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공공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는 수백 만 호주인을 우발적 시험으로 몰아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일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이런 시험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집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한 근로자. 사진 : Pixabay / kueckhovener
일-삶의 방식에서의 우발적 시험... 원격근무, “실행 가능하고 바람직한 선택” 인식 확산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공공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로 선포된 지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 전 부문에서 상당한 제한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이 전염병은 우리네 삶의 방식마저 바꾸어가고 있다.
사실, 2020년 시작과 함께 호주에도 닥친 COVID는 수백 만 호주인을 우발적 시험으로 몰아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일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네 삶을 방해하기 전만 해도 호주의 직장인 가운데 정기적으로 집에서 일을 하는 이들의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공공보건 방역 차원에서의 봉쇄 조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약 40%로 확대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제한 규정이 해제되고 다시금 일터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작업 유형에 재택근무의 옵션이 없지만, 이는 수백 만 호주 가정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한 수치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있다. 이 지독한 전염병이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많은 작업 분야에서 재택근무가 ‘실행 가능하고 심지어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인식’이다.
한풀 꺾인 전염병 사태,
이제 다시 사무실로 복귀?
시드니 기반의 사회현상 연구원이자 작가, 트렌트 예측 전문가인 마이클 맥퀸(Michael McQueen)씨는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There’s no doubt that Pandora’s box has been opened)”고 진단했다.
게다가 그는 이제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마련한 사무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던 팬데믹 이전의 직업 방식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상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인 국가경제연구원(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이 지난해 9월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했던) 호주 직장인 35%는 고용주가 사무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도록 복귀를 명령할 경우 회사를 사직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답했다.
직장인들이 원격으로 일하는 업무 유연성을 갖는 것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음은 급여 패킷에서도 나타난다. 호주 직장인들은 이 업무 유연성을 급여의 약 5.3%와 동일시한 것이다. 즉 최소한 한 주(a week) 2~3일을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옵션이 있을 경우 이들은 자신이 현재 얻고 있는 급여의 5% 이상 삭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호주 생산성위원회(Productivity Commission)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재택근무 관련 연구 논문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강제적 재택근무 실험을) “유례 없는 속도로 발생한 노동시장의 주요 변화”라고 설명했다.
생산성위원회가 이를 위한 연구 진행을 위해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호주의 대부분 직장인은 재택근무 옵션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급여삭감에 기꺼이 동의하거나 이직할 의향이 있음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최근 한 경제관련 연구기관의 조사를 보면 호주 직장인들은 업무 유연성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급여의 약 5%가 삭감되더라도 재택근무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면 동료들과의 협업과 아이디어 도출 등에서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사진은 한 기업의 기획 회의. 사진 : Pixabay / RonaldCandonga
그렇다면, 그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배경으로는 출퇴근 시간의 번잡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COVID 이전, 호주 각 주 수도의 정규직 근로자들은 출퇴근에 하루 평균 67분을 소비했다.
생산성위원회는 당시 조사를 통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잠재적인 전반적 이익을 나타내며 근로자와 기업이 상호 윈-윈의 결과를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강한 사례가 있다(Working from home represents a potential overall gain to society, and there is a strong case to allow workers and firms to negotiate mutually beneficial outcomes)”고 결론지었다.
사회학자 맥퀸씨는 대규모 근로자 그룹에서 월요일과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고 화-수-목요일에만 사무실에 출근하는 패턴이 정착되는 것에서 ‘TWAT’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생산성위원회의 보고서는 “재택근무가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하더라도 생산성은 동일하게 유지되거나 향상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백신접종을 받았고 전염병 방역을 위한 봉쇄 및 제한조치가 거의 해제된 현재, 회사와 근로자들은 사무실로 복귀하는 것과 재택근무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택근무의 혜택,
멈추지 않을 것...
한 법률회사의 인력관리(Human Resources) 부서에서 일하는 틸리 콜(Tilly Cole)씨는 2020년 3월 어느 날, 집으로 보내졌다. “COVID 전염병 사태가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갑자가 랩톱 컴퓨터를 갖고 집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회사 측이 결정한 갑작스런 전환이 본인 개인은 물론 가족(남편과 두 자녀)의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근무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일하게 되어 행운이라 생각한다”는 콜씨는 “분명하게 재택근무를 선호한다”고 못박았다. “이 업무 방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그녀는 “아이들은 물론 반려견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콜씨는 재택근무를 한 이후부터는 COVID-19 이전처럼 회사에서 퇴근한 후 기진맥진하거나 피곤하지 않다고 말했다. COVID 이전에는 부부 모두 이른 아침에 깨어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돌보아야 했고, 이후 기차나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방과 후 보육’(after school care) 시설에 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마련해주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반복된 일정에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물론 콜씨 부부는 재택근무를 한 이후에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난다. 다만 여유 있게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숙제를 봐 주고 학교에 가기 전 한 시간가량을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다. 그런 이후 회사 업무를 시작한다.
