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늘 트럭 일을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아팠다. 첫 번째는 PSD 시작한 첫날이었다. 당시 네이슨이 새로 사 준 베개가 안 맞았는지 자고 일어나 등쪽 척추가 무척 아팠다. 한동안 내가 가져온 베개를 썼다. 지금은 네이슨이 사 준 베개를 잘 쓰고 있다. 오늘은 명치 쪽의 통증으로 자다가 깼다. 택시 일 할때 아픈 이후로 처음이다. 어제 월마트에서 장 본 후 이것저것 허겁지겁 먹은 탓으로 채한 듯 하다. 손발의 관련 혈자리를 눌러보니 아프다. 사과식초 희석한 물을 마시고 다시 잤다. 이런 날은 금식이 좋다.
아침에 다시 일어나니 가슴은 아프지 않았다. 밀크티만 만들어 마시고 출발했다. 연료가 절반이다. 주유소 추천 매크로를 보냈더니 이 인근의 러브스 트럭스탑을 알려왔다. 그곳에서 연료통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종일 달리는 날이다. 테네시 - 켄터키 - 인디애나 - 일리노이 순으로 왔다. 일리노이에 오니 중부 시간대로 바뀌었다. 현지 시간 오후 4시가 좀 넘어 러브스 트럭스탑에 도착했다. 배달지까지 마지막 러브스 트럭스탑이다. 샤워 혜택이 있다보니 러브스를 자연히 찾게 된다. 이곳은 규모가 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자리가 많았다. 가장 먼 쪽에 트럭을 주차했다. 오늘은 일부러 알리닥(Alley Dock) 후진으로 주차했다. 더 쉬운 자리도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연습 삼아 알리닥으로 주차할 계획이다. 주변에 다른 트럭이 없는 자리에 주차했다. 익숙해지면 한쪽에만 트럭이 있는 자리, 양쪽에 모두 트럭이 있는 자리 순으로 연습할 참이다.
샤워를 하러 가니 대기자가 6명이다. 한 30분 기다려 샤워했다. 파일럿에 비해 러브스는 샤워실이 좀 적은 듯하다. 어제 산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과일도 먹고, 케익도 먹고 또 과식(過食)을 하려 한다. 맛 있어도 자제해야지.
약 100마일 남은 거리에 내일 오전 7시 30분 배달이다. 두 시간 운전 잡고 1시간 미리 도착한다고 치면 오전 4시 30분에 출발하면 된다. 집에 다녀온 이후 두 번의 배달이 모두 낮시간이라 다행이다. 밤에는 자고 낮운전이 내게 맞다.
지난 주 연비(燃費)는 7.4마일이었다.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집에 간다고 너무 무리했나? 이번 주는 약 8.0마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9마일 넘게 연비 나오는 사람들이 부럽다. 새 트럭을 받으면 나도 그렇게 되려나?
다사다난한 하루
주소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구글맵에 같은 주소가 검색된 기록도 있다. 한번 다녀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제의 그 장소였을 줄이야.
오전 4시, 알람 소리에 깼다. 더 자고 싶다. 20분 타이머 맞추고 더 잤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화장실 이용하고 커피 리필하고 출발했다. 아직 캄캄한 어둠이다.
오전 6시 30분, 배달지에 도착했다. 아직 조용하다. 공간이 넓어 닥에 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짐 내리고 나서 보니 트레일러는 깨끗했다. 단지 파라핀 같은 질감의 햐얀색 작은 조각들이 약간 흩뿌려져 있었다. 낙엽치우는 송풍기가 있으면 휙 불어 버리면 될 것 같다. 고민을 했다. 트레일러 워쉬아웃(wash out)을 해야 하나? 그래도 식품을 실을 가능성이 큰데 정체 모를 가루가 있으면 찜찜하지. 가장 가까운 세척장을 검색했다. 그리고는 달렸다.
