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위 동영상은 2016년 1월 4일부터 7일까지 모스크바 코라스톤 호텔에서 열린 제1회 재언협 유럽대회 마지막날 북한 식당에서 가진 만찬 모습입니다. 즉석에서 돌아가며 소감 한마디씩 했습니다.
모두 11명이 참가한 유럽대회는 짧지만 알찬 대회였습니다. 특히 둘째날 수린 박사의 강의는 강대국이 주도하여 꾸려온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 아울러 한-러가 공동으로 꾸려갈 수 있는 새 세상의 꿈을 꾸게 했습니다. 이른바 공생국가론입니다. '순수노동'과 제조업의 가치를 강조한 수린 박사는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사람들로 이뤄지고 있는 현대문명의 허위성을 폭로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또한 '중앙아시아 한민족 이주사'가 전공인 김상욱 박사(한인일보 대표)는 중앙아시아에 펼쳐져 있는 7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고려인들)의 간략한 이주사를 훓고 그들의 저력을 소개하여 미래에 펼쳐질 민족적 웅지를 곰새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김 대표는 구 소련이 장기적인 정책을 세워 고려인들을 비롯한 타민족들을 집단 이주.배치시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어느날 무작정 고려인들만을 차별적으로 낮설은 땅에 떨어뜨려 놓았다'는 식의 이해는 잘 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두 편의 강의 모두 한민족이 미래의 세계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 속에 일어난 상념은, 그런 가능성들도 '분단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실현되기가 어렵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생국가'는 남한만 참여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이고,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저력 역시 남북이 싸우기 바쁜 상황에서는 힘껏 펼쳐질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과일이라도 담을 그릇이 깨져 있으면 빛나지도, 담을 수도 없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천 수백 년 동안 광범위하게 펼쳐진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세상에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은 똘똘 뭉친 유대주의 덕분이었습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는 공생국가론이고 코리안 디아스포라고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런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어진 투어는 주마간산식이긴 했으나 모스크바만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유적들과 러시안들의 일상을 직접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광활한 대지와 유구하고 묵직한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박제화된 이미지의 나라가 아니었고, 우중충한 교조적 이데올로기의 땅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동화의 나라 로서아'를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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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쳐버리게 할 것 같은 영하 22도 추위에 유모차에 아기를 똘똘 말아 태우고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공원을 산책하는 한 러시아 여인.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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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용트림하는 새땅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에서 우리의 반쪽 형제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슬쩍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핵핵' 거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제쳐두고 우리의 형제들이 이 추운날 어떻게 밥을 먹고 있는지를 보고 싶어졌습니다.
조미료가 섞이지 않은 북한 식당 음식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담백했습니다. 특히 새큼한 김치,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가자미 식해, 왕창 큰 개구리 뒷다리 요리, 면발이 감칠맛인 랭면, 틉틉한 오리 육개장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날라오지 못했다'는 들쭉술 대신 주문한 산삼주를 곁들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제 딸 또래의 접대원 여성동무들의 상큼하고 다소곳한 서브도 기분을 더더욱 상쾌하게 했습니다.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고 포옹해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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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살살 녹는 가자미 식해입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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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 쩍쩍 들어붙어 모두를 '격동'되게 한 산삼술.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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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우리 모두는 전날 점심 낮술에 이어 이날 만찬에서도 권커니 받거니 하면서 여러병의 산삼주를 비웠습니다. 예전에는 있었다는 '노래공연'이 없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장군님' 노래부터 휘파람에 이어 미국 민속곡과 클래식과 팝송곡까지 흘러나와 조금은 어리둥절 했습니다. '격동'된 기분으로 만찬 값을 부담한 김훈 회장은 '음식값이 너무 싸서 미안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저는 돌아오자 마자 '모스크바에 가면 북한식당 가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모두가 분위기에 격동되어 흐트러지려는 찰나, 되는대로 즉석 인터뷰를 했습니다. 특히 알렉스 강 KBS 몽골 특파원은 유창한 러시아말로 소감을 말하고 스스로 통역까지 했는데요,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박종권 부회장의 충직한 러시안 도우미 엘리야스도 한마디 했구요. 이 친구는 제가 이번에 본 러시안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부인도 동양계 미인으로 보였는데요, 첫날 밤 늦게까지 우리 멤버들에게 음식 서브를 했습니다. 두 부부를 직원으로 둔 박종권 부회장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어쨋거나 만찬에서 맛본 화기애애한 기운이 저 북녘땅에도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1월의 어느 멋진 날' 이었습니다. 마침 러시아 정교회 크리스마스날 밤입니다. 싸래기 눈발이 흩날리는 모스크바 밤의 밑자락은 하얗게 깔려 있었고, 여전히 미치도록 추운 날씨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55도 차이를 극복한 모스크바 여행기(가제)를 시리즈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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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한 북한 식당 외부 모습. 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 김명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