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진가’로 불리는 김진석 사진작가는 그동안 한국은 물론 스페인, 일본, 아프리카 등지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사진에세이 《걷다 보면》을 출간,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로 우뚝 섰다.
김작가는 두 달 동안 파리에 머물며 파리의 뒷골목을 앵글 속에 담을 예정이다.
9월 23일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걸어서 만나는 순간”이란 주제로 김진석 사진작가의 강좌가 열린다.
▶ 사진에세이 《걷다 보면》이 사진과 함께 진솔하고 담백한 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출간이 벌써 일곱 번째로 아는데, 사진에세이를 꾸준히 내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정확히 말하면 사진에세이로는 이번이 두 번째 책입니다. 사진집까지 합해서 일곱 번째 책이지요. 사실 사진작가라면 ‘사진집’을 내는 게 맞을 겁니다. 글이라는 건 작가의 몫이고 사진작가라면 사진으로 말해야 하니까요. 지금도 제 개인적으로는 오직 제 사진으로만 구성된 훌륭한 작품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출판 현실이 제게 펜까지 들도록 강요하더군요. (하하)
한국은 DSLR 카메라 천만시대라고 할 정도로 한 가구에 한 대 꼴로 DSLR 카메라가 보급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사진 문화 자체의 발전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성장의 부속품처럼 따라와 ‘카메라에는 관심이 있으나 사진에는 관심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훌륭한 사진집을 구입해서 본다거나, 사진 작품을 사지는 않는 겁니다. 유명 사진작가들의 사진집이라 하더라도 초판 2000부가 다 소화되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진집 전문 출판사는 거의 전멸 수준이고, 대표적 출판사인 ‘눈빛 출판사’마저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사진집 출판을 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부는 사진 열풍을 떠올리면 아주 기이한 현상이죠.
이러한 현실과 출판계의 불황이 이어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사진에세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간 출간된 제 사진집들로는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어요. 이번 《걷다 보면》으로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어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죠.
▶ 사진기자로, ‘말’지 객원기자부터 ‘여의도통신’ 편집장 등 다양하게 일을 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걷는 작가’로 불리고 계시는데요. 걷는 작가로 방향을 바꾸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제주 올레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네요. 구슬땀, 거친 숨소리, 지친 발걸음, 따스한 미소, 편안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눈빛 등 각양각색 다양한 사람들의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표정이 제주의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에서요.
워낙 전투적인(?) 매체에서만 일하다 보니 모든 것에 지쳤었어요. 몸도 마음도. 그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의도 통신을 끝으로 기자 생활을 완전히 그만둔 터였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쉬면서 우연히 만난 곳이 제주 올레였지요.
▶ 어떤 계기로 사진을 찍게 되셨나요?
-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아 직장(모 신문사 마케팅 부서)을 계속 다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무렵이어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언론인이었지만 도통 길이 보이질 않았죠. 어느 휴일 혼자 집에 있는데, 문득 아내가 취미로 찍던 사진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무작정 들고 나가 뭔가에 홀린 듯이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현상소에 맡겼어요. 그때 제게 사진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사진기자가 제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곧장 회사를 그만두고 사진과에 입학해 버렸죠.
▶ 이번에 40일 정도 파리에 머물며 사진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테마로 작업을 구상하고 계신가요?
- 파리는 여러 번 왔었어요. 사실 왔었다 하기에는 너무 짧은 일정들이었던지라 민망하네요. 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저에게 파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지나쳤던 창밖의 풍경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요. 파리의 구석구석, 관광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뒷골목까지 샅샅이 걸으며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치듯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의 구상으로는 1구에서 20구까지 모든 골목을 걸으며 사진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분들의 다양한 삶의 표정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딱 한 장을 고르신다면?
- 어려운 질문이네요. 굳이 한 장을 골라야 한다면 네팔의 쿰부히말라야 칼라파타르(해발 5,550m)에서 찍은 에베레스트의 일몰을 고르겠습니다. 목숨 걸고 찍은 사진이라 더 애착이 가는 사진이죠. 당시 전 고산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어요. 식사도 거의 할 수가 없어서 몸 상태가 엉망이었죠. 목적한 포인트를 얼마 안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눈보라가 칠 예정이라 나머지 동료들도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껏 골골거리던 제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혼자서라도 오르겠다고 고집을 부린 거예요. 일몰이 제대로 보일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결국 셀파 한 분을 대동하고 혼자 산을 마저 올랐어요. 말 그대로 기듯이 올라갔죠. 하늘을 가린 잿빛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도하면서요. 눈앞은 암전된 것처럼 캄캄하고 몸은 물밑에 잠긴 것처럼 무거운 데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만큼 극한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셀파가 지르는 환호성 소리가 들리더군요. 거짓말처럼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지금도 어디에 그런 기운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카메라를 들고 미친 듯이 일몰을 담는 동안 그전까지 절 괴롭히던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마법 같은 하늘은 곧 사라졌지만 셀파는 정말 운이 좋다며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군요. 자기도 그런 하늘은 몇 번 보지 못했다면서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캠프로 돌아가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오랜 시간 사진 강의를 하셨는데, 사진을 잘 찍는 법과 사진을 잘 보는 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기본에 충실하게, 꾸준히, 반복된 연습으로 필요한 사진 기술은 모두 습득할 수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건 노출, 초점, 구도 등입니다.
사진을 잘 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되겠네요. 사진은 매우 주관적인 매체입니다. 개인적인 감성, 이성, 사유 등의 시각으로 사진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니 좋은 사진이라는 것도 개인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형편없는 사진이 다른 사람 눈에는 영감을 주는 훌륭한 작품일 수도 있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고요. 다만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진에서 진정성이 보인다면 좋은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사진은 매우 접근하기 쉬운 매체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기초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진은 카메라 셔터만 누를 줄 알면 찍을 수 있으니까요. 보급형 카메라의 공급으로 전문가 못지않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매력이지요. 다만 사진 찍기를 취미로 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카메라라는 기계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좋은 사진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보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김진석 사진작가는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때문인지 얼핏 산적 같은 용모이지만, 실제로 대화를 나눠 보니 매우 부드러운 성품에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가벼운 농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 가득 띠면서도, 사진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것은 그의 사진과 글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두 발로 길을 걸으며 직접 사람과 부딪쳐 교감하고 찰나의 감동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는 김진석 사진작가. 파리를 누비게 될 그의 발과 카메라가 또 어떤 감동을 전해줄지 기대된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
사진작가 김진석 사진강좌 “걸어서 만나는 순간”
ㅇ 일시 : 2014년 9월 23일(화) 16:00
ㅇ 장소 :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01.4720.8386
2 avenue d’Iéna 75016 Paris
www.coree-culture.org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것은 사진에 담긴 이들의 기쁨, 고통, 슬픔,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걷고, 먹고, 자며 조금 더 진실 되게 그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나를 보고 느낀다. 결국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걷다보면>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중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