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8년을 정리하는 각 과정의 시험이 이미 끝났거나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11월 말.. 어떤 학생들은 이미 길고 긴 여름 방학에 들어갔을 테고 또 어떤 학생들은 마지막 시험을 위해 아직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테지요.
방학. 분명한 정의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뒤져보니..
방학 (명사)
<교육>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주로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할 때 실시한다.
분명 사전적 의미는 수업을 쉰다고 되어있네요. 하지만 공부를 쉰다고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이, 저나 독자분들이 어릴 때 그러했듯이, 방학인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며 항변을 늘어놓기도 하고, 방학에 쉬지 않으면 또 다른 일년의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는 ‘인간능력 유한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길고도 길었던 한 해의 공부를 마치고 겨우겨우 찾아온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또 다른 공부의 연장으로 삼는다는것이 참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중년의 중턱을 넘어가는 저도 그러한데 놀 거리를 찾으면 배워서라도 놀고 싶은 10대 아이들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 해에 한번씩 찾아오는 이 황금과 같은 시간을 어영부영 소진하는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그리고 그 중의 얼마를 공부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를 금새 깨우칠 수 있습니다.
손으로 꼽아보라면 두 손의 열손가락이 모자라게 읊어댈수 있겠지만 지면의 한계상 가장 확실하고도 중요한 이유 두가지만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망각은 가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이 영원할 수 없고 학습한 내용들이 점차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겁니다. 그런데 그 희미해지는 기억이라는게 좀 얄궂습니다.
머리속의 지식이 일정한 비율로 점차점차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그 망각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되어있는데요.
심리학자들을 이 현상을 ‘대체효과’라 부른답니다. 그러니까 학습내용이 저장되어 있던 주소에서 정보가 퇴색되어 의미가 사라지면 다른 정보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에 지식의 연결은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게 되구요..
논리적 연결이 없어진 단편적인 기억들은 그 중요성이 높지 않기에 우선적으로 삭제되어 결국엔 어디에 무슨 정보가 있었는지 감도 잡을수 없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거지요.
그러니 처음에 가지고 있던 생생한 기억이 조금 까묻해진다 싶으면 잽싸게 복습을 해서 기억을 복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모든 기억이 날아가버리고 말것이고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 겁니다.
둘째, 다음 해 학년초에 많은 시간을 벌어줍니다.
어찌보면 1번과 많이 상통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좀 더 현실적인 잇점이라는 것이 다를듯 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방학동안에 한 해동안 쌓아온 지식을 송두리째 날려버려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누누히 강조하건만.. 우리 아이들 중 그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감화감동할 아이들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학년 초가 되면 학교 선생님들의 근심이 커질수 밖에 없지요.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학년이 올라가 어떠한 과목을 한 단계 높여 공부하기 시작하면 지난해에 배웠고, 시험을 치뤘고, 이후 까맣게 잊어버린 그 내용들이 일년치 학습과정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모든 교과목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주제에 대해 점점 그 깊이를 더하는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고 따라서 한 해의 학습내용은 다음 해 학습내용의 기반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NCEA 과정은 이러한 구조가 지나치리만치 철저하게 확립되어 있구요. 캠브리지 과정은 Y11과 Y12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IB과정은 Standard level의 학습내용을 기반으로 Higher level의 학습을 시작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구조는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학년간 학습내용 연계시스템’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방학동안 머리속을 하얗게 비우고 학교로 돌아와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은 참으로 착찹하지 않을수가 없을겁니다. 하지만 속상하다고 언제까지나 손을 놓고 있을수는 없지요. 친절한 학교 선생님들은 Revision 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의 과정을 압축해서 기억시키는 속성과정을 수업하기 시작하구요,
때론 매년 초의 이 복습과정이 거의 한 term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학동안 어느정도의 복습을 해왔던 학생들에겐 이 시기야말로 황금과 같은 찬스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중요성을 더하는 internal 시험을 준비할 수도 있고 일년치 교과내용을 미리 한번 훑어보며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을 숙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서 방학동안 흘린 땀은 그 결실을 보게되는 거지요.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요? 어떤 학생들은 ‘전인격체로서의 발전을 위해’ 등등 나이에 맞지않는 거창한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교육의 내용은 새로운 지식이나 이론의 전개, 발전보다는 과거의 지식을 배워 미래를 준비하는 ‘온고이지신’의 첫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내용이 구닥다리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백여년 전부터 항상 똑같은 내용을 여전히 되풀이 하는 이 과정은 학생이 나중에 스스로의 이론이나 발견을 통해 학문을 진일보시키기 위한 발전의 시초가 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광범위한 정보의 습득과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결국 앞으로의 공부가 힘들어지거나 지연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방학동안의 여유시간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광범위한 정보의 습득과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다면 한 해동안의 학습, 그리고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 점점 쌓여가는 지식의 성채는 난공불락의 우람함으로 당당해질 것입니다.
