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27)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만약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면 발권 해주기 전에 그런 내용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 "아무 말 없이 멋대로 발권 해주고 내가 발견하고 항의하니까 그 때야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잘못 된거 아니냐? "고 따졌다. 여직원은 태연한 얼굴로 "추가 요금을 내고 복도 쪽 좌석을 다시 받을거냐?" 고 묻는다. 나는 "노!" 라고 대답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미리 설명을 해주고 내 의견을 물었어야지 내가 요청을 할 때는 답변도 안해주고 멋대로 좌석 지정해 주고 나서 이제 와서 묻는 게 말이 되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내가 "그런 말 한 걸 들은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거짓말 하지 말라 "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나이가 제법 든 뚱뚱한 여자 매니저가 달려 와서 "무슨 일이냐?" 고 물었다. 어지간하면 참겠다고 마음을 정했는데 인계점이 넘자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 순간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기서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면 내가 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칫 오바 하거나 실수하면 성질 괴퍅한 동양인 할배로 매도 될 수도 있는 상황 이었다 나는 1분만 기다려 달라고 말 한 후 뒤 돌아 서서 눈을 감았다. 가슴 속에서 재빨리 수류탄 2 발을 까서 투척했다. 가슴 속에서 쾅쾅 폭발음이 들리고 흙 먼지가 치솟았다. 오케이 내 성질 폭파 완료했다. 눈을 뜨니 매니저와 구경꾼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매니저에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 했다.
"내가 발권 하려고 하니 옆 직원과 잡담을 하며 나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 눈이 찢어졌다고 인종비하적 발언도 했다. 내가 복도쪽 좌석을 달라고 했더니 대답도 안하고 그냥 가운데 좌석을 주었다. 내가 항의하자 추가 요금을 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추가 요금을 내고 자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건 내가 처음 요청 했을 때 바로 설명해 주었어야 맞다. 一言半句(일언반구)도 없다가 멋대로 좌석을 지정해주고 나서 항의하니까 그 때서야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분명 제대로 된 업무 처리가 아니다.
나는 당신네 직원이 업무 지식이 부족하거나 태만한 자세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본다. 손님 앞 에다 두고 잡담하며 기다리게 하고 인종 차별하는 언행을 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천천히 나름 조리있게 설명하려고 하니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매니저는 나에게 "우선 발권 당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을 하지 않은 건 직원의 잘못이다. 내가 대신 사과 한다." "그러나 인종차별적 발언은 분명히 없었다. 그냥 당신 여권으로 목적지에 비자 없이 가도 되는지 확인 했던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아마도 인종 문제로 비화하면 일이 커질 것 같으니 동양인 조롱 발언은 강력하게 부인하는 대신 발권 과정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서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문제를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사과는 받아들이겠지만 나는 담당 직원이 직접 사과하길 바란다." 고 말하고 발권 창구를 보니 담당 여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옆자리 남자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잘나고 똑똑한 백인 언니 오빠께서 왜 직접 나서서 떳떳하게 설명하지 않고 도망 쳐 버린 거야?
나는 매니저에게 인종 차별과 조롱을 한 여직원과 남자 직원을 데리고 오라고 요구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눈치 챘는지 인종비하는 절대 절대 아니라고 거듭 부정하면서 대신 발권 과정은 실수와 잘못이 있었다고 정중하게 다시 사과를 했다. 나도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냥 싸가지들에게 싸대기를 날린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드니에서 쿠알라룸푸르 가는 비행기에 탑승 했다. 거의 만석이었다. 모든 좌석이 다 차서 가는데 내 양쪽 옆으로는 승객들이 오지 않았다. 결국 만석 비행기의 3열 좌석에 나 혼자 앉아서 목적지 까지 갔다. 나중에 컴플레인 걸까 봐 배려 한 걸까? 아마도 직원의 잘못된 업무 처리에 대해 좌석으로 보상 해줬다고 둘러 대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는 아이 젖 준다 더니 징징대서 젖 얻어 먹은 건가? 아니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는 말처럼 잘 참아서 복을 받은 거겠지 !!!
오랫 동안 여행하면서 불친절하고 불성실하고 오만한 인간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참고 넘겼다. 외국의 경찰이나 이민국 직원이나 세관원은 물론 항공사나 철도나 버스 회사 직원들까지도 당연한 듯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은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인종 차별 내지는 조롱하는 경우를 당한 건 처음이라서 도저히 묵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호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좋았기 때문에 호주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이 전혀 없다. 오히려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남아 있다. 단지 값싼 가격을 무기로 내세워 有勢(유세) 떨고 갑질하는 항공사의 진상 직원들이 얄미웠을 뿐이다. 오만에 대해 경종과 응징을 해 주었으니 그나마 다행 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참을 忍(인)자를 세 번 가슴에 쓰고 나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다고 했다. 다혈질인 내가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고 잘 참고 침착하게 대응해서 그나마 잘 마무리 한 것이 뿌듯했다. 여행을 통해 제법 성장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라고 나를 칭찬해 주었다.
