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한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여야 후보 자체보다 정권 교체냐 연장이냐에 대한 관심이 더 뜨겁다. 수치상으로 정권 교체 여론이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보다 높고, 여당 후보 지지율은 현 정부의 지지율보다 평균 5%p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교롭게도 여당과 제1야당 후보 모두 기존의 여의도 정치를 경험한 적이 없는 신인이다. 여당 후보는 십여 년간 시장과 도지사를 지냈으나 여론의 관심을 받은 건 지난 201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다. 제1야당 후보는 26년 검사로 지내다가 정치에 발 디딘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두 후보 모두 대선 후보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다양한 검증 과정을 불과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거의 속성으로 받고 있다. 하나의 검증이 끝나지 않은 채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여러 의혹이 동시에 터지기도 했다. 어쩌면 선거가 끝나도 다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본부장 리스크’.
여당이 제1야당 후보의 본인, 부인, 장모의 의혹을 공격하면서 만든 말이다. 현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재직 중 청와대, 법무부와 대립하면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야당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 본인과 가족에 대한 끈질긴 여당의 검증 공세는 그때부터 시작됐었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도 있고 재판이 진행 중인 건도 있다.
최근에는 제1야당이 여당 후보를 공격하면서 ‘본부장 리스크’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본인, 부인, 장남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들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의 자질에 대한 논란은 진영에 따라 엇갈리지만, 장남의 도박 경험이나 부인의 경기도 법인카드 불법 사용 등에 대한 여론은 곱지 않다.
후보는 물론 배우자와 다른 가족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머리 숙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대통령 선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두 후보는 각각의 당내 경선에서부터 이런 리스크를 안고 있었으나, ‘본선(대선)’ 경쟁력으로 선택받았다. 여야 모두 그 후보라야 상대 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판단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 대선을 비호감 선거로 끌고 가고 있다. 그동안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두 후보 모두 비호감이 지지율보다 훨씬 높다. 최선이 없으니, ‘차악’(次惡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선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양 진영이나 지지자들이 자기 후보의 문제는 합리화 혹은 궤변으로 두둔하고, 상대 후보 문제는 침소봉대해 비호감 분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크면 클수록, 지지를 유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정상이다. 그동안 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를 아예 하지 않거나 투표가 임박해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비호감 선거이면서도 중도 관망층이나 결심을 유보한 유권자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양 진영이나 지지자들이 내 후보의 문제보다 상대 후보의 문제가 더 크다는 인식을 스스로 주입시키고 이를 상대 공격에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 진영 모두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자체 결속력을 강화하면서 중도층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유권자도 어느 쪽으로든 결심을 굳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상대의 흠을 부풀리면서 뱉었던 말들이 자신의 흠을 더 키우기도 한다. 내 진영을 결집하려고 한 행동이 상대 진영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서 더 강한 결집을 불러올 수도 있다. 눈앞의 이익만 따르다 보면,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호감이 이번 선거에 어떻게 작용할지 아직 예상하기 어렵지만, 중도층의 선택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은 분명하다. 다른 선거 때보다 적은 숫자이지만 이들의 결심이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아마 이들의 마음은 비호감을 더 키우지 않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김인구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한국신문 편집인
gginko7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