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민권 승인을 기다리는 이들이 지난 3년 사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턴불(Malcolm Turnbull) 집권 당시 4만6천 명이던 시민권 심사 대기자는 올해 2월 현재 24만 명을 훌쩍 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계 거주자 승인 비율이 크게 하락했다.
2015년 턴불 집권 이후 425% 증가, 중국계 거주자 승인비율 낮아져
최근 수년 사이 연방 정부가 승인한 시민권 비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계 거주자에 대한 시민권 신청 승인 비율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근래 호주 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된 호주-중국간 정치 및 외교적 갈등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가 입수,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2017-18년) 첫 8개월(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 동안 중국계 시민권 신청에 대한 승인은 1,559명으로, 이는 2016-17년 한해 6천500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이전 회계연도(2015-16년) 중국계 거주민의 시민권 신청은 약 1만 명에 달했으며 이들 중 8천 명이 넘는 이들에게 시민권이 승인됐다.
지난 2012년에서 2016년 사이, 호주 전체 시민권 신청자 가운데 중국계 거주민은 6%, 승인 비율 또한 6%에 달했다. 호주 내부무(Department of Home Affairs) 자료에 따르면 지난 수년 사이 중국계 거주민의 시민권 취득 비율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지만 지난해 회계연도 시작(2017년 7월1일) 이후 올 2월까지 승인율은 전체의 3% 미만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이는 비록 2017-18년 회계연도 중 8개월의 수치이지만 이전 연도와 같은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올 2월 이후부터 6월30일까지 대부분 신청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기간(2017년 7월1일부터 2018년 2월까지) 인도계 거주자의 시민권 신청 비율은 이전 년도 15%에서 18%로, 영국계 거주자는 14%에서 16%로 증가했다. 남아공계 거주민 승인 비율 또한 3%에서 5%로 늘어났다.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총리는 최근 의회 연설에서 중국 당국의 호주내 정치-학술-군사적 이익에 대한 영향력 증가로 손상된 호주-중국간 관계 회복을 위한 방안을 거론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호주 내 중국계 커뮤니티는 중국 당국의 영향력이 현지 거주민의 시민권 승인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연방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에서 수석 약사로 근무했던 홍콩 출신의 샘 웡(Sam Wong)씨는 “지난 45년간 호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년여 기간은 내가 경험한 최악의 해였다”라면서 “호주와 중국간 정치적 긴장이 호주내 중국계 거주자에 대한 시민권 승인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계 기업인들의 호주 정계에 대한 로비와 지나친 정치 후원,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중국계 인사의 호주 주요 대학 기금 지원 등이 정치-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으며 사회 일각에서 반중국 정서가 대두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웡씨는 지난 1999년 호주 다문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Order of Australia’ 메달(민간 및 군사 부문에서 수여하는 시민 대상 훈장 메달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수여한다)을 수훈한 바 있다.
자유-국민 연립 정부의 주요 공직을 맡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은 특히 올 들어 호주가 수용하는 이민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시민권 승인 요건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상원에서 연기된 바 있다.
호주 정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시도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지난 5월, 서부 호주 캐닝(Canning, WA)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당 소속 앤드류 해스티(Andrew Hastie) 하원의원이 의회 면책 특권을 사용해 중국계 호주 기업인들의 정치 뇌물을 고발(본지 5월25일 자-1294호 보도)하면서 큰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지난 주 금요일(17일), 페어팩스 미디어가 입수한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중국계 시민권 신청 및 승인에 대해 연방 시민권 및 다문화부의 알란 텃지(Alan Tudge) 장관은 구체적인 언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다만 내부무 대변인은 “연방 정부는 특정 국가 출신 거주민(영주비자)의 시민권 심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멜번에 거주하는 중국계 조 마(Zoe Ma)씨는 시민권을 신청한 이후 17개월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권 신청 중 해외로 나갈 경우 이의 심사가 중단될 것을 우려한 그녀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것조차 미뤄 왔고, 지난 7월 그녀의 할머니는 사망했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는 그녀는 “그것(시민권)이 언제 승인될런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호주에서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거주자는 공무원 직종에 신청하거나 정부 지원의 학비 융자(HECS-HELP)가 불가능하다. 또한 외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호주 거주 비자 스폰서 역할을 할 수도 없으며 호주 내에서 투표권도 부여되지 않는다.
페어팩스 미디어에 따르면 시민권 신청에 대한 연방 정부의 심사 건수는 300%까지 늘어난 상태이다. 하지만 내무부의 새 자료는 ‘심사대기’가 더 심각해 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권을 신청한 뒤 승인을 기다리는 이들은 올 2월 18만8,848명이었지만 6월에는 24만1,606명으로 늘어났다. 이 수치는 턴불이 집권하던 2015년 4만5,985명에 비해 425%가 늘어난 것이다.
호주 시민권 신청자에 대한 보안 검사는 내부무에서 진행된다. 연방 정부는 이처럼 시민권 수여 심사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노동당 정부 당시 받아들인 5만 명의 난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난민 가운데는 서류 하나 없이 호주에 발을 디딘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한편 호주 감사원(Australian National Audit Office)은 내년 1월 연방 정부의 시민권 심사 절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 일부 국가 출신 시민권 승인 수
(2012-17년 사이. 국가 : 2017-18 / 2016-117 / 2014-15 / 2012-13년-명)
-India : 10,168 / 22,006 / 21,853 / 18,271
-UK : 9,195 / 19,617 / 19,229 / 19,056
-South Africa : 2,617 / 5,219 / 6,384 / 7,989
-Philipines : 2,399 / 8,745 / 8,753 / 8,757
-Sri Lanka : 1,962 / 4,282 / 3,533 / 2,646
-China : 1,559 / 6,513 / 6,841 / 8,016
Source: Department of Home Affairs, 2018. *Figures as of February 28, 2018.
■ 2018년 2월 현재 시민권 승인 대기자 수
2012-13년(노동당 집권 당시) : 33,634명
2013-14(Abbott 정부 / 자유-국민 연립) : 26,920명
2014-15(Abbott 정부/ 자유-국민 연립) : 22,952명
2015-16(Turnbull 정부 / 자유-국민 연립) : 45,985명
2016-17(Turnbull 정부/ 자유-국민 연립) : 106,383명
2017-18(Turnbull 정부 / 자유-국민 연립) : 241,606명
Source: Department of Home Affairs, 2018.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