세척장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다. 좁은 도로에다 막다른 길목이었다. 정상적으로는 유턴할 길이 없다. 전문 세착장이 아니고 트레일러 관련 사업체인데 부업으로 내부 세척도 하는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방법이 있나. 그냥 알리닥 후진으로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며 댔다. 이 정도라도 하는 게 나로서는 괄목성장이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PO넘버도 요구한다. 대게는 기본 정보만 알려주면 업체에서 프라임으로 전화를 걸어 PO넘버를 받는다. 이곳은 자기네는 전화 안 한다며 양식을 주며 나보고 채워 넣으란다. 매크로 중에 PO 넘버 받는 메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찾아보니 있다. 필요한 내용을 적어서 넣으니 자동으로 PO 넘버가 왔다. 생각보다 쉽군.
아직 다음 화물이 안 들어왔다. 트럭스탑에 가서 쉬면서 기다려야겠다. 이 인근에는 트럭을 세울 자리가 없다.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을 검색해 그곳으로 향했다. 공사도 있고, 길이 막혔다. 거의 다 와서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운전 중에는 메시지를 확인 못 하지만 신호등에 걸려 정지한 상태라 메시지 확인이 가능했다. 이럴수가, 내가 가는 곳과 가깝다. 다음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트럭스탑이고 좌회전하면 발송처 방향이다. 일단 좌회전했다. 길가에 트럭을 멈추고 메시지를 자세히 확인했다. 약속 시간이 12시다. 지금은 9시. 일단 가보자. 목적지에 도착하니 회사 이름이 다르다. 길가에 세워두고 걸어서 경비실로 가서 물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예전 이름이란다. 제대로 찾아왔다. 출입 전에 트레일러 세척 영수증을 보잔다. 세척하길 잘 했다. 발송 사무실로 들어가니 별 말 없이 4번 닥에 대란다. 공간의 제약으로 약간의 트릭이 필요한 곳이다. 일반 승용차 진입 공간으로 좌회전 해서 후진을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려서 보니 7번 닥에 대고 있다. 트럭으로 후진할 때 방향 감각이 헷갈린다. 다시 4번 닥으로 수정해 댔다. 배달지 주소가 어딘지 익숙하다.
가는 중에 그 다음 화물 예고까지 들어왔다. 살펴보니 배달지에서 바로 물건을 받아 메릴랜드로 간다. 사고로 길이 막혔다. 오후 6시에는 멈춰야 하는데, 동부시간으로 바뀌니까 7시까지 운전할 수 있다. 구글맵이 우회 경로를 안내한다. 구글맵을 믿을 수는 없다. 트럭이 못 가는 길로 안내할 수도 있다. 출구를 지나쳐 계속 진행했다. 더 극심하게 막혔다. 다음 출구에서 빠져 나갔다. 평지라 낮은 다리 같은 것은 없을 듯 하다. 길이 좁아도 트럭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퀄컴과 가민도 새로운 경로를 안내한다. 구글과는 다르다. 구글이 안내한 길은 역시 좁은 길이었다. 트럭이 갈 수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안전한 경로를 택했다. 다들 고속도로에서 나왔는지 우회경로도 막혔다. 참고 가야지 방법이 없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내가 가본 곳 중 최악이다. 보통 휴게소는 한 열로 트럭을 세운다. 뒤에서 들어와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돼있다. 그런데 이 휴게소는 두 열로 돼있다. 그러니까 앞에 트럭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앞 트럭이 언제 움직일 지 모른다. 10시간 휴식을 취하는 트럭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뒷 줄에 서 있다가 앞 트럭이 떠나면 앞 줄로 움직였을 것이다. 이 휴게소는 스타벅스, 던킨, 판다 익스프레스 등 음식점이 있다. 이 시설을 이용하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이런 곳에서 후진으로 트럭을 빼 나가기는 꽤 어렵다. 나도 시도해보다 포기했다. 우측에 밥테일 트럭이 약간 뒤로 서 있어 공간이 조금 있다. 그 공간으로 나가려고 시도했다. 아슬아슬 머리는 빠져 나왔지만 트레일러가 앞 트레일러에 막혀 나갈 수가 없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할 수 없이 앞 트럭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운전자는 자다가 나왔다.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조금 빼달라 했다. 그 후 간신히 빠져 나왔다. 다시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이상한 휴게소에 멈추지도 않으리라. 20대 가량 주차하고 화장실에 자판기만 있는 중간 규모의 휴게소가 가장 낫다.