COVID 이전에는 집안일을 주말에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기에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었지만 재택근무를 한 뒤에는 세탁 등을 매일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됐으며,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회사의 회의에 참석(온라인으로)할 수 있다.
또한 콜씨는 아침과 저녁, 출퇴근으로 허비하는 시간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기에 생산성도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줌’(zoom)이라는 온라인 툴을 이용해 이전보다 더 많은 동료들과 연결되고 있다. 하루 중 언제든 누구와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드니 기반의 사회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인 마이클 맥퀸(Michael McQueen. 사진)씨. 그는 팬데믹 사태로 업무 방식에서도 유연성이 선호되는 등 일과 삶에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사진 : michaelmcqueen.net
“동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잡다한 대화에 주의가 산만해지기도 한다”는 그녀는 “반면 집에서 일하게 되면, 처리해야 할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콜씨 부부는 2개의 홈 오피스 공간이 있는 새 주택을 건축 중에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 방식이 미래에는 더 확산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호협력, 동기부여 유지...”
물론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릴리 바라스(Lily Barras)씨는 브리즈번(Brisbane) 도심에 있는 한 비영리 단체 관리자로, 그녀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역동성을 좋아한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궁금한 것을 즉시 질문하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아직 21세의 나이인 그녀 입장에서 사회적 측면 또한 매력적이다. “팀 동료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좋은 경험이어서 이런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바라스씨는 팀원들이 같이 업무를 처리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집에서 개별적으로 일할 때보다 산만함도 덜하다고 말한다. “팀원들과 협업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또한 오전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를 아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 시간은 개인적인 웰빙에 아주 중요하다”는 바라스씨는 “인간적 유대감, ‘줌’을 이용한 온라인에서가 아니라 동료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협업 상태일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멜번(Melbourne)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앤드류 로젠바이크(Andrew Rosenzweig)씨에게 있어 업무 방식의 완벽한 균형은 원격 및 사무실 근무의 혼합이다.
“서비스 부문이라는 특권적 위치에 있고, 실제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팬데믹 사태가 절정이 달했을 때 주 5일간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그런 이후 최근 6개월 사이, 약간의 균형을 찾게 됐다. 사무실에서 이틀 또는 사흘간 일을 하는 방식으로. “비록 팬데믹에 따른 제한 조치가 완화되고 재택근무자들의 사무실 복귀를 재촉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회사에서의 풀타임 근무를 주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업무 방식의 유연성은 어린 두 자녀를 둔 로젠바이크 변호사에게 있어 중요한 사안이다. 그는 재택근무시 훨씬 더 많은 업무량을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원격으로 일하던 초기,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격근무의 경우 비용을 매기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집에서 일하며 나아진 가정생활이 업무의 생산성을 희생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물론 로젠바이크 변호사는 홈 오피스의 장점과 함께 단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한 주에 이틀 정도 의무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무실 복도에서 동료와 잡담을 하거나 티룸(tearoom)에서 동료들과 부딪히며 인간적으로 상호작용을 갖는 것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원격근무 옵션은 근로자뿐 아니라 기업 측에도 분명한 이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 : Pixabay / Bellahu123
때문에 전적으로 원격근무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는 “더 많은 시간, 회사에서 일하라는 경영진의 압박이 있지만 풀타임을 직장에서 보내야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힘의 균형, 근로자 쪽으로...
맥퀸씨는 “과거의 경우 회사조직은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는 데 다소 과묵했으며, 그 핵심에는 ‘직원들을 정말로 믿을 수 있을까’하는 의혹이 자리해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원격근무가 회사는 물론 직원에게도 분명한 혜택에 있다고 믿는다. 고용 측면에서 회사라는 조직의 주요 기회 또는 이점 중 하나는 지리적 기반에 상관없이 인재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맥퀸씨는 “이는 엄청난 인재 풀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또한 환상적인 이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업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수 있다. ‘JP Morgan Chase’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최고경영자는 “원격으로 일하는 것은 (기업 조직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나 기업문화를 위해 일하지 않으며 또한 아이디어 생성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맥퀸씨는 현재의 노동환경은 근로자 위주 시장이라고 말한다. 이는 직원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지, 얼마의 급여를 받고 싶은지를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맥퀸씨는 “그렇기에 기업 조직은 근로자들의 이런 기대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반면 까다로운 일이 생겨나고 있다. 회사 조직은 근로자들이 사무실로 복귀해 일하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시간, 사무실 근무를 원하는 것이다.
맥퀸씨는 이 부분에 대해 “모든 회사 조직문화의 일부인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에 대한 추진이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애플(Apple) 사가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주 3일간은 사무실로 복귀해 근무를 하도록 요구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반발은 엄청났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 유연성으로 인해 우리 지역사회가 사무실에서의 정규직 근무 때와 다른 방식으로 업무에 참여할 수 있기에 사무실 근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경우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의견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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