레일러를 지정 장소에 떼어 놓고 밥테일로 디테일샵으로 갔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위치를 몰라 트레일러샵, 트랙터샵 다 돌아다녔다.
사무실에 들러 여직원에게 트럭번호를 알려주고 냉장고의 행방을 물었다. 기록이 없었다. 아담이라는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아담을 찾아 물어보니 그는 알고 있었다. 네이슨이 특별히 부탁까지 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문제는 내일 오후 6시에나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일은 월마트 배달가야 하는데. 공연히 오늘 여기를 왔나? 갔다가 다시 오려면 왕복 대여섯 시간인데. 아냐 내일 왔으면 당일 설치가 안 될 수도 있어. 오늘 온 것은 현명한 결정이야.
밀레니엄 빌딩에 들러 빨래를 넣고 샤워를 했다. 건조하는 동안에는 식사를 했다. 같이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던 청년을 만났다. 그는 피터빌트를 몰고 있었다. 리스로 갔나보다. 컴퍼니 드라이버는 프레이트라이너 아니면 인터내셔날이다. 얘기해보니 그는 이제 막 업그레이드를 하고 아직 솔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월요일 쯤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화물을 받을 것이라 했다. 한 번의 운행에 2천 달러 정도 받는다 했다. 리스 드라이버가 컴퍼니 드라이버 보다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비 내고 연료비, 톨비 등 제반 경비를 다 부담해야 한다. 차량 관리에 신경도 더 써야 한다. 리스는 어느 정도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회사 드라이버로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리스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중평(衆評)이다. 나도 어느 시점에서는 리스를 할 생각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다음 화물 제안이 들어왔다. 냉장고 때문에 못 받을 거 같은데. 자세히 보니 출발지가 스프링필드다. 약속시간은 내일 오후 6시30분부터 자정까지. 목적지는 오하이오 주고 배달시간은 10일 밤시간이다. 디스패처가 나름 신경 써 줬다. 오늘 자정에 월마트로 출발해 배달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돌아와 쉬었다가, 오후에 장 보고, 저녁에 냉장고 설치하고, 밤에 화물 싣고, 밤새 달린 후, 아침에 트럭스탑에서 쉬었다가, 저녁에 다시 달리고 하는 식이면 될 것 같다. 발송처가 회사에서 몇 분 거리다. 짐만 싣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에 떠나도 된다. 하지만 회사로 들어오고 나가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걸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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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녀 냉장고’를 부탁해
지금 내 옆 조수석에는 검은 피부에 자그마한 몸집의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속은 차다. 내가 원할 때 그녀는 자신을 열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내어 줄 준비가 돼있다. 그녀를 맞아 들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썼다. 그녀가 이렇게 위안이 될 줄 몰랐다. 그녀가 흔들리지 않도록 묶어둘 끈을 마련했다. 그녀의 머리에는 미세한 물결 모자를 씌웠다. 그녀는 비버를 좋아한다.
7일인 토요일 밤 11시, 나는 프라임 본사를 출발했다. 10시간 휴식이 끝나려면 자정이 넘는다. 8/2 split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8시간 침대 휴식을 취했으므로 어제 남은 운전 시간 3시간 30분을 사용할 수 있다. 월마트에 도착하면 2시간 휴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 이후로는 11시간 중에 내가 운전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이용 가능하다. 내일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아 서둘렀다.
회사를 나서며 저울을 달아봤더니 내 생각보다 드라이브 타이어에 무게가 더 실려있다. 그래도 한계 중량 이내다.