원래는 화물을 내리고 새로 받아 트럭스탑에서 쉬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시간이 촉박해 트럭스탑에서 먼저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배달하는 것으로. 목적지에서 1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트럭스탑에 도착하고 나서야 지난 번에 왔던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정상회담 했던 곳. 역시나 주차가 힘들다.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30분 걸려 겨우 주차했다. 다른 프라임 드라이버들도 도와줬다. 그런데 디스패처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쉬기 전에 예정된 화물 먼저 받고 쉬란다. 나 시간 없어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가 다시 알았다 시도 해보겠다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30분 남았다. 가는데는 5분도 안 걸린다. 주차한 노력이 아깝지만 이곳에서 그다지 쉬고 쉽지는 않았다.
문제의 그 장소. 빌에 적힌 주소가 달라 하루나 나를 묶어 두었던 그 곳이다. 다음날 집으로 필사의 질주를 해야 했던 곳. 짐을 내리는데는 아무 문제 없었다. 빈 공간에 트레일러 내려 놓았다. 셋업을 제대로 하니까 좀 과감한 후진도 가능하다. 문제는 픽업할 트레일러를 찾는데서 생겼다. 컨펌 넘버를 요구한다. 그런 것 없는데? 내가 준 PO 넘버로는 검색이 안 된단다. 디스패처에게 물어도 필요한 정보는 다 줬다고 했다. 결국 사무실로 가 PO 넘버를 주며 좀 찾아 달라고 했다. 전화를 주겠단다. 마당 가운데 세우고 기다렸다. 오후 10시에 전화가 왔다. 1번 닥에 있는 트레일러 앞에 주차하라고 했다. 연결은 하지 말고. 짐이 다 실리고 트레일러 연결하고 서류 작업하니 12시가 넘었다. 게다가 서류가 복잡하다. 배달지가 두 곳이다. 정리해 보고하느라 거의 한 시간 걸렸다. 설정 온도도 이상했다. 두 곳이 온도가 다르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 디스패처에게 보고했다. 세일즈 부서와 고객사에 알아보겠단다. 얼마 후 20도로 하라고 연락이 왔다. 잠시 후 26도로 1차 배달지까지 가고 후에 20도로 최종 배달지까지 가라는 수정 지시가 왔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로 트럭스탑이나 휴게소까지 갈 예정이었지만, 이 새벽에 가봐야 자리가 없을 것이다. 원래 이 곳은 오버나잇 파킹이 안 되는 곳이지만 뭐라고 하지 않으니 10시간 휴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출발할 수 있다. 잠깐이라도 눈 붙여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팜랜드 푸즈와의 악연
새벽 3시가 넘어도 전화가 없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갔다. 도중에 차에 탄 경비가 내게 와서 34번 닥에 대라고 했다. 트럭으로 돌아가 34번 닥에 댔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 양쪽에 트레일러가 있고 밤이다. 썩 좋은 조건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를 했다. 처음에는 거리 가늠이 잘 안 돼 두 칸 왼쪽으로 향했다. 수정해서 다시 대는데 이번에는 두 칸 오른쪽이다. 안 보이면 내려서 확인했어야 했는데. 다시 앞으로 어렵게 방향을 수정했다. 다른 트럭이 들어와서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민폐(民弊)다. 아직도 방향 가늠이 잘 안 되지만 예전에 비하면 스스로 수정하는 능력이 생겼다.
