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20)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내가 처음 위조지폐를 경험 한 것은 볼리비아에서였다. 강철 체력인 동행자 3명을 만나서 그들의 스케쥴에 맞춰 18일 동안 빡쎄게 페루를 돌아 보았다. 마지막 날 페루의 푸노에서 국경 통과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페루 - 볼리비아 국경을 넘을 때 이미그레이션 옆에 있는 환전소에서 달러를 볼리비아 돈으로 바꿨다. 그걸 처음 사용한 건 코파카바나에서였다. 거기서 내가 받은 돈 중에 20볼(BOL) 짜리 한 장이 위조지폐인걸 알게 됐다.
볼리비아는 공식 국가명이 볼리비아 다민족 국가 ( 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 다. 36개의 토착어가 헌법상에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다. 상당히 복잡다단한 남아메리카의 최빈국 중에 하나다.
티티카카 호수는 해발 3800 m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다. 크기는 충청남도 정도다. 호수 안에 있는 태양의 섬과 달의 섬이 유명하다. 코파카바나는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들르는 호반 도시다. 이름이 멋진 이슬라 델 솔 과 티티카카 호수도 실제로 가보니 크게 볼 건 없었다. 예쁘게 뽀샵해서 사진과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 덕에 過大包裝(과대포장)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는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 일행은 티티카카 호수와 태양의 섬을 보기 위해서 배를 타야 했는데 도착한 시간이 늦어서 하루를 코파카바나에서 머물게 됐다. 그 때 식당에서 계산 하면서 20볼 (BOL - BOLIVIANO, 약 3,000원 )짜리 지폐를 냈다. 종업원은 돈을 받자마자 바로 가짜라고 말하며 다른 돈으로 달라고 했다. 여자 종업원은 이런 일을 자주 겪었는지 전혀 놀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다른 돈을 찾아서 줄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새로 받은 돈을 꼼꼼하게 살펴 보더니 웃으면서 ‘오케이’ 라고 말 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 볼 일을 보았다.
처음 당한 일이었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냥 이게 데쟈뷰 ( DEJA VU )라는 거구나 싶었다. 워낙 많은 여행자들의 위조지폐 경험담을 읽고 들어서 인 것 같았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 쯤이야하고 대범하게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의도치 않게 그 위조지폐를 현지에서 사용하고 말았다. 볼리비아 법은 모르겠지만 한국의 형법에는 위조지폐를 직접 만들지 않았더라도 위변조 된 지폐라는 것을 알고 사용 할 경우 징역 2년 이상에 처 해지는 중범죄다. 물론 내가 모르고 사용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이 찜찜하다.
우리가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서 태양의 섬에 도착하니 선착장에서 원주민들이 나와 입도료를 받는다. 공식적인 건 아니고 주민들이 임의로 자기 동네 왔으니 내라고 해서 징수 하는 것이었다.
얼마전 한국인 40대 여성이 혼자서 이 섬에 왔다가 살해 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섬의 남쪽과 북쪽의 부족간 갈등이 심각해져 통행을 차단했는데 한국 여성이 그 곳에 혼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후에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내가 갔을 때도 남북 종주 트랙킹 도로는 차단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호수와 섬 이었지만 사람들은 별로 착하지 않고 무섭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간에 갑자기 돈을 내라고 해서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 백사장을 나서자 마자 바로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돌 계단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날씨는 덥고 힘이 들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가 없었다. 산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전망이 끝내주는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 놓고 섬 끝에 있는 전망대 까지 트랙킹을 하고 돌아왔다.
식사 후에 방으로 돌아와 사용한 돈을 정리하는데 귀중한(?) 위조 지폐가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 지갑, 캐리어, 배낭 까지 샅샅이 뒤져 봤지만 귀하신 가짜 돈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특별한 경험을 보여줄 꺼리였는데 사라져 버리다니 아쉬웠다. 어디서 빠졌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선착장에서 입도료를 낼 때 꺼내서 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위조지폐 사용범이 된거야? 걱정이 됐다, 그러나 위조지폐 사용범이 됐다는 두려움 보다도 그 위조지폐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액면가로 따지면 3.000원 정도 밖에 않되지만 내 여행의 매운 맛 칠리였다. 사진이라도 찍어 둘 껄! 위조지폐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게 많이 아쉬웠다.
페루의 푸노에서 출발해서 국경을 통과해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 . 페루 국경에서 일단 짐을 다 들고 내려서 이미그레이션과 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짐을 메거나 끌고 국경을 걸어서 넘어 볼리비아의 이미그레이션과 세관을 거친다. 버스는 볼리비아쪽으로 빈 차로 넘어 와서 대기 하고 있다가 다시 승객과 짐을 실고 출발한다.
우리 일행 4명 중 한 명 이었던 충청도 양반 고 선생님의 부인 께서 걸어서 국경을 넘고 있다. 차단기만 지나면 볼리비아다.
국경을 넘자마자 이미그레이션 옆에 있는 환전소에서 돈을 바꾸었는데 여기서 가짜 지폐가 섞인것 같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으니 다시 돌아가서 따질 수도 없었다.
20볼 짜리 진짜 지폐 사진이다. 내가 받았던 가짜 지폐는 색깔이 진짜 보다 훨씬 더 짙은 붉은색이었다. 위조지폐를 만들려면 20볼(3,000원 정도)짜리가 아니라 200볼 ( 약 30,000 ) 짜리 고액권으로 만들던지 하지. 하긴 고액권 가짜 지폐를 만들면 바로 들통이 날 테니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단위를 낮추었겠지.
태양의 섬으로 가는 배 표 다. 티티카카 호수 , 이슬라 델 솔 ( 태양의 섬) , 이슬라 델 문 (달의 섬).코파카바나, 이름만 들어도 참 멋지다 . 호기심이 저절로 솟아 꼭 가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우리나라 다도해, 제주도 이런 곳에도 태양의 섬 , 달의 섬 ,황제의 섬 , 사랑의 섬 ,환상의 섬 , 자유의 섬 같은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코파카바나 시내에서 부두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멋지다. 부두 양편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식당과 술집과 카페 그리고 여행사와 장거리 버스표 판매소 들이 몰려 있다.
태양의 섬의 선착장 내려서 바다와 하늘이 예뻐서 한 컷 찍음 . 지금 사진 보니 그 때만 해도 젊었던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청춘이라는 말이 맞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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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파카바나 버스.jpg (File Size:152.3KB/Download: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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