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몰래 심어놓은 스파이웨어(spyware) 프로그램, GPS 추적기 등 오늘날 최신 기술을 활용한 여성 학대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 : Pixabay / Tumisu
피해여성 대변하는 변호사들 우려... ‘스토킹’에 활용, 가정폭력으로 이어져
스마트폰에 인스톨하는 ‘Spyware’ 기술, 차량에 부착하는 GPS 추적기, 아이들 장남감에 감춰두는 초소형 카메라... 이 같은 디지털 기술 및 전자기기들이 특정인의 행동을 감시하는 용도로 활용되며, 이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피해 여성을 대변하는 변호사들, 기술 기반 학대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기의 활용은, 여성들이 남성 등 가해자로부터 스토킹되고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당하는 방식의 하나”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서부호주, 퍼스(Perth, Western Australia) 소재 가정법 전문 로펌 ‘Leach Legal’의 캐서린 리치(Catherine Leach) 변호사는 스마트폰 앱, 감시를 위한 추적기, 초소형 카메라 등의 신기술을 활용해 특정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리치 변호사가 한 피해여성 고객을 통해 확인한 사례 중 하나는, 스파이웨어를 상대의 전화기에 인스톨되도록 한 것이다. 리치 변호사의 고객 A씨는 별거 중인 남편으로부터 자녀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전송받았다. 그 사진을 열어보는 순간 스파이웨어가 전화기에 업로드 된 것을 A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A씨의 남편은 이를 통해 A씨의 전화에 언제든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방정부는 지난 3월 내놓은 새 회계연도 예산 계획 중에 가정-성폭력으로부터 여성 및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신기술 패키지’(technology-focused package)에 1억400만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가정 내 어딘가에 초소형 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스마트폰에 스파이웨어 등 자신의 전화기를 추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보안 기술 마련을 위한 5,460만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실시한 가정 및 가족폭력 기관에 대한 전국 조사를 보면, 서비스 제공자의 3분의 2 이상이 “팬데믹 기간 동안 피해를 호소한 이들이 크게 증가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누군가로부터의 감시,
폭력보다 큰 두려움”
‘서부호주 여성법률서비스’(Women's Legal Service WA) 대표인 제니 그레이(Jennie Gray) 박사는 “디지털 기술이나 추적기 등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하는 여성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는 강압적 통제 역학의 일부”라고 말했다.
퍼스(Perth, Western Australia) 소재 가정법 전문 로펌 ‘Leach Legal’의 캐서린 리치(Catherine Leach. 사진) 변호사. 그녀는 여러 신기술을 이용해 특정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있다. 사진 : Leach Legal
정부가 피해 여성을 위해 책정한 예산 계획에는 기술 기반의 학대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제고를 위한 활동 내용도 담겨 있다.
리치 변호사는 기술 기반 학대 피해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일부 고객(피해여성)의 남편들은 ‘매우 자주’ 아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사진을 만들어 노출시켰지만 사람들은 남성들의 그런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정폭력 지원 서비스,
IT 부문 연결에 집중해야
리치 변호사는 자신을 찾은 여성 고객 B씨에게 ‘추적당하는 것으로 의심되므로 스마트폰 매장에 가서 문의해 볼 것’을 권한 일이 있다.
리치 변호사의 또 다른 고객 C씨는 자신의 전화기에 스파이웨어가 들어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C씨는 자신을 스토킹 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친구에게 일부러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자신을 스토킹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대화를 하던 중 그가 자신의 계획(친구에게 보낸 텍스트 메시지에서 언급한)을 알고 있음을 확인한 사례도 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인구-보건대학원의 콜린 피셔(Colleen Fisher) 교수는 1990년대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연구해온 관련 전문가 중 하나이다.
그녀는 최근 여성에 대한 직-간접 폭력이 증가함에 따라 정부의 관련 부문 지출에 대해 “가정폭력 지원 서비스를 IT 부문과 연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통적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가정폭력 전문가, 법조인 등에게는 이런 기술적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장남감에
카메라 감춰두기도
피셔 교수는 영국 셰필드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 동료 학자들과 함께 기술 기반의 학대 사례를 연구해 왔다. 이를 보면 소셜 미디어 중 하나인 페이스북(Facebook) 사진을 통한 상대의 위치 파악에서부터 사진 뒤에 감추어진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이용된다.
1990년대부터 기술 기반의 여성폭력 사례를 연구해 온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콜린 피셔(Colleen Fisher) 교수는 정부의 가정폭력 지원 서비스가 IT 부문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진 : Pixabay / maraisea
피셔 교수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의 사례를 접한 결과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게 되면 전 남편 등 특정인이 마치 우연처럼 계속 나타나곤 한다. 피셔 교수는 “이런 경우는, 아이들이 늘 갖고 다니는 장남감에 추적정치나 카메라를 숨겨놓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부호주 여성법률서비스’의 그레이 박사는 “기술 기반 학대에 대한 연방정부의 예산 계획에 따라 실제 조치가 취해질 경우, 피해자들을 추가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종류의 지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기관과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스마트폰에서 스파이웨어를 확인하거나 집안에 숨겨놓은 카메라를 찾기 위해 집안을 뒤지는 서비스 등의 지원 시스템이 피해자들과 협의하여 개발되어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편 연방 여성안전부(Women's Safety) 앤 러스턴(Anne Ruston) 장관은 “내년도 정부 예산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기술안전 전문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우리는 여성 안전을 위한 계획은 물론 경보기, 보안 카메라, 계기판 카메라 및 기타 기술 제공을 통해 여성, 어린이들이 거주지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가족-가정폭력 지원 서비스
1800 Respect national helpline / 1800 737 732
Women's Crisis Line / 1800 811 811
Men's Referral Service / 1300 766 491
Lifeline (24-hour crisis line) / 131 114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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