닥에 대고 사무실로 가 체크인을 했다. 이곳은 작은 터치스크린에 5단계로 기본 정보를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이게 꽤나 번거롭다. 다른 곳은 이런 것 안 해도 잘만하더만. 그 다음은 럼퍼에게 가서 전화번호 남기고 왔다. 비용이 얼마인지 전화로 알려주겠다 했다.
트럭으로 돌아와 다시 잤다. 잠시 후 우당탕 소리와 진동(振動)이 느껴졌다. 짐을 내리고 있나보다. 5시 전에만 출발하면 시간 맞출 수 있다.
잠에서 깼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뭔 일이 생겼나 싶어 다시 사무실로 찾아갔다. 아직 짐을 덜 내렸단다. 아까 내리던 것 뭔데? 짐 내리는데 몇 시간이 걸리냐? 다시 트럭으로 왔다. 최종 배달지에 제 시간에 가기는 틀렸다. 8시가 거의 다 돼서야 전화가 왔다. 럼퍼피는 330달러였다. 서류 받고 출발하니 8시 30분이다. 잘 가야 1시에나 도착한다. 글렌에게는 미리 연락했다.
좌측 편두통에 컨디션도 별로다. 그래도 열심히 가야한다. 바다를 가로 지르는 긴 다리도 건너고, 여러 마을도 지났다. 1시가 안 돼 도착했다. 자칫하면 입구를 지나칠 뻔 했다. 퀄컴에서 안내하기로는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실제 팻말을 믿자. 뒤로 후진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오른쪽 주차장에 파킹하고 전화하라고 써있다. 시킨대로 전화하니 한참 걸렸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마침내 통화가 됐다. 번호를 불러주니 월요일 오전 11시 약속이란다. 지금 금요일인데? 장난하냐? 디스패처에게 연락했다. 글렌은 정오에 퇴근했고 화요일에나 출근한다. 세일즈에 알아보겠단다. 맨날 그 소리. 나는 다시 전화했다. 여직원은 매니저와 얘기해봤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고 했다. 월요일 오전 5시 30분에 체크인 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 주차장은 24시간 무료이니 걱정말란다. ‘아 네. 참 고맙네요.’ 금식하려고 했지만 쌀이 좀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햇반에 김치랑 해서 점심을 먹었다.
펜실베이니아 크로이돈(Croydon)의 로컬 야드에 트레일러를 내려 놓으라는 지시가 왔다. 거기까지는 4시간 거리다. 가다가 중간에 리퍼 연료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야 이틀을 버틴다. 뉴저지의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리퍼 연료를 넣었다. 다행히도 꽤나 복잡한 길인데 한 번도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찾아갔다. 컨디션이 나쁜데도 선방(善防)했다.
로컬 야드에 도착했다. 이름은 무슨 트럭스탑이다. 프라임 외에도 다른 회사 트럭과 트레일러도 있었다. 이곳과 계약 관계인 모양이다. 트레일러를 내려 놓으라는 자리는 몹시 까다로운 위치였다.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해야 한다. 나보다 앞서 들어온 프라임 드라이버에게 뒤를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후진을 했다. 그 운전자는 방향 수정 지시 없이 그대로 들어가라고 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구나.
트레일러 내려 놓고 빈 트레일러를 찾다가 그냥 밥테일로 주차했다. 오늘은 이걸로 됐다. 여기서 자고 내일 한다. 70시간 on duty도 9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새로 받는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합쳐야 12시간 30분이다. 시간도 아껴야 한다. 요며칠 무리했다.
도대체 그린필드의 이 팜랜드 푸드 회사는 나와 무슨 악연인지 매번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물건을 받을 때도 딜레이, 배달을 가도 딜레이. 서류는 항상 깔끔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번 모두 배달을 내가 완료하지 못했다. 다시는 이 회사 화물은 옮기고 싶지 않다.
머리 아픈 것은 조금 가셨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입이 자꾸 아쉽다. 참자. 과자 몇 개와 사과 하나로 때웠다.
