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함께 살기’
친구나 동호인 단체 카톡방에서 정치적 의견을 올리다가 제지받은 경우가 심심치 않다. 단톡방 방장은 말다툼의 빌미가 되는 정치적 의견을 삼가달라고 당부한다. 서로 안부 묻고, 경조사 등 알려야 할 일을 공지하는 장(場) 정도가 좋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톡방은 대화를 위해 만든 것인데 그걸 제약하면 왜 만들었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글이나 동영상을 퍼 와서 올리는 분도 간혹 비난받는다. 한 사람에게 좋은 글이 다른 이에게 공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이나 동영상이 쉴새 없이 올라오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분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이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상황이 싫다는 거다. 그래서 아예 방을 나가시는 분도 적지 않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단톡방에서 이런 경험 한 번쯤 했을 것이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밥 먹다가 술 마시다가 정치적 논쟁으로 싸움을 벌였다면, 최근에는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면하지 않기에 멱살 잡고 싸우는 건 없지만 방을 나가거나 아예 인연을 끊기도 한다.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학교 출신인 친구들, 오랫동안 취미를 함께 즐겨온 사람들은 공유하는 게 많아서 유대감이 비교적 강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꺼린다. 자칫 좋은 친구 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에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다투다가 한동안 냉랭하게 지낸 가족도 있었다고 한다.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가 같지 않으면 일상의 관계도 유지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단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이기지만, 양당제 체제에서 승자가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도 직선제가 부활된 지난 1987년 대선 이후 이번까지 8번의 대선에서 절반 이상의 득표를 한 경우는 지난 2012년 한 차례뿐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에 당선되면 누구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과도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개 ‘립서비스’로 끝난다. 5년 임기를 마칠 때쯤 반대 진영과의 갈등은 치유 불가능한 수준까지 커지고, 다음 선거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반복된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갈등이 가장 심각했건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승자가 모든 권력을 갖게 되는 대통령제 선거에서 진 후보의 낙담은 엄청나지만 그래도 정치인이라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상심을 유지하고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사생결단으로 싸우다가도 상대와 웃으면서 악수하고 함께 자리에 참석하는 게 정치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지지 후보가 달랐던 일반 유권자는 그게 쉽지 않다. 패배한 진영의 국민에게는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은 그런 대통령과 5년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상대 진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국민, 다시 말해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과도 함께 하겠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다.
성격이나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정치적 입장이나 소신이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이 싫다고 단톡방에서 나가듯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 당선자가 진정으로 ‘모든 국민과 함께’ 하겠다면,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게 먼저다. 왜 그들이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려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이 든 촛불로 세워진 현 정부가 비록 근소한 차이였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도 자신들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그쪽을 모두 ‘적폐’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이라는 이유로 적폐로 몰린 이들이 표를 줄 리가 만무하다. 그저 자신들이 정의로니까 모두 지지할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스스로 세뇌한 결과였다.
함께 살려면 내 생각과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까지 꾸준하게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물론 그런 노력으로 언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과 분위기가 상대 진영의 경계선부터 조금씩 열리고 달라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게 ‘함께’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적폐로 몰아세우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건 ‘함께’ 사는 게 아니다. 달라도 함께 살 수 있는 게, 살아야 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김인구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 <한국신문> 편집인
gginko7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