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학생들 사이에서도 각 과목 교사들이 요구하는 과제물을 외부 개인교사나 전문가에게 의뢰, 구매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교사 등에게 부정 구매... 거래 사이트에서 성행
지난해 11월 ‘MyMaster’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에세이 등 과제물을 돈으로 구매하는 부정행위로 NSW 각 대학 학생들이 무더기로 각 학교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하이스쿨 학생들 사이에서도 과제물을 유명 개인교사 등에게 구매하는 부정행위가 있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보도했다.
‘MyMaster’ 온라인 사이트의 부정행위를 폭로한 바 있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이렇게 돈을 받고 숙제를 대신해주는 부정 과제물 대행 서비스 거래 시장은 ‘검트리’ 같은 온라인 정보 사이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에세이 대행업체는 채스우드, 카브라마타, 어번 등에서 성행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이상 HSC 고득점자들을 배출해 온 셀렉티브 명문학교 제임스루스 농업고교(James Ruse Agricultural High School)와 노스 시드니 보이즈(North Sydney Boys High) 출신 학생들 가운데 일부도 자신의 에세이를 판매해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과 수학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표준 영어(standard English) 대신 고급영어를 이수하도록 하는데 불만스러워 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과제 대행 서비스는 고급영어(advanced English) 과목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제임스루스 농고를 졸업한 한 학생은 자신은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으나 최고 점수대를 받은 본인의 고급영어와 현대사 과목의 작문을 디지털 카피화하여 판매하려 한다고 털어놓았다. 숙제는 USB를 통해 저장되거나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쉽게 공유되고 있다.
자영업이나 회사 단위로 운영되는 고교생 과제물 대행 서비스 업체의 수수료 가격은 160달러부터 ‘박사학위 준비생이 최고의 점수를 받도록 보장해 주는’ 300달러까지 거래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대행 서비스 업체 중 하나인 멜번 소재 ‘어사인먼트 마스터스’(Assignment Masters)는 고등학교부터 사립전문학교 학생들까지 이용하는 곳으로, 표절 검사를 마친 HSC용 1000개의 단어 작문을 125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시드니 소재 ‘호주 저작권프로’(Australia Copywriting Pro)는 채스우드(Chatswood)에 20명 이상의 대행 업자가 있으며 어번(Auburn)의 한 과제물 대행업체는 50명에 달하는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대행 서비스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업자뿐 아니라 과외 교습을 하는 개인교사들도 온라인 정보 사이트에서 공개적으로 대행 서비스에 나서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몇 주간의 예약이 차 있는 상태다.
온라인에서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뉴타운의 한 개인 과외 교습자는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안전하게 이용하려면 내가 준 것을 본인이 시간을 들여 수정하라”고 권하며 “이는 선생님이 당신의 글 쓰는 스타일이나 학습 방식에 익숙할 수 있도록 본인의 스타일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행 수수료의 50%인 112.50달러를 선불로 받고 이틀 내로 완료해 HSC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인 밴드5의 답안을 보장했다고 주장했다.
NSW 주 고등학교 교장 협회의 라일라 뮬라직크(Lila Mularczyk) 회장은 “이와 같은 부정행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조언을 구하러 온 교사들이 있었다”며 “만약 이런 부정행위가 학교 내에 있다고 의심된다면 그것은 학생들이 어떠한 과목이나 그 과목의 학습 수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학교 차원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NSW주 교육위원회(Board of Studies) 대변인은 “HSC 수험생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만약 이러한 증거가 보이면 교육위원회에 반드시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각 학교는 부정행위에 관한 모든 사안들을 조사해야 하고 문제의 학생들은 리스트(malpractice register)에 올려 따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집에서 해오는 숙제로부터 과목 채점 50% 이상을 차지하는 영어심화2(English Extension Two)와 같은 중요 과제물까지 전 분야에 걸쳐 과제물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HSC에서 한 학생은 영어 과목 주요 과제 모두를 대행서비스에 의뢰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NSW 주 교육위원회 톰 알레고우나리아스(Tom Alegounarias) 회장은 “이러한 부정행위는 HSC 시험기간보다 그 이전에 많다”며 HSC시험에는 부정행위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문제 학생 리스트에 있는 학생의 부정행위 방법으로는 몰래 스마트폰을 시험장 내에 들고 들어온다든가, 바지나 셔츠 안으로 마이크를 장치하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이러한 시험장 부정행위 단속에 앞서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을 좀 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만허스트 보이즈(Normanhurst Boys) 고교의 같은 반 학생 8명은 한 시험에서 모두 똑같은 단락을 써서 냈다가 적발됐다.
한 셀렉티브 스쿨 교사는 NSW 주 교육위원회의 리스트에서 밝혀진 학생 명단에 대해 “빙산의 일각”이라며, 부정행위를 적발하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풍토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세이가 모두 특색이 있으므로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부정의 증거를 완전히 잡기 전에는 학생들과 상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수학, 화학, 물리 과목에서 강세를 보이는 학생들이 고급영어(Advanced English) 과목을 위해 부정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노스 쇼어(North Shore) 지역의 한 개인 강사는 “본인도 이러한 학생들에게서 대행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이들은 점수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계속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교장 출신의 공교육 옹호론자인 크리스 보너(Chris Bonnor) 씨는 “과제물을 구매하는 부정행위의 만연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면서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부터 공부에 대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자녀들이 HSC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의 지불을 감내하고 있고, 이에 부응해 학교들은 좋은 대입 성적(ATAR)을 내기 위한 평판을 높여가고 있다”지적했다.
리차드 티스(Richard Teese) 멜번대학교 교수이자 교육정책 전문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실패를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경쟁환경 속에서 생긴 욕구로, 남을 밟아서라도 이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우려했다.
이은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