트럭커로 복귀한 네이슨
어제 밤에 자정 넘어 네이슨에게서 문자가 왔다. 흰색 볼보 트럭 사진이었다. 자기 새 트럭이란다. 전화를 걸었다. 네이슨은 중고 트럭을 샀다. 20일경에나 받는단다. 랜드스타에서 일하기로 했단다. 랜드스타는 오너 오퍼레이터의 네트워크 같은 회사다. 철도일과 트럭 운전 중에 고민하더니 결국 운전으로 결정했구나. 어쩌면 길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대도시 주변 트럭스탑에서 만나면 같이 한국식당에라도 가야겠다.
트럭커에게 쉬는 날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든 운행이 없으면 쉬는 날이다. 바로 오늘처럼.
푹 자고 오전 9시경에 일어났다.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목에서 오른쪽 어깨로 연결되는 부위가 뻐근했다. 두통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야드에서 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하고 일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의 주말 담당은 뭔 소리냐 배달 월요일에 끝나는 것 아니냐는 생뚱 맞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일, 야간, 주말 담당이 모두 달라 내 상황을 모른다.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나? 나는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제서야 아 그럼 트레일러 야드에 내려 놓고, 그 전에 리퍼 탱크 가득 채우라는 얘기를 한다. 나 그거 어제 다 완료했다고. 어 그래? 누가 허락했어? 어제 담당자 이름을 찾아 알려줬다.
오전에는 책을 읽었다. 12시가 지나도록 새 일감 연락이 없었다. 나는 트럭을 몰고 어제 오면서 리퍼 연료를 채웠던 러브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데 메시지가 연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경우는 일감 지정이다. 달리는 중에 확인할 수 없어 계속 운전했다. 어차피 트럭스탑에 가까워졌다. 트럭스탑에 도착해 빈 공간에 후진을 시도했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냈지만 이제는 기회만 있으면 시도는 한다. 한방에 깨끗하게 맞추진 못하고 약간의 오차가 났다. 옆 자리의 빨간 트럭에서 여성 운전자가 내려서 뒤를 봐줬다. 차체가 직선 후진을 할 정도로 위치를 잡자 그녀는 이제 됐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트럭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오른쪽으로 좀 치우치긴 했어도 주차선 안에 반듯하게 세웠다. 운전석에서 옆 칸의 그녀에게 고맙다는 손짓을 했다. 비가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들어온 일감을 살펴보니 아까 있었던 야드에서 다른 트레일러를 연결해 배달하는 건이다. 타이밍 참 기막히다. 내용을 보니 더 가관이다. 35마일 거리, 1시간 운전이다. 장난하나. 300마일도 아니고. 35마일이면 15달러 정도 받는다. 그것도 내일 아침 배달이다. 이상한 일감 줘서 배달도 못하게 하더니 종일 쉬고 15달러짜리 배달을 준다. ‘미안한데 나 벌써 야드 떠났어. 샤워하려고 말이야. 사흘이나 못했거든.’ 메시지를 보냈다.
비가 좀 잦아 들기를 기다려 건물로 갔다. 샤워 대기자 순위 1번으로 기다렸다. 좀 있으니 대기자가 4명까지 늘었다. 오랜만에 큰 볼일과 면도, 샴프, 샤워를 마쳤다. 기분이 산뜻하다. 내일 새벽까지 그냥 여기서 쉴까? 아니다 밝을 때 가자. 샤워도 했으니 트럭스탑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다시 야드로 갔다. 야드에 도착하고 트레일러를 다시 뗐다. 잠시 후, 다시 야드로 돌아가 지정한 트레일러를 연결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이름을 보니 여자 같은데 아까부터 참 타이밍 잘 맞춘다.
