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위대한 착각
뉴스로=소곤이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왜 박근혜는 탄핵심판을 끝까지 기다렸을까. 워낙 상식이 물구나무서는 세상이지만 난 애당초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로 탄핵선고를 내릴거라고 생각했다. 돗자리 까는 소리가 아니다. 박근혜는 최순실국정농단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탄핵이기 때문이다.
대명천지(大明天地), 일국의 대통령이 전문지식도 없는 일개 아줌마에게 일급비밀 국정자료를 빼돌리고 그녀의 뜻대로 통치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알량한 증거자료 보일 것도 없이 박근혜 스스로 고백을 국민 앞에서 했던 바다. 수하의 심부름꾼들이 여럿 구속된 것만으로도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탄핵이 안될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니..
하긴 탄핵소추된후 90여일이 지나도록 하야는 커녕, 기세등등하는게 단단히 착각하는 듯 싶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애국 참칭(僭稱) 가짜보수세력이 순진한 국민들을 꼬드겨 대규모 집회를 갖는 것에 만용이라도 생겨났을까.
8명 재판관중 3명만 편들어주면 기각되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속닥였나? 재판관 2명은 박근혜가 지명했으니 보은(?) 할거구 보수성향 한두명이 더 있으니 최소 3표는 나올거라고 계산한건데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지. 명예로 죽고사는 헌법재판관들을 어찌 그렇게 업수히 봤단 말인가.
솔직히 난 박근혜가 시간 끌다가 탄핵선고 직전에 전격 하야를 선언할 줄 알았다. 그럼 탄핵 각하(却下)를 유도할 수 있고 설사 인용을 한다 하더라도 논란이 되고 지지층의 동정심 유발에, 전직 대통령 예우(禮遇)까지 고스란히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막판에 박근혜가 빠져나갈까봐 난 몸이 달았다. 그런데 내 예상을 깼다. 이는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계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두표라도 나왔다면 모르겠지만 8-0이다. 하나마나한 승부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인건 혼이 비정상이거나 대착각을 한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녀의 두뇌회로를 망가뜨렸을까.
<청와대 홈페이지>
거슬러가면 박근혜의 헛발질은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 보도 다음날 대국민사과를 할 때부터였다. 그전에도 여러 의혹들이 이어졌지만 최순실의 국정농단 자료가 들어있는 태블릿 PC는 치명적인 증거였음엔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이 대목에서 뼈아픈 실수를 했다. 훗날 그 태블릿이 최순실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국민사과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만일 태블릿을 무시하고 “난 모르는 일이다, 가짜다” 계속 부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냥 의혹만 제기되다 말았을 것이다.
대국민사과는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었다. 문제의 태블릿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숱한 국정농단행위가 걱정됐을 것이다. 철판깔고 모르쇠하기보다는 조금만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게 좋다고 성급하게 선빵을 날려본 것이다.
국민들은 긴가민가 했는데 박근혜가 사과하는걸 보고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게 최순실의 취미라는 고영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간의 의혹을 포함한 국정농단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박근혜가 진짜 사과할 생각이 있었다면 하야를 각오했어야 했다. 그러나 꼼수에 꼼수로 판을 벌였다. 국민여론을 눈치보다 슬쩍 눈시울도 붉히며 2차, 3차 대국민 담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미 언론의 불같은 폭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장기인 유체이탈화법, 안면몰수, 꼬리로 몸통치기, 어떤 것도 힘들어진 상황이 된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통과된 12월 9일 이후라도 자진하야의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나마 살 길이었다. 그녀를 망조(亡兆)나게 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박근혜를 사모한다는 집단과 김진태, 서석구 류의 꼴통극우파 의원과 변호인들이었다.
일이 잘 되느라고 태극기 들고 탄핵반대를 선동하는 시위대의 모습도 늘기 시작했다. ‘종북좌파’ 촛불과 ‘애국보수’ 태극기의 구도가 만들어진 덕분에 허파에 서서히 바람이 들어가고 있었다.
특검수사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약속한 수사협조의 기억을 상실한 그녀는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음에도 신년초 청와대 기자단을 불러 간담회를 빙자(憑藉)해 하고 싶은 소리를 쏟아냈다. 조중동과 종편방송 어느 하나 믿을 게 없었던지 듣보잡 인터넷 TV와 인터뷰하는 처연한 모습도 보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탄핵심판을 끝까지 가게 한 중요한 단서가 한가지 있었다.
너무나 해맑게 이렇게 얘기했다.
“태극기집회 수가 촛불보다 두배나 많잖아요..”
탄핵반대가 촛불시민의 두배가 된다는 어이없는 착각, 아무리 후한 여론조사도 반대 비율이 20%를 넘지 못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집회때마다 ‘200만이네, 300만이네, 500만 모였네’ 주최측이 주장하는 환상의 숫자에 매몰(埋沒) 된 것이다.
청와대 보좌진이나 변호인들도 필경, “국민여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헌재에서 기각 3명 이상 무조건 나옵니다”하며 계속해서 환영(幻影)을 심어줬을 것이다. 집회마다 개근하는 김진태는 물론이고 ‘그네동생’ 윤상현 '원조친박' 조원진, 하다못해 김빠진 맥주같은 이인제, 김문수의 동참도 힘이 됐을 것이다. 벼랑끝으로 점점 내몰리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급기야 박근혜를 확실히 망치는데 대활약 한 70대 용장(勇將)이 나타났으니 그 이름하여 ‘김평우’다. 소설가 김동리 아들중에 이런 이가 있었다는걸 처음 알았지만 경기고 서울대 하버드 로스쿨 화려한 학력과 변호사협회장 등 빛나는 경력의 노법조인이 어쩌면 하는 말이 다 저급하고 폭력적인지..예의나 이성, 합리적 언동은 고사하고 헌재까지 조롱(嘲弄)하는 행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길을 갈때나 밥먹을때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활보하는 백발의 서석구와, ‘탄핵을 탄핵한다’는 김평우의 좌충우돌에 박근혜는 잔뜩 고무(鼓舞)되었을 것이다. “이제 3월 10일이면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어 짠~하고 대통령직 복귀해야지”,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모든걸 고영태일당의 음모로 돌리고 퇴임후 뒤를 지켜줄 후계자 만들기 열공하자” 달콤한 꿈도 꾸었을 것이다.
판사출신 민주당 의원 박범계는 탄핵선고 직후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만장일치 탄핵심판을 예상했는데 판결 당일에 대통령 변호인들이 웃고다니는 등 표정이 너무 좋았다. 이거 기각되는거 아닌가 하고 긴장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뭐라구? 만장일치로 파면? 필러시술로 탱탱해진 볼살을 꼬집으며 꿈인지 생신지 확인했을까. TV 생중계를 지켜봤다면서 비서진에게 정말 탄핵된거냐고 물었다니 이런 웃지못할 코미디가 어디 있단 말이냐.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혀도 유분수지, 내가 뽑아준 인간들까지 날 탄핵시켜?”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을 그녀. 그런데 복수가 문제가 아니다. 이제 불소추 특권도 사라지고 언제 구속될지 전전긍긍하는 신세다, “오 신이시여, 제발 꿈이라고 말해주세요..” 주르륵, 낙루(落漏) 하고 있지는 않을까.
박근혜 패는 스스로 만든 환상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요즘 박사모와 탄기국, 김평우 서석구 김진태같은 이들이 너무 이뻐보인다. 저들이 박근혜 머리에 완벽한 착각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탄핵심판을 받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을테니 말이다.
고맙다 ‘박탄김석태’~ 니들이 참 큰일했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소곤이의 세상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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