시드니의 키리빌리라는 부자 동네에서 며칠을 묵었다. 오페라 하우스와 마주 보는 곳에 있었는데 주변 경치가 너무 멋지고 분위기가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도심 속의 힐링에 적합한 장소 였다. 재미난 추억 한 가지 소개한다. 시내에서 키리빌리로 갈 때 우버 택시를 불렀다. 우연히 기사가 한국인이었다. 그는 나한테 누가 우버를 불러 주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여행을 시작 할 때는 아날로그 여행자였는데 서바이벌을 위해 우버, 스카이 스캐너, 맵스 미, 북킹 닷컴, 구글 번역기, WhatsApp 등을 현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배워서 사용하게 되어 이젠 디지탈 노마드가 되가고 있다고 대답 해 주었다. 그는 우버 기사 4년 째 인데 한국인은 처음이고 특히 나이가 60이 넘은 분이 호출 한 건 처음이라서 신기하기까지 했다면서 도전하고 배우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키리빌리는 비싼 동네인데 선생님은 부자 이신가 봐요? 라고 물었다. 나는 사실은 내가 예약한 게 아니다. 예전에 호주에서 공부했던 딸이 특별한 추억을 남기도록 해주겠다면서 한국에서 예약해 준 것이다. 나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고 새 가슴 이라서 직접 예약하면 비싼 곳은 피한다고 변명하듯 대답 했었다. 그는 효녀 딸을 두셨다면서 또 기분 좋은 멘트를 날려 주었다. 그 한국 기사 분이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 라면서 사진 속의 선착장 부근 언덕을 소개해 주어서 가게 된 곳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오세아니아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피지 3개 나라를 여행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뉴질랜드였다. 위의 사진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쳐치 시내의 강가에 세워져 있는 메모리얼 브릿지에 새겨진 한국전 참전 및 주둔 기념비다. 대륙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쟁과는 무관 할 것 같은데 역사의 고비 마다 젊은 군인들을 파병 했던 그들의 정신과 기개가 대단해 보였다. 한국처럼 거대한 기념물이나 묘지를 만들어 놓고 1년에 한 번 형식적으로 거창한 행사를 하고 잊어버리는 것 보다는 이렇게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작은 기념물을 세워 산책 하면서도 자주 볼 수 있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게 오히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이스트 쳐치는 단선 전차가 느릿느릿 다니는 여유로운 도시 였다. 10 여 년 전 시내 중심지를 강타한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성당 건물을 전면 재건축을 할 것이냐? 보수만 할 것이냐? 로 의견이 갈려서 아직도 공터로 남겨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내 중심부의 여러 건물들도 복구 작업을 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 무조건 빨리 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경외롭기까지 했다.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카로아 라는 작고 예쁜 바닷가 마을 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유명한 피쉬 앤 칩 먹으면서 그냥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다. 팩키지 여행자라면 시간 아까워서 절대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마을이다. 현지에서 거주하는 옛 군대 전우의 강력한 추천으로 갔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랑과 연륜과 여유가 느껴지는 중년의 부부가 한가롭게 대화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뉴질랜드에 갔으니 당연히 밀포드 사운드에 가서 트랙킹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안좋은 기상 때문에 트랙킹 코스가 폐쇄된다. 그래도 포기 할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밀포드 피요르를 돌아보는 크루즈를 선택 했다. 비바람과 강추위 그리고 굵은 우박까지 쏟아졌다. 2박 3일을 투자 했고 돈도 많이 들었고 몸도 힘들었지만 결과는 만족 스러웠다.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줄 만큼 가치가 있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 나도 모르게 김민기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발로 운행하는 묘기를 보여 주는 쿠루즈 선장님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장난기 발동 했는지 갑자기 발 기술을 시현 해 보인다. 재치와 장난기와 유머가 넘치는 재미난 선장님 이었다.
뉴질랜드는 은근 호수가 많다. 호수와 산과 목장이 그림 같이 펼쳐져서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 남섬 퀸즈 타운의 소문난 맛집 퍼그 버거 가게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모습에 나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 가서 불고기로 저녁 식사를 했다. 외국에서 한식당은 너무 좋은데 비싸서 탈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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