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자다가 두 번을 깼다. 2시에 한 번, 4시에 한 번. 경비실에 가니 아직 내 트레일러는 준비가 안 됐다. 꿈을 꿨다. 화물이 준비됐는데 무슨 서류 문제가 생겨 해결하려 애쓰고 있었다. 전화 소리에 깼다. 꿈인가 생시인가?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화물이 준비됐단다.
8시에 출발했다. 하루 평균 500마일씩 달려야 한다. 글렌이 예상 도착 시각을 물었다. 계산해 본 후 5월 1일 오후 9시라고 답했다. 최소한 휴식만 취하고 달리면 정오에는 도착할 것이다. 배달 접수 개시가 오후 9시부터라 했다. 일찍 도착해 8시간 휴식 후 배달하러 가는 게 정석이다.
텍사스 – 오클라호마 – 캔자스 – 미주리로 달렸다. 사방이 모두 지평선이다. 도로는 곧게 뻗었다. 35번 도로 캔자스 구간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완만한 구릉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고 녹색 풀밭 위에 검은 소 떼가 풀을 뜯는다.
오늘은 Alex Korb의 The upward spiral을 들었다. 뉴로 사이언스로 본 우울증 진단과 개선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것으로 안다.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책이다. 우울증과 관련한 여러 호르몬을 설명하고 억제 및 강화 방법도 안내한다. 운동, 충분하고 질 높은 잠, 결심, 긍정적 사고, 마사지, 포옹, 반려동물, 약물, 바이오 피드백 등 의학적 치료법 등.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의욕이 없어 운동하려는 마음도 일지 않는다. 저자는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하고 모든 방면에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라고 말한다. 개를 키우면 도움이 많이 된다는데 아내와 상의해봐야겠다. 개가 좋을까 고양이가 좋을까?
살고 싶으면 죽어라 달려라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미주리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에 왔다. 배달지까지는 461마일 남았다. 동부지역이고 산악 구간을 지나니 10시간 잡으면 적당하다. 두 가지 선택이 있다. 8시간 휴식하고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해 절반 정도 가서 다시 8시간 휴식 후 배달지까지 가는 방법이 첫째다. 아예 오전 10시쯤 느지막이 출발하는 방법도 있다. 첫 방법은 까다롭지만 배달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시간 여유가 있다. 밤 10시 넘어 배달을 마치고 근무 시간이 끝나면 그 동네에서는 어디 주차할 곳이 없다. 아직 생각 중이다.
오늘 한인 트럭커 페친 중 한 분인 정규승 님께 전화를 받았다. Melton에서 플랫베드 하다가 6주 전에 Estes로 옮겼고 부부가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정착했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곳이 조건이 좋다고 추천을 하셨다. 주 1,500달러 이상 보장에 일주일에 세 번은 집에서 주무신다고.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 구간만 다녀 겨울 눈길에 고생할 일도 없단다. 화물을 직접 내려야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 가야 하나? 노스캐롤라이나가 기후도 좋고 뉴욕에 비하면 집값도 싸다. 단 아이들 학교가 걸린다. 뉴욕에서 주립대학을 다니면 학비 면제를 받아 부담이 없다. 아내와 상의를 해봐야겠다. 10년 넘게 살아온 뉴욕을 뜰 때가 됐나.
요즘 트럭 드라이버 커뮤니티에서 단연 화제는 며칠 전 있었던 I-70 콜로라도 구간에서의 24중 추돌사고다. 내리막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던 플랫베드 트럭이 차량을 덮쳐 화재가 발생하고 4명이 목숨을 잃었다. 23살 쿠바 출신의 드라이버는 살인죄로 기소됐다. 논란이 커진 것은 이 트럭이 런어웨이 트럭 램프를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뒤따르던 차량에서 촬영됐기 때문이다. 런어웨이 트럭 램프(Runaway truck ramp)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기능을 잃은 트럭이 멈출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일단 여기 들어가면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고 견인 트럭을 불러야 한다. 차량에 어느 정도 손상도 예상해야 한다. 하지만 트럭이 자빠지거나 다른 차량을 치는 것에는 비할 바 아니다.