‘나 벌써 야드 도착했거든. 일찍 배달 되는지 알아봐줘. 아니면 나 34시간 휴식 끝날 때까지 있을거야.’ 답이 없었다. 그녀가 보내 준 문자에는 전화번호가 111-111-1111로 돼있어 내가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퀄컴 기록을 확인하니 어제 오후 6시 14분에 휴식 시작한 것으로 돼 있다. 내일 오전 4시 14분이면 34시간이 지나 70시간을 다시 받는다. 아 그런데 아까 트럭스탑 간다고 오프듀티 드라이브 사용했지. 그럼 1시간 빼면 5시 14분에 출발 가능하다. 그때 출발해도 7시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났다. 퀄컴 시간은 중부 시간대라는 것을. 그렇다면 동부 시간인 여기는 6시 14분에 출발 가능하다. 그러면 늦다. 1시간 때문에 34시간 휴식을 못 채우고 가야 하다니. 할 수 없지. 그냥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하는 것으로 하자. 배달지가 필라델피아 중심부 근처다. 일요일이니 그렇게 막히진 않겠지.
오늘은 그냥 쉬는 날로 치자. 내 자신에게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아 월마트에서 산 쌀로 밥을 지었다. 밥이 거의 다 될 무렵 야드 관리인이 문을 두드렸다. ‘여기 오래 있을거야?’ ‘내일 아침에 갈 건데?’ ‘그러면 부탁 좀 들어줄래? 저기 너네 회사 트레일러가 한쪽으로 간격이 넓게 놓여 있어 다른 트레일러가 들어가기 어려우니 조금 이동해줘.’ 어제 내가 트레일러 넣었던 근처다. ‘나 초보자라서 어려운데.’ ‘그러면 저 자리는 어떻게 넣었어?’ 내가 귀찮아서 거짓말 하는 줄 아나보다. ‘사실은 나 요리 중이거든.’ ‘알았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 휑하니 가버린다. 얼마 후 밥이 다 됐다. 나는 짐을 다시 정리해 운전 모드로 바꾸고 트럭을 이끌고 가서 트레일러를 연결해 옮겼다. 관리인이 다시 왔다. ‘거 이상하네. 더 들어가기 어렵게 해놨네. 됐어 그냥 둬.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테니.’ 이런 기껏 부탁 들어줬더니. 에라 맘대로 해라. 다시 밥테일 주차 자리로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 빈 자리에 트레일러가 들어가 있었다. 그새 누가 트레일러를 옮겼나? 내가 옮겼던 위치 그대로 인 것도 같고, 옆으로 좀 더 이동한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밥은 아주 잘 됐다. 집에서 한 것처럼. 월마트에서 한국쌀처럼 통통한 쌀을 샀다. 거기다 긴 쌀을 조금 섞었다. 긴 쌀은 Long grain rice고 우리가 먹는 통통한 쌀은 Medium grain rice다. 긴 쌀이 맛은 좋지만 찰기가 부족하고 쉬이 배가 꺼진다. 2인분을 지어서 약간만 남기고 배불리 먹었다. 김치와 김, 고추장만 있어도 꿀맛이다.
모든 것의 기원 (부제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원제 : The origins of everything in 100 pages more or less)
지금 읽는 책이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데이비드 버코비치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모양이다. 지구물리학 교수지만 빅뱅에서부터 별의 탄생, 태양계의 탄생,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가 얘기하듯 말랑말랑한 과학책은 아니다. 어려운 과학 이론이 나와 신경 써서 읽어야 한다. 원서는 100페이지 내외인 모양인데 번역서는 300페이지에 가깝다. 줄 간격도 넓고 편집을 널널하게 해서 그런 모양이다. 번역도 자연스럽다. 번역자는 박병철 교수로 물리학 박사인데다 과학서적 번역가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이런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 좋다. 지구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일독(一讀)을 권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 |
- 0808 러브스 트럭스탑2.jpg (File Size:89.8KB/Download:50)
- 0809 다사다난하루.jpg (File Size:55.1KB/Download:45)
- 0809 팜랜드푸드2.jpg (File Size:75.6KB/Download:46)
- 0809 팜랜드푸드3.jpg (File Size:64.4KB/Download:48)
- 0811 쉬는날 1.jpg (File Size:64.9KB/Download:43)
- 0811 쉬는날2.jpg (File Size:64.0KB/Download: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