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소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소통’에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을 의미한다. 아무리 똑 소리나게 말을 잘하고 사리분별을 잘해 논리적인 표현이 뛰어나도 그 말이 일방통행이라면 어딘가 2% 부족하다.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업무중에서, 부부간에, 자녀간의 대화에서 한 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간의 의견을 조율해도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진만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말 속에서 오고 가는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소통의 가장 주요한 수단인 ‘말’은 양날의 검과 같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동시에 인간의 심장을 도려내는 악마의 숨결과도 같은 게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파워를 짐작케 하는 반면,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는 격언은 말이 지닌 독소를 절묘하게 암시한다.
그래서 말만큼 무서운 게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고 말하지만 불을 때지 않아도 연기가 나고 대형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게 말이다. 분명 ‘아’라고 말했는데 ‘어’라고 바뀌어 순식간에 천리길을 달려가는 게 발없는 ‘말’이다.
해서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고,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경고했다. 아예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고 하거나 ‘말을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며 말 자체를 금한 옛말도 있다.
사람은 태어나 말을 배운 후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유언을 남긴다. 살아가며 뱉어낸 무수히 많은 말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힘을 발휘하는가 하면 예상치 못했던 독을 뿜어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소통에 있다. 소통에 성공하면 말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 그러나 소통에 실패하면 말은 독이 되고 가시가 되며 분란과 상처를 남긴다.
말과 말,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좋은 말하기’ ‘착한 말하기’에 앞서 ‘잘 들어주기’가 선행돼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친근하게 느낀다. 누군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면 따뜻한 에너지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고객의 마음문을 여는 성공 세일즈 기법으로 흔히 소개되는 ‘70대 30의 법칙’도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십분 이용한다. 70대 30법칙은, 고객에게 질문하는 시간은 30% 이내로 하고 70% 이상의 시간동안 고객의 말을 들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듣는 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성경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솔로몬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 하나님께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솔로몬이 구한 것은 레브 쉐마(leb shomea), 직역하자면 ‘듣는 마음’이다.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은 지구 상에 다시 없을 지혜의 왕이 됐다.
소통이 아닌 불통의 시대. 모두들 제 말만 하지,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듣기를 잃어버린 시대, 나만을 앞세운 이기심과 남을 지배하려는 독선이 활개를 친다.
한인사회의 분란없는 화합도, 교회의 아름다운 교제도,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운영도, 행복한 가정의 활기찬 모습도 모두 듣는 지혜에 성패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나 잘 듣는가.
[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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