원래 그 내리막은 트럭은 45마일로 다니게 돼 있다. 많은 트럭이 그 속도를 무시하고 달린다. 사실상 짐이 무거우면 내리막에서 안전 속도 유지가 어렵다. 저단 기어를 넣고 제이크 브레이크를 최대한 걸고도 풋 브레이크를 수시로 밟아야 한다. 브레이크가 가열돼 연기가 풀풀 나다 불까지 나는 경우도 있다. 내리막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저단 기어를 넣어야 한다. 트럭은 일단 가속이 시작되면 저단 기어로 넣을 방법이 없다. 이 경우가 최악이다. 기어 중립 상태에서는 엔진 브레이크도 걸리지 않는다. 오로지 풋 브레이크에 의존해야 하는데 화물이 무겁고 가파른 곳에서는 거의 세울 방법이 없다. 자살행위에 가깝다. 나도 한 번 무심코 기어를 뺐다가 혼난 적이 있다. 미리 저단 기어를 넣지 못했으면 고단 기어 상태로 엔진 브레이크와 풋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며 내려가야 한다.
트럭커들이 이번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은 런어웨이 램프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 첫째다. 경험이 없고 당황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서 있는 차량을 덮치기보다는 갓길이나 램프 시설물을 받고 세우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다. 거기다 사건을 일으킨 트럭 회사가 지난 일 년간 안전 불량으로 적발된 건수가 스무 건 이상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브레이크 문제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는 확산 중이다.
그리고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이것은 꼭 당부한다. 자신의 목숨과 관련한 일이다. 내리막길에서 트럭을 추월하고 추월한 트럭 앞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는 추월 속도를 유지한다. 트럭을 추월했으니 자기 속도가 충분하다 싶겠지만 큰 오산이다. 트럭은 이제 막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 제어가 어렵다. 물론 대부분 트럭커는 욕설과 함께 무지막지한 제동력을 바퀴에 실어 충돌을 면하고자 할 것이다. 살고 싶다면 트럭이 덮치기 전에 죽어라 달려라. 빨리 달릴 자신이 없다면 트럭과 다른 차선을 이용하기 바란다.
트럭 연비
주차금지 표지판이 있는 도로 갓길에 세워놓고 잔다.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티켓을 받는 일이야 없을 것 같다.
원래는 배달 마치고 남은 시간에 따라, 갈 수 있는 후보지를 세 곳 정도 잡았지만, 소용없게 됐다. 짐 내리는 동안 시간이 지나버렸다. 배달처 바로 앞 도로는 이미 트럭들이 자리를 잡았다. 약간 더 나가서 램프 근처에 세웠다.
오늘 배달한 곳은 시그마라는 곳인데 후진이 어렵다. 다른 트럭이 없으면 괜찮은데 접수를 기다리는 트럭이 닥 앞쪽으로 주차해 공간이 좁다. 나도 어렵게 후진했지만, 다른 트럭들도 고생하길래 나가서 두 대 정도 뒤를 봐줬다.
여기서도 기사를 모집하는 광고가 붙어 있다. 1년 평균 9만 달러 이상이고, 최고 14만 달러까지도 벌 수 있단다. 해리스버그에 집이 나왔는데 침실 3개에 화장실 1개짜리 이층집이다. 가격은 3만 5천 달러. 1930년대에 지은 집이고, 예상 수리비는 2만 달러다. 이 회사에서 1년만 일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겠네.
내일은 뉴욕주로 간다. 발송처가 초바니다. 요거트를 4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에 배달하는 일정이다. 나는 4일부터 홈타임이라 내일 물건을 싣고 내려와 핏스톤 터미널에 트레일러를 떨궈놓고 집에 갈 예정이다.
지난주 트럭 연비 통계가 나왔다. 9.47 MPG가 나왔다. 역대 최고인 것 같다. 밥테일과 데드헤드 구간이 길어서 그런 모양이다. 플릿 평균이 8.65다. 나는 대부분 트럭이 이 정도 연비를 내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보통은 6마일대였다. 심한 경우는 4마일대도 있다. 배기통이 양쪽 옆에 달리고 엔진이 앞으로 더 길게 튀어나온 일명 개코 트럭은 보기에는 멋있지만 연비는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회사 트럭이 연비가 나쁜 이유는 프라임보다 훨씬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프라임은 리즈 드라이버라도 65마일이 최고 속도다. 컴퍼니는 62마일이다. 이것도 빠르다고 요즘 55마일에서 58마일로 달릴 것을 주문한다. 오늘도 거의 56~57마일 정도로 달려왔다. 프라임에서 연비가 좋은 트럭은 10마일이 넘는다. 연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65마일로 달려도 9마일 넘는 연비를 낸다. 대체로 천천히 달리면 연비가 높아지는 건 맞다. 연비를 희생하고 시간을 벌겠다는 사람도 있다.
