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월드컵 취재기' 막전막후<上>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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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평양 월드컵 예선전이 무성한 뒷말을 낳고 있습니다. 무관중 무중계 무취재 등 ‘3무 축구’,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수 없어서 ‘깜깜이 축구’라는 말도 나왔고 영국 BBC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축구 더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신바람이 난 것은 자한당과 수구언론입니다. ​‘2년간 남북관계 공들인 대가가 이건가’라며 문재인정부를 공격하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안타깝게도 축구팬들을 비롯, 많은 국민들도 반감과 심지어 적개심까지 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평양 경기 취재단에 포함됐던 한 언론사의 기자는 ‘취재 실패기’를 통해 답답하고 속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평양에 가기 위해 약 20일간 준비했는데 좌절됐으니 어이없고 부아가 치밀만도 합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사실 서운하기로 따지면 제가 더할 것입니다. 이번 평양 월드컵 취재를 위해 근 6개월전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해외동포기자로서 8월에 취재신청을 하였고, 9월 중순엔 사전답사 겸 평양을 방문하여 입장권 예약을 끝냈고, 김일성경기장을 직접 방문 취재하는 행운도 누렸습니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취재당시 축구기자로서 역사적인 남북통일축구 취재진에 합류하지 못한 개인적인 아픔도 달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취재계획은 경기일 닷새 전 ‘취재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방문할건지 알려달라’는 긴급 메시지를 받으면서 긴장감이 높아졌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현지에 가는게 급선무(急先務)였습니다.

 

 

14일 새벽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 심양에 오전 9시경 도착했습니다. 연결편인 고려항공이 1시간반 뒤에 있는데다가 트랜짓 비자 수속을 밟느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한국 여권은 중국에서 최대 72시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한 일행과 마주쳤습니다. 북에서 온 여자축구와 여자배구 선수단이었습니다. 물어보니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아침 일찍 고려항공을 타고 심양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평양서 열리는 월드컵 남북경기를 보기 위해 간다는 얘기에 지도원으로 보이는 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줄이 워낙 길어 북측 선수단의 양보를 구했고 다행히 입국장에 들어서 고려항공 카운터로 달려가 티케팅을 마치고서야 안도(安堵)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평양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25분경. 안내를 맡은 리 선생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마중합니다. 이날 오후에 남측 대표팀이 순안공항에 도착하기에 만나고 가려 했는데 도착 시간이 4시20분이라는 얘기에 일단 숙소인 평양호텔로 와서 여장(旅裝)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극소수 관계자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러하지만 축구는 특히 안방의 승률이 높은 경기입니다. 광적으로 응원하는 ‘훌리건’이라는 유명한 단어도 있지만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입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뒤지는 것으로 알려진 북측이 홈경기의 엄청난 잇점과 막대한 중계권료, 광고료를 포기하는 것이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시시각각 돌아가는 분위기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이번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일 경우, 자칫 남북관계에 치명타를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969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에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축구경기 결과 때문에 전쟁까지 벌인 ‘축구전쟁’도 있다시피 축구는 세상에서 가장 격렬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입니다. 북녘에서도 축구는 국기로 통하고, 경기가 열리면 뜨거운 열정을 과시하는 팬들이 아주 많습니다.

 

 

2005년 평양에서 열린 이란 전에서 팬들이 시리아 심판의 판정에 분노해 병과 쓰레기 등을 투척하는 바람에 FIFA로부터 ‘홈 무관중 징계’를 받아 결국 다음에 치를 일본전을 태국에서 치른 적도 있습니다. 북녘 축구팬들도 일단 열이 붙으면 아무도 못말릴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엄청난 잇점을 포기하고 무관중 경기를 한 배경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이번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렀음에도 양 팀 도합 4명의 경고자에, 북측에서 부상자까지 발생했습니다.

 

 

무중계와 무취재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남측에 대한 화풀이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협량한 분석입니다. 그보다는 남측 국민들이 생중계를 통해 북측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반감을 갖는 등 여론이 들끓을 수 있고, 특히 남측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도한다면 ‘반북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남북정상과 북미정상, 그리고 남북미정상의 만남이 연쇄적으로 이어진 저간의 과정은 우리 민족에게 천지개벽과도 같은 사변이요, 향후 남북미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중차대한 상황에서 축구 경기로 인한 돌발사태가 발생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깊은 숙려(熟慮)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측은 지난해 9월 역사적인 평양 공동선언 이후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대신 미국과의 합동훈련, F35기 수입 등 역대급으로 군비를 증강하는 남측에 대해 강한 분노와 배신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남측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기는 커녕,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이다” 등 본말을 전도하는 행보로 북측을 자극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북측이 “앞에서 평화의 악수를 하고 뒤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버리고 바른 자세를 찾으라”고 쓴소리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남측이 판문점회담의 초심을 회복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준열한 경고문인 동시에, 남북관계가 파국에 처해선 안된다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대체 어떠한 심중으로, 무슨 전략을 갖고 북측과 마주하겠다는 것일까요. 행여 북미관계가 잘 풀리면 남북관계도 덩달아 잘 풀릴 것이라는 ‘묻어가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일까요.

 

 

남북관계는 결코 북미관계의 종속변수가 아닙니다. 남북관계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개척하고 끌어가야 하는 독립변수입니다. 문재인정부는 지금이라도 지난해 9월 평양 능라도의 15만 군중 앞에서 엄숙히 행한 연설 대목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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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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