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불통
퇴임을 며칠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안팎이라고 한다. 퇴임하면서 이 정도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은 드물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은 5년 전 선거에서 41.7%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당시 2위와 3위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45%가 넘었다. 임기 중에는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적도 있지만, 시작과 끝에선 지지자가 절반이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반대 여론이 거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검수완박’ 법안에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현한 새 정부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에 대해 이처럼 각을 세운 대통령도 없었다.
이에 대해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민주당 후보가 0.73% 포인트 차이로 패했기 때문에 대선 때 응집력을 유지하면 투표율이 대선보다 낮은 지방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77.1%이고 4년 전 지방선거 투표율은 60.2%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최근 태도는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결과적으로 국민 10명 중 6명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선거공학적 측면에서는 내 편을 확실하게 붙잡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전 국민의 대통령’으로선 적절치 못하다. 더욱이 그는 5년 전 취임사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절반이 넘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집권 후 총리와 장관 후보자의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했다. 그러나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야당이 반대하고 여론도 좋지 않은 후보자를 임명한 게 수십 차례다. 스스로 만든 요건을 어기면서도 ‘능력이 있으니까’란 말로 반대 여론을 무시했다. 이 역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사태’는 ‘불통(不通)’의 대표적 사례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정국을 주도했던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의 늪에 갇혀 결국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그러고도 임기 말까지 정치적 계산에만 급급해 ‘불통’을 계속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장관 후보자인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3일 스스로 물러났다. 지명된 지 20일 만이다. 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자격 논란이 일어나면서 청문회에서 민주당이 지명 철회나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 여론도 ‘사퇴’ 쪽이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떳떳하다며 버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1년 전 정치에 뛰어들면서 공정 정의 상식 소통 등을 강조했다. 공정과 정의, 상식은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내 편에겐 공정한 것이 상대에겐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는 이보다 더하다. 가장 보편적인 상식도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진영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소통은 ‘내 소통’이니 ‘너 소통’이니 할 수 없다. 소통이 서로 다르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소통하고 있다고 느껴야 진정한 소통이다. 상대가 느끼지 못하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내 진영 내에서만 소통하면서 전 국민과 소통을 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소통하지 않는 국민이 느끼기에 그건 명백한 불통이다.
새 정부는 1%도 채 되지 않는 지지율로 정권을 잡았다. 지지와 반대가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소통은 당연히 반대를 포함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어야 한다. 지지도 반대도 아닌 중도층은 당연히 그런 소통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소통이라야 반대 진영에서도 ‘우리 대통령’이란 생각이 늘어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이나 대선 전 약속했던 ‘40~50대 장관’ 후보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 등에서 새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도 ‘그들만의 소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대선 직후 1% 포인트도 되지 않는 차이를 실감하며 겸허해 하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를 능력만으로 지명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취임도 하기 전에 지난 5년 내내 불통을 소통이라 우기던 대통령과 당국자 모습이 자꾸 떠오는 게 필자만의 우려이길 바란다. 소통은 상대가 있고, 그 상대가 느끼지 못하면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라는 것을 시작부터 꼭 명심했으면 한다.
김인구 / <한국신문> 편집인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gginko7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