복귀
유독 오늘은 집을 떠나기 싫었다. 식구들을 남겨두고 오기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제시 익스프레스를 타고 핏스톤으로 왔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 운전사에게 돈을 더 낼 테니 회사 앞까지 가자고 했다. 그는 선선히 응했다. 덕분에 편하게 왔다.
집에 가 있는 동안 비가 내려 계획했던 여행은 못 갔지만, 뉴욕 시내를 다니며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신동기 목사님 부부, 조성모 화백님 가족과도 따로 만나 식사와 차를 즐겼다.
금요일은 딸아이 시민권 취득에 필요한 보충 서류 발급을 위해 영사관에 다녀왔다. 맨해튼 나간 김에 현대미술관(Moma) 구경도 갔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모마 회원이었다. 아내가 내 모마 회원증을 최근에 발급받아 두었다. 모마는 2007년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가보고는 처음이다. 전시 내용이 그때와 달라서 그런지 처음 만큼의 감동은 덜 했다.
관람 후 모마 맞은 편에 있는 뉴욕 라이브러리에 들러 아내는 회원증을 만들었다. 한국 책도 몇 권 있었다. 뉴욕시 다섯 개 보로 중에서 퀸즈 라이브러리와 브루클린 라이브러리는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맨해튼, 브롱스, 스테이튼 아일랜드는 뉴욕 라이브러리로 운영된다. 뉴욕시에 직장이나 학교, 집이 있으면 뉴욕 라이브러리 회원에 가입할 수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동물 쉘터 몇 곳을 다녔다. 개나 고양이를 入養(입양)하기 위해서였다. 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고양이와 달리 개는 감정 표현이 거의 사람 수준이었다. 주인에게 버려져 동물 보호소에 있는 개가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풀이 죽고 불쌍한 얼굴이었다. 그에 반해 고양이는 몸짓과 표정이 의연했다. 마음에 드는 고양이 몇 마리가 있었다. 둘째 날 타이거라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려 했으나 심장병이 있어 경험 많은 사람이 입양할 것을 권했다. 치료비도 많이 들 것이라 했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는 초보자다. 내가 키웠던 동물은 햄스터, 토끼, 거북이, 금붕어 정도가 고작이다. Bideawee라는 곳은 작은 규모에 동물들이 더 좋은 환경에 있었다. 동물보호센터(ACC)는 철창에 동물을 두고, 입양되지 않은 동물은 安樂死(안락사)시킨다. 비디위는 특별히 행동에 문제가 있어 철창에 보호해야 하는 동물이 아니면 방에 두었다. 방 하나에 서너 마리 정도로 공간도 충분했다. 동물 구경은 직원과 같이 다녀야 했다. 비디위에는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난 동물도 있었다.
여기서도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려 했으나, 소프트 캐리어를 우리가 사서 와야 했다. (ACC에서는 고양이는 운반용 종이 상자를 제공한다) 임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렌트 계약서도 요구했다. 애완동물 방침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분명 애완동물 금지였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애완동물 금지 표지판이 안 보이더니 개를 데리고 다니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집에 와서 계약서를 확인하니 애완동물 허용이나 금지에 대한 항목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애완동물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장려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당장 입양하는 줄 알았다가 실망했다. 월요일은 휴무다. 아내는 혼자서는 올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생각해 반려동물을 들이려 했는데, 정작 아내는 내가 원하니 들이겠다는 태도다. 물론 동기야 어떻든 반려동물이 있으면 아내의 정서에 좋을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 환경이라 소형견이나 고양이만 가능하다. 나중에 이사 가면 중형견도 키우고 싶다.
동물을 데려오려면 입양비가 든다. 개가 고양이보다 비싸고, 새끼일수록 비싸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단체는 한국에서 온 강아지를 입양하는데 2,500달러가 넘게 들었다. 개고기 시장에서 구출된 강아지라고 했다. ACC나 비디위는 그 정도로 터무니없지는 않다. 보통 250달러에서 125달러 수준이다. 나이가 많은 동물은 더 싸다. 중성화 수술과 각종 건강진단, 예방주사, 마이크로칩 삽입이 포함된 가격이다. 직원들은 동물의 성격과 건강을 파악해 맞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개의 경우 동물과 사람이 서로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꼭 가지도록 했다.
트럭커들도 개나 고양이를 많이 데리고 다닌다. 장소에 민감한 고양이보다는 개가 주로 많다. 핏불이나 불독, 박서 등 게으른 견종이 좋고 나이 많은 개가 좋다. 활동력이 떨어져 운동을 덜 시켜도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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