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곧 기회
북한이 지난 12일 처음으로 코로나(오미크론) 감염 확산 사실을 공개한 이후 매일 새로운 확진자, 완치자, 그리고 사망자 숫자를 외부에 알리고 있다. 지난 2년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생하는 동안 문을 닫고 단 1명의 확진자도 없다고 ‘자랑했던’ 북한 방역이 뚫린 것이다. 지난 1주일 북한의 상황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은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와 함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않는 나라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전무하고 의료체계마저 낙후된 북한으로선 이번 코로나 확산에 대처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확산 방지와 치료 대책 마련을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을 통해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사업 단위, 생산 단위, 생활 단위별로 격폐한 상태에서 사업과 생산 활동을 조직하여 악성 바이러스의 전파공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당, 행정, 경제기관들, 안전, 보위와 함께 국방부문을 포함해 최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하고 중앙군사위원회 특별명령으로 평양시 의약품공급사업 안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역설적으로 북한 당국이 이번 난관을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 이후 ‘위드 코로나’로 자연스럽게 진행할 가능성도 있으나, 적어도 수개월, 길게는 내년까지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를 독자적으로 극복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아직 공식적으로 외부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가 발 빠르게 통일부를 통해 의약품과 방역시스템 지원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하는 전통문을 보내려 했으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의약품 등 관련 지원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가 북한에 직접 방역물품을 지원할 수 있으면 최상의 방안이겠지만, 대북 강경 입장을 가진 새 정부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이나 국제사회를 통해 방역물품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양자의 틀’보다 북한 내 상황 악화를 염두에 두고 코로나 19 백신과 치료제, 검진 키트 등을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연합 등과 함께 ‘다자의 틀’에서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간을 통한 지원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북한이 코로나 확산과 무관하게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발사를 계속하는 등 무력시위를 계속하고 있어 경색된 남북관계가 당장 풀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한은 지금의 남북관계 위기의 원인을 군사적 문제와 남측의 남북합의 미이행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지만, 21일 서울에서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예의 주시할 것이 분명하다. 이 회담을 통해 바이든 미국 행정부나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가진 기본적인 대북관이나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이나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쉽게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극한의 대결로 치닫다가도 회담이 열리고 ‘극적 합의’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남과 북은 반세기 이상 대결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신뢰 구축에는 성공하지 못했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진 편이다. 어떤 경우엔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상대와 회담을 하기도 했었다.
남북관계는 서로의 국내 상황은 물론,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또 이들 4개 국가 간의 역학관계 등에 영향을 받아 왔다. 특히 최근에는 남북한 모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긴장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새 정부의 첫 한미정상회담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를 가늠하는 장이 될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나 한반도 정세는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시위로 경색된 상태였으나 북한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급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 당국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에 손을 내밀 경우, 이를 통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위기는 기회란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김인구 / <한국신문> 편집인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gginko7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