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난달 25일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공개·회람된 대북결의안을 2월 2일 오늘까지도 검토할 시간을 요구하면서 채택을 지연시키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러시아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세부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결의안 초안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러시아는 내일 3일까지는 자신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수정 결의안에 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사회의 신속한 대북결의안은 벌써 금이 갔다. 러시아가 이처럼 대북결의안 표결을 연기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의 존재감 과시이다. 러시아는 이번 초강력 결의안이 미국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것을 크게 우려한다. 2012년 푸틴 재집권 이후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극동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는데 이번 대북결의안이 그냥 통과되면 러시아의 존재감은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이 사드를 고리로 이번 제재안 통과를 추진하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 포기를 전제로 중국의 적극적 찬성을 유도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임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고르 모르굴로프(Игорь Моргулов) 러시아 외무상 차관이 이번 제재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다자간 협력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대북결의안이 극동에서 러시아의 이해를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나진-핫산을 연결하는 철도와 나진항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만약 제재안이 통과되면 러시아의 화물 수송과 석탄 등의 수출은 크게 차질을 빚는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최근 나진 지역에 전력 수출을 위한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극동지역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초래할 것으로 러시아는 우려하고 있다.
셋째, 러시아는 제재안 통과를 늦춤으로써 북한의 김정은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과 서방이 북한에 대해 본격적인 레짐체인지에 들어간다면 러시아는 마지막 수호자(last resort)가 될 것이다. 마치 러시아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면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였듯이 외부 강요로 인한 북한 체제 변화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을 잃게 되면 극동과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1차 북핵 사태 이후 지금까지도 봉쇄를 통한 북한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쿠바는 미국에 의해 50년 동안 봉쇄되었지만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이번 제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배후에 있는 한 그 성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남북관계 갈등에 따른 코리아 리스크가 올라가면서 한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북한 문제를 푸는 길은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경제적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북한의 시장경제세력을 만드는 것이 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다. (윤성학 객원논설위원, 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