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한 일본에 입장을 분명히 하라
한 마디로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반대한다.
일본이 자위대 창설 60주년인 2014년 7월1일 집단자위권 행사가 허용된다는 새로운 헌법 해석을 채택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전환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은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임시 각의를 열어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각의 결정문을 의결했다.
자위대의 무력행사 요건은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뿐 아니라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당해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 근저에서부터 뒤집힐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배척하고 일본의 존립을 완수해 국민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경우 필요 최소한의 무력행사가 자위조치로서 허용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이런 결정은 일견 한 국가로서 가져야 할 응당한 권리로 보일 수 있으나 식민지 시기를 경험한 아시아 각국에 대한 엄밀한 반성과 관계 개선 노력없이 말바꾸기를 일삼은 일본이기에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
우리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방침을 우려하는 것은 지금의 그들 모습에서 아픈 과거의 역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구한 말 일본이 조선을 무력 침략할 때도 명분은 자국민 보호였다.
한반도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한 명분으로 국토와 주권을 유린당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게 마련이다. 우리로선 일본의 군비확장과 군사활동 영역 확대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실제 각의 결정문을 보면 과거의 불행이 재연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가령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일본은 한국과의 ‘밀접한 관계’는 물론 한국내에 거주하는 일본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명백한 위험’에 처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아베 정권의 결정은 그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발빠르게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관련법 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안을 의결한 지 하루 만이다. 아베 정권은 자위대법과 무력공격사태법 등 10여개의 관련법 제·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개정안에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각의결정문을 바탕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 등이 담길 전망이다.
아베 정권은 오는 9월 임시국회와 내년 봄 정기국회에서 집단자위권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일본 중의원·참의원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단자위권 관련 법안의 처리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가 열렸다.
최윤희 합참의장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 이와사키 시게루 일본 통합막료장이 미국국방부 산하 아·태안보연구소(APCSS)에서 만났다. 3국 합참의장 회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국 합참의장 회의는 중국 봉쇄를 겨냥한 한미일 3국간 군사·안보협력을 상징한다.
미국을 매개한 사실상의 한일군사협력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3국 합참의장 회의가 열린 시점도 문제다. 아베 내각의 도발로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중대한 변수가 발생한 직후이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직전에 열렸기 때문이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을 재해석한 직후 3국 합참의장 회의가 열린 것은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또한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3국 합참의장 회의가 열린 것은 미국의 중국포위전략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진에 예민한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일본은 사실상 전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일본이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현실에서 우리의 대응은 이전과 달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에 대해 “이를 전후 평화헌법에 따른 방위안보정책의 중대한 변경으로 보고, 예의 주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자위권행사 과정을 투명하게 해줄 것과 자위권을 행사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허락과 동의를 받고 할 것을 요청했다.
정부의 입장은 일제 식민지 36년의 참화를 겪은 국민 정서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전범국가 일본이 역내에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 자체에 대하여 명확히 반대하고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일본 국내에서조차 아베 내각의 이번 헌법해석 변경에 대하여 찬성보다 반대 여론이 훨씬 높다. 교도통신은 아베 정권의 안보정책 전환에 대해, 중의원을 해산해 국민에 신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68.4%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마당에 정작 일본의 전쟁 피해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예의 주시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박근혜 정권이 인정해주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힘써야 할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나아가 한일간 군사협력을 확대하며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양해각서 체결 추진 등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힘을 싣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유럽 19개국에 배포되는 주간신문 유로저널 사설, www.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