여기 방학기간을 잘 활용해 한마디로 ‘공신(공부의 신)’이 되었던 학생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잘 읽고나면 방학을 핑계삼아 한없이 놀고만 싶은 마음을 조금은 추스릴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제가 뉴질랜드에서 개인교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학생의 이름도 잊고야 말았지만 우리가 불 살랐던 그 뜨거운 여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당시 S는 오클랜드 그래마스쿨에서 캠브리지 Y11과정(IGCSE)를 막 마친 상태였고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게) Y12(AS) 코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순수한 눈빛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자 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학과 물리점수를 잘 받고 싶어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기출문제를 받아보는 일 등이 쉽지 않았던 때라서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 했지요.
또한 넉넉지는 않은 가정형편상 지속적인 과외수업은 계획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상의 끝에 방학 8주간 주당 4회의 수업으로 캠브리지 AS 물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A2 내용까지 살짝 곁들여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처음 S를 만나 약간 좁은 듯한 책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S야. 너는 자동차의 뒷바퀴고 나는 자동차의 앞바퀴야. 우리는 하나의 자동차고 우리가 각자 할일은 아주 분명하단다. 너는 무조건 구르기만 하면 되. 그럼 방향은 내가 알아서 잡아 줄께”
무조건 내 말만 듣고 죽어라 공부만 하라는 반 협박적인 의도로 한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어머님을 통해 들어보니 그 때 저의 이 말에 S가 많은 신뢰감을 느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학습방향에 대해 많이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 서로의 목표를 확인하고 난 후 저는 S를 위한, 그리고 추후 S와 같은 입장에 처할 다른 학생들을 위한 맞춤 8주 계획을 작성했습니다. 크게 5챕터로 나누어진 전 과정을 5번의 test까지 치러가며 8주안에 마무리한다는 것은 그 내용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저에게도 힘든 일 이었지만 그 내용을 다 소화해내야 하는 S에게는 그야 말로 지옥 훈련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뿐 아니라 수학과 영어까지 본인이 스케쥴을 잡아 ‘스스로 방학 집중 학습’을 했으니 그 학습시간과 노력이 절대로 만만할 수 없었겠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 여름이 더 더웠는데요. 항상 S의 집에 공부를 하러 가면 마당 텃밭의 호박잎 사이로, 흔히 말하는 런닝셔츠 바람에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맺고서 책상앞에 앉아있는 S가 빼꼼히 보이곤 했습니다. 가끔 안경에 묻어나는 땀을 닦아가며..
그런데, 8주의 수업을 마친 후.. 저의 소감은 ‘난감’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 종합 테스트에서 S가 예상보다 많이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S가 힘든 과정을 견디고 공부에 매진한 것도 사실이지만 저 또한 연말연시 휴가를 다 포기하고 매달렸었는데.. 그 결과가 신통지 않은 듯 해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지요.
더구나 이 후 S를 다시 만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줄 수 있다는 기약도 없었으니... 하지만 저는 선행학습의 효과는 학교수업과 맞물릴 때 드러난다는 경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한 Term쯤 시간이 지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생에게 S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수업시간에 좀 잘 하느냐고 말이지요. 이 녀석, 뜨악하게 저를 쳐다보더니 귀찮은 듯 대답하더군요.
“아…. 걔는 물리랑 수학 신이예요. 그냥 다 알아요….”
보상 없는 노력은 없다고 합니다. S가 그 한 여름 책상 앞에서 떨군 한방울 한방울의 땀이, Y11의 부진한 성적을 어떻게든 만회하겠다고 이 악물고 덤빈 악착 같은 노력이, S를 결국 ‘공신’으로 만들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듯 합니다. 더불어 2년 뒤 졸업식장의 스타가 된 것도 포함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