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경술합방 원천무효”
“일제강점이 아니라 경술왜란”
Newsroh=김창옥 칼럼니스트
혁명(革命)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이라는 권력 주체로서의 정치적 변화를 의미하지만 현재는 사회 문화 기술 등 전반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에서는 “통치형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만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18세기부터 일어나는 유럽의 주요혁명들은 통치형태만이 아니라 경제체제와 사회구조 및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혁명은 기존의 신조, 도덕, 문화가치 등이 타락하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기존가치를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힘을 기울였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폭군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기 위한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칸트는 사회에 좀더 높은 윤리적 토대를 실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만이 혁명이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정치적 혁명 또한 두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요구됩니다. 첫째는 일반 대중의 호응이 있는 백성의 시위(봉기)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그 시위가 원인이 되어 국가권력의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국가의 제도는 바로 헌법을 말합니다. 그러면 쿠데타는 무엇인가? 쿠데타는 바로 백성의 동조 없이 사리사욕과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위해 단지 군사력만으로 체제를 전복(顚覆)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겨레의 근대사는 넓게 보나 사전적의미로 좁게 보나 혁명의 연속이었습니다. 멀리 동학농민봉기(시위)를 살펴보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만주까지 그 시위(봉기)의 열기가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비록 1894년에 시작되어 그해 말에 진압되었고 주체세력에 의한 정권탈취는 실패했지만 그 결과로 1897년에 나라이름과 자주적 왕권이라는 대한제국이 탄생했습니다.
대한제국은 중국의 속국(屬國)이 아니라 황제국을 선포한 자주국이었기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명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바뀌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신난다", "신명난다"라는 말처럼 인내천은 바로 삼신할머니가 전해준 이얼이 나왔을 때 우아일체라는 지고한 이상이 실현됨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는 서양의 어느 혁명보다도 깊고 차원 높아 인간 정신의 심층적이며 최상층을 넘어서는 거대한 담론이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민족은 현대사회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기미년에 벌어진 3.1봉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삼일절은 삼신귀일야라는 말로 삼신은 곧 하나다라는 말이기 때문에 3월1일날 봉기한 것입니다. 삼일절을 3.1운동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틀린 용어입니다. 운동은 영어로는 Campaign 혹은 Movement입니다. 이는 한반도는 물론 우리민족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느곳에서도 함께한 목숨을 걸고 일어난 시위(봉기)가 Campaign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왜곡이요 혹세무민의 요설(妖說)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때 우리겨레는 2천만이 못되었는데 적어도 5분1이 목숨 걸고 일제의 총칼에 대항하여 참가했으며 참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백성 대부분이 동조하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즉 대한제국에서 나라이름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이고 대한제국의 입헌군주제의 왕정에서 주권재민(백성이 주인)의 공화정으로 제도를 바꾼 것입니다. 비록 영토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백성은 살아 있었고 그 백성이 지지하는 주체정부는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였던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당시가 일본제국주의 통치시대였기 때문에 삼일혁명은 오히려 일본제국주의를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인식과 해석상에 문제가 있습니다. 외교권이 박탈당한 을사늑약과 조선병합의 경술합방은 국제법상으로도 원천무효임을 이미 학계에서 검증된 사항입니다. 또한 박정희정부 시절 맺은 한일협약에서도 호사카유지 교수의 연구로 불법이었음을 일본측도 동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는 무효로서 엄연한 전쟁의 역사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말도 사실 틀린 말이고 이를 ‘경술왜란’이라고 명명해야 합니다.
멀리 고려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몽골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가장 넒은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고려만이 항복을 거절하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1231년부터 1270년까지 40년간을 전쟁 했습니다. 몽골은 오늘날 총독부와 같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고려에 설치하고 고려정부가 강화도에 피신했을 때 통치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시기를 대몽항쟁기라고 하지 몽골식민지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려의 전 백성은 강화도의 고려정부를 주정부로 인식하고 비록 몸은 몽골에 굴복했으나 정신은 저항을 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7년에도 임금은 의주로 피난가고, 전 국토를 왜구가 사실상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의병과 이순신 장군은 조선백성들의 전폭적지지로 끊임없는 저항의 전쟁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우리 백성은 조선정부를 저버리지 않고 왜구들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7년 전쟁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술합방 이후에도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여전히 건재했고 한줌도 안되는 노론과 일진회 등 친일파 역적 무리들만 일본에 아부하며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실질적 조선인들 전부는 고종과 대한제국을 정신적 지도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1919년 기미년에 고종이 승하하고 전 백성이 일제히 3월1일을 기해 봉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상해에 선각자들이 모여 대한제국을 끝내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임시정부라는 말은 국토가 왜구와 전쟁중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때까지 임시정부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3.1일 시위로 말미암아 대한제국의 왕정은 끝나고, 대한민국이라는 임정의 주권재민의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왜놈총독부와 무관하게 우리는 왜구와 여전히 전쟁 중이었지 일본식민지라 할 수 없습니다.
먼 훗날 후세들은 이 시기를 ‘경술왜란36년’이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근대에 세계 전쟁사 중 36년간을 이렇게 치열하게 수백만이 희생되며 전쟁을 치른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겨레 뿐입니다. 나라의 기틀인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삼일운동은 잘못된 말이고 삼일혁명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삼일혁명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인정하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된 삼일혁명 맞습니다. 임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북조선만이 정통성임을 인정하는 반쪽 역사관이 성립됩니다. 남북한 두나라 모두가 유엔에 가입된 실체적 국가입니다. 재차 강조하자면 우리민족은 남북한 모두가 정통성있고 엄밀한 국가체제라고 인식했을 때 통일이 우리 손에 들어오고 성취가능하게 됩니다. 이는 바로 우리조상들의 삼신할머니 기본사상인 음양상균의 원리에 의해 세상만물이 존재하고 상보한다는 진리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글 | 김창옥 AOK 공동대표
* 국선도 강의 6회 유투브에 올렸습니다. 제목은 ‘기유통도인법의 원리- 하늘몸으로 개통’ 입니다. 시간 나시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