해리슨빌 월마트 DC까지는 2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다. 연결 도로에 들어선 이후에는 직선으로만 달리면 된다. 하지만 초장부터 낭패를 봤다. 고속도로 진출구로 나가 우회전 하는 순간 연결도로가 아니라 주택가로 들어섰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밤 운전의 어려움을 새삼 느꼈다. 밤에는 낮에 비해 시야 정보가 10% 정도 밖에 안 된다. 주택가에서 유턴은 상상하기 어렵다. 8차선 정도 넓이의 공간이 있어야 트럭 유턴이 가능하다. 꽤나 곤경에 처할 수 있다. 핸드폰을 꺼내 구글맵을 살펴봤다. 작은 도로가 있긴 한데 트럭이 다닐 수 있는 지 모르겠다. 시도해봤다.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리슨빌 월마트에 도착하니 1시 30분 경이었다. 앞에 다른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2시 조금 넘어 들어갔다. 드랍 앤 훅이었다. 입구 경비가 트럭을 세우라고 한 위치가 헷갈려 한참을 헤맸다. 결국 입구 초소(哨所)로 다시 돌아가 핸드폰으로 지도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다. 서류 작업 마치고 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한 후 2시간 휴식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본사로 돌아오니 오전 6시다. 트레일러 세척하고 지정된 장소에 떼어 놓았다. 밥테일로 본사 내부를 돌며 주차 공간을 찾았다. 디테일샵 앞에 자리가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금방 깼다. 피곤하지 않았다. 밀레니엄 빌딩으로 가 아침 식사를 했다. 냉장고 설치는 오후 6시 30분, 화물 인수는 오후 6시 30분부터 자정 사이. 낮에 필요한 물건 구입을 마쳐야 한다.
한인식품가게는 차로는 15분 거리지만 걸어서는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월마트까지 셔틀 버스를 타고 나갔다. 거기서는 1시간 15분 정도 소요. 한인식품가게 옆에도 약간 작은 규모의 월마트가 있다.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쯤 갔을 때 후회했다. 기온은 89도. 다행히 태양은 구름에 가렸다.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는 동안 맞은 편에서 오는 흑인 한 명을 만났을 뿐이다. 서로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스타벅스가 보였다.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냉커피 한 잔으로 더위를 달랬다.
월마트부터 들렀다. 구입 목록(目錄)을 적어갔는데 직접 보니 그 외에도 살 것이 많았다. 카트에 담았다. 그러다 내가 한 살림 장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 들고 갈 수도 없다. 다음에 사기로 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겼다. 그래도 많다. 150불 가량 나왔다.
한인식품가게에 들렀다. 전에는 백인 처녀더니 오늘은 흑인 청년이 가게를 보고 있다. 햇반, 김치, 김, 카레 등을 샀다. 청년에게 박스를 달라고 했다. 그는 친절했다. 우버 택시 타는 곳까지 짐을 같이 들어줬다.
우버 기사가 자신은 20년 트럭 운전 경력이 있고 2~3년 전에 그만뒀다고 했다. 원래는 입구에서 짐을 들고 옮길 생각이었는데 그가 트럭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줬다.
1시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가서 샤워를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게 좋다. 디테일샵에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가니 앞의 작업이 아직 덜 끝났다. 창고로 쓰는 트레일러에서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가져왔다. 조수석에 설치할 수 있도록 받침대를 바닥에 박았다. 고정끈은 내가 따로 사야했다. 진작 알았으면 월마트에서 샀을텐데. 일단 조수석에 싣고 화물을 받으러 나갔다. 본사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여기도 드랍 앤 훅이다. 마찬가지로 트레일러 주차 위치가 헷갈려 좀 헤맸다. 물건 싣고 나오니 9시가 넘었다. 다음 주유소까지는 6시간 정도 거리다. 일단 달렸다.
3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트럭스탑에 들르기로 했다. 심야지만 주차 공간이 100대가 넘는 큰 곳이라 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 아니더라도 냉장고 고박 끈은 살 수 있다.
놀랍게도 자리가 많았다. 밤이라 선이 잘 안 보여 후진 주차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 다른 트럭이 없는 널널한 곳에다 세우기로 했다. 몇 번이고 내려가며 뒤를 확인한 후 주차를 마쳤다. 여기서 10시간 휴식을 취하고 내일 출발하자. 일단 월마트에서 산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여 컵라면에 부어 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
내 트럭에도 프라이버시 커튼이..
어제 늦게 도착한 탓에 오전 11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네이슨이 먹던 방식이다. 식빵에 햄과 치즈를 끼우고 머스타드 소스를 뿌린다. 만들기 간단하고 맛도 제법이다.
