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드의 역설과 대장동
최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시드니의 대표적인 부패 정치인 에디 오비드(77)가 권력형 범죄로 유죄가 인정돼 3년 10개월 징역형에 처해졌다. 10여년 전 NSW주 노동당 정부의 실력자였던 오비드는 정치를 알뜰한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다양한 이권에 개입했으며 특히 이안 맥도널드 NSW주 광물자원 장관 등과 결탁해 바이롱 밸리 석탄 채굴 허가를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오비드가 주축이 된 비리 공모자들이 수억 달러 규모의 돈잔치를 벌였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오비드의 부패에 대한 수사가 2012년에 시작됐으니 무려 9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판결로 늙은 부패 정치인은 교도소로 직행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긁어모은 범죄 수익에 대한 환수는 어렵다고 알려졌다. 오비드는 애초부터 차명 또는 사업거래 등으로 막대한 재산을 은닉했으며,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사이 더욱 복잡한 변천 과정을 거친 탓에 추적, 확인, 추징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차라리 오비드가 무죄가 되더라도 그의 집안이 쫄딱 망해서 알거지 됐다면 이를 더욱 합당한 정의 실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만약 비리 수사를 시작하면서 그의 재산을 전액 동결 환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비드는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었을 것이고 유죄판결을 나오는데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한한 권력보다 내구성이 강한 금력이 범죄 혐의에 대한 효과적인 방패로 기능한다. 오비드는 비리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죄수 신분이 됐으나 여전히 행복한 억만장자로 남았으니 역겨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정국이 ‘대장동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성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단군 이래 최대의 비리 또는 치적’이 대선 결과마저 결정할 기세다. 수사 결과에 따라 막강한 집권 여당 후보는 청와대는커녕 곧장 감옥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방어하는 쪽이나 공격하는 쪽이나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 ‘대통령 자리’가 걸려 있다 보니 실체적인 진실 규명보다는 특검 등을 두고 정치적 공방만 무성하다. 검찰은 이곳저곳 눈치 볼 데가 많은지 나노 차원의 극조심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언론은 닥치는 대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은 시원스러운 결과를 기다리다 지쳐 답답한 동굴에 갇힌 곰 신세가 됐다.
1천만 원으로 1천억 원대 수익을 올린 ‘천배 만배 대장동 대박’은 평범한 시민에게는 공황 수준의 박탈감을 안겨준다. 세상에 돈이 많아도 눈먼 돈은 없고, 팍팍한 세태에 너나없이 나름대로 똑똑한 인생을 살아간다. 빡빡한 대한민국에서 1천배가 넘는 마법 같은 부동산 개발 수익이 권력의 비정상적인 개입과 비리 공모가 없이 가능하다고 믿기는 어렵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를 규명해서 책임을 지게 하는 과정만 남았을 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그 과정이 간단치는 않은 듯하다. 더군다나 대선정국이 겹쳐 단기간에 확실한 결론이 내려질 것 같지도 않다.
이런 갑갑함 속에서 ‘돈을 받은 자가 범인’이라는 성남 시장 출신 여당 대선후보의 외침은 진정 사이다 발언이다. 온갖 논리와 억측으로 요사를 떨며 빠져나가려는 사람의 입에 비해 돈은 오히려 우직한 신뢰감을 준다. 물론 돈을 ‘받은 자’만이 아니라 ‘받을 자’와 ‘받기로 약속한 자’ 그리고 ‘대신해서 받아서 쓴 자’ 등도 모두 범인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다른 범주는 증언과 증거가 있어야만 밝혀낼 수 있지만 ‘받은 자’는 이미 온 천하에 명확하게 ‘범인’으로 드러나 있다.
대장동 의혹에서 ‘받은 자’들은 김만배, 남욱, 정민용, 정영학, 이한성 등으로 구성된 ‘화천대유 천화동인’ 패거리들이다. ‘돈을 받은 자가 범인’이라는 여당 대선후보의 옥언(玉言)을 받아들여 이들의 천문학적 재산에 당장 정의의 철퇴를 내려야 할 것이다. 1조원대 수익의 실체는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땅을 수용당한 대장동 원주민들의 눈물이요 높은 분양가를 부담해야 했던 대장동 입주민들의 한숨이 아닌가? 이 눈물과 한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인의 처벌보다는 범죄 수익의 환수와 보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화천대유 천화동인 패거리들의 모든 재산과 기대 수익을 즉각 국고로 환수해 대장동 원주민들과 입주자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세월이 흐르면 그들이 취한 범죄 수익이 물처럼 여기저기 스며들어 회수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국회가 나서서 ‘대장동 부당이익 특별 환수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국민적 공분을 감안해 대통령이 긴급 재정명령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대장동 부동산 개발 부패세력의 모든 수익을 동결 추적 환수한다면 그제서야 실체적 정의를 실현하는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 이익 전액 환수법’을 만든다는데 이렇게 좋은 법을 아예 소급해서라도 ‘대장동’부터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김만배, 남욱 등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시종 여유만만한 이유는 대장동 사업으로 갈취한 재산이 어떤 경우라도 자신들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차피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도둑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감옥행이 아니라 애써 훔친 장물을 빼앗기는 것이다. 뻔뻔스러운 대장동 패거리들이 알거지가 됐다고 상상해보라. 장물을 다 잃고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가 되면 더 이상 실실 웃으면서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대장동 부패 집단에 돈빨대를 꽂고 온갖 비호와 편의를 봐주던 정치인, 관리, 법조인들도 빈털털이가 된 그들을 철저하게 외면할 것이다. 대장동 비리 의혹 게임은 권력과 돈으로 진실의 입을 틀어막아야 돌아갈 수 있는 판이다. 권력과 돈이 완전히 고갈되면 비로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앙상한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들 알거지가 되어 감옥에 들어갈 상황인데 누가 누구를 지키고 보호하고 감출 이유도 여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장동 사건이 교도소에서 출소하기만 하면 억만장자의 삶이 평생 기다리는 행복한 죄수 ‘오비드’를 양산하는 허망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동철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