2시간 조금 더 달려 주유소에 도착했다. 올 때 들렀던 주유소다. 오늘은 86갤런을 넣었다. 주유 후 트럭을 움직여 평지에 세웠다. 브레이크를 풀어도 트럭이 움직이지 않았다. 드라이브 타이어와 텐덤 타이어의 무게를 재봤다. 드라이브가 32.3, 텐덤 31 정도였다. 어제 평지도 아닌 곳에서 대충 맞춘 것 치고는 꽤나 정확하다. 이런 걸 당구 전문 용어로는 ‘후루꾸’라고 한다. 트럭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뭔가 물어보려는 다른 트럭커인줄 알았다.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내게 보였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 사진이었다. 자기 손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개스비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진부한 사기 수법이네 하고 말았을텐데 오늘은 달랐다. 만나는 모든 이가 예수요 부처라고 나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판단할 일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도울 수 있다. 나도 매일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처지다. 나는 지갑에서 약간의 돈을 꺼내 그에게 줬다. 큰 돈은 아니어도 트럭스탑에서 한 끼를 위해 내가 쓰는 액수보다는 많은 금액이다. 오늘은 트럭스탑에서 커피 한 잔만 사서 마셨으니 괜찮다. 천사나 예수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장발의 예언자(豫言者)가 아니라 거지나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누군가 다가온다면 유심히 살필 일이다. 혹시 예수나 부처가 아닌지.
배달 약속 시간은 내일 오후 9시부터 자정 사이다. 하지만 드랍 앤 훅의 경우 약속 시간은 대게 무의미하다. 이곳도 미리 배달을 해도 된다. 오늘 중으로 목적지까지 배달을 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밤 늦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로 운전 시간이 끝나버리면 낭패다. 무리하지 말자. 6시에서 7시 사이에 운전을 끝내고 쉬기로 했다. 오하이오 주 들어서 첫 휴게소에서 쉬자. 50대 정도 규모니 넓은 편이다.
그런데 그 휴게소가 폐쇄 중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다음 트럭스탑 중에서 120대 정도 규모로 넓은 곳을 목표로 삼았다. 진출로로 나오니 다른 트럭들도 여러 대 그쪽으로 향했다. 오후 7시 정도인데 90% 이상 자리가 찬 듯 했다. 유료 예약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여기도 45도 사선 주차다. 지난 번 낭패(狼狽)를 본 기억이 있다. 첫 번째 공간에서 후진을 시도하다 자꾸 엉뚱한 각도가 나오길래 포기하고 더 전진했다. 뒤에 다른 트럭이 기다라고 있어서였다. 조금 더 가니 자리가 한 곳 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내려서 빈공간 옆 탱크 트레일러 운전사에게 후진 시 뒤를 봐달라 했다. 그도 기꺼이 응하여 내렸다. 내가 초보자인데 어떻게 후진 셋업을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보통처럼 셋업하다가 트레일러 후미(後尾)가 여기 공간을 지날 때 쯤 멈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해봤더니 빈 공간으로 트레일러가 들어갔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사선 주차는 쉽다고 했다. 모든 후진은 각도의 문제라면서. 나도 언제쯤 쉬워보려나. 분명한 것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주차든 닥킹이든 후진은 결국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목표한 공간 내에서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TA에는 컨추리 프라이드라는 괜찮은 식당이 있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이 몰리는 것 같다. 나는 트럭에서 먹기로 했다. 돈도 아껴야 하고 기름진 음식이 물린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탱크 트럭은 앞 유리에 커튼을 쳤다. 아까 커튼 치기 전에 부탁하길 잘 했다. 트럭에 들어와 보니 히마찰도 프라이버시 커튼이 있었다. 그동안 그걸 모르고 전면 유리창을 열고 지냈다. 벙크룸에만 커튼이 있는 줄로 알았다. 나는 히마찰을 너무 몰랐다. 알아갈 수록 신기한 녀석이다.
햇반, 컵라면, 김, 김치로 저녁을 먹었다. 맛있다. 사 먹는 것 보다 백번 낫다.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 플렛베드를 하는 한인 한 분과 연결됐다. 부부가 같이 다니고 있다. 집도 뉴욕이라 실제 만날 수도 있을 듯 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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