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소액 재판에서 승소한 통쾌한 이야기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에이 X야, 잘먹고 잘살아라"하며 단념하고 잊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어쩌다 그 여자 생각이 나면 머리에 열이 올라오고 먹었던 밥이 나올 정도로 흥분이 됐다.
본시 종업원과 주인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게 얽힌 이해 관계라고 하겠다. 특히 세탁업이 주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종업원과 같이 작업해야 하는 것인 만큼 종업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가게에는 매일 지각하는 종업원이 한 사람 있었다. 어느날은 30분, 어느날은 1시간, 이렇게 매일 늦게 오다보니 일하는 데 혼선이 빚어지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는 비키라는 이름의 이 종업원을 불러 앉혀 놓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유인 즉 자동차가 없어 다른 사람한테 차편을 얻어 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 에 자동차를 구할테니 그동안만 좀 편리를 보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지금까지 한 300달러 정도를 모았으니 부지런히 더 돈을 모아 곧 차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나에게 신문광고를 보여 주는 데 거기에는 500달러에서 1천달러 대 가격의 중고차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나는 돈 몇 백불이 없어 차를 사지 못하고 발을 구르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돈이 정말 없는 너무나도 가난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열심히 잘 했으므로 나는 내가 돈 500달러를 빌려 줄테니 보태서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여자는 땡큐를 연발하면서 고마워 했고 가게에서 사용하는 비망록 노트에 차용증 500달러를 기록하고 싸인하라고 했더니 무어라고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까지 써놓고 날짜를 기록하고 서명을 했다. 이 여자는 다음날로 자동차를 사가지고 와서 보여주며 자랑을 하며 고마워 했고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 종업원은 한 삼일 제 시간에 출근을 하더니 아예 결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동차가 워낙 중고여서 고장이 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음날도 결근하고 계속 나오지 않기에 전화를 해 보았더니 전화는 이미 끊어 졌고 이력서에 기재된 주소로 찾아 갔더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뒤 였다.
허탈감도 잠깐, 치밀어 오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나는 남에게 필요 이상의 편리를 제공하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속았구나. 차라리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면 계속해서 일을 했을텐데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더니 그 차를 타고 아예 도망을 가버렸구나 라고 곰씹으면서 당장 한 사람이 빠졌으니 충원될 때 까지 고통을 부담해야 했고 생각할 수록 괘씸했고, 또 그 종업원에게 인격적으로 무시 당한 것이 무척 속상했다.
그까짓 돈 500달러야 없었던 샘 치더라도 인간적으로 배신당하고 무시 당한 것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종업원 눈에는 주인이란 사람이 나이도 많고 영어도 잘 못하고 코도 납작하지 저 보기에 우습게 생겨, 네 돈은 떼어 먹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한 게 보통 분하고 속상한 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이 X야, 잘먹고 잘살아라" 하고 거듭 생각했지만 어쩌다 또 생각이 나면 머리에 열이 오르고 먹었던 밥이 소화가 안되는 것처럼 흥분이 됐다.
참다 못해 여러 사람들에게 내용을 얘기하고 자문을 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들 포기하라고 했다. 어느 친구는 인종을 물어 백인이라고 했더니 그까짓 500불 포기하고 마음 편히 지내라고 한다. 미국 이민생활 10년이 넘도록 법원이 어느곳에 있는 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죽어라고 열심히 일만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정말 큰 마음을 먹고 법원을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요 원고라는 자신을 갖고 3개월이 자나서야 법원문에 들어섰다. 직원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길래 소액 클레임(Small Claim)을 하러 왔다 고 했더니 양식 두 장을 내어 주면서 모두 기록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소, 성명 등 인적사항을 적고 액면 500달러를 기록하고 나니 다음줄 부터는 모두가 법률 용어여서 솔직히 잘 모르겠기에 대충 짐작으로 작성해 제출했다.
그 직원은 접수를 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해 삭제할 것은 삭제하고 보충조서(차용증서 등 증거서류)를 삽입해 완결문서로 만들어 주었다. 소송 비용은 50달러였고, 다음에 소송문건을 피고에게 등기 우편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경찰관을 시켜 직접 전달 할 것인 지 묻는다. 내 생각엔 비키가 행방붕명 주소로 되어 있어 등기로 발송하면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소송 비용만 더 손해 볼 것 같아서 경찰을 통해 전달하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아 그렇게 해 달라고 했더니 20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이렇게 법원에 접수만 시켜 놓아도 마음의 분함이 많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법원에는 접수일로부터 2개월 후인 5월 21일 화요일 오전 9시까지 104호 법정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민 생활 처음으로 미국법에 따라 오라는 날짜에 104호 법정에 가니 그곳에는 비키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는 나에게 500달러를 현금으로 준 사실이 있느냐고 묻고 그 여자에게는 그 돈을 받은 사실이 있는냐고 확인하고 나서 그 여자와 여러 얘기를 주고 받더니 그 여자는 지금 돈이 없으니 벌어서 갚겠다는 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래도 좋다고 대답했더니 판사는 매주 50달러씩 10주간 지불하고 소송 비용 70달러와 이자 68달러를 함께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그 다음 주부터 금요일이면 그 여자는 돈 50달러를 들고 가게에 들어 오면서 천연덕 스럽게 How are you, Dong?" 하면서 인사까지 한다. 가게 문을 나서는 뒷 통수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은 저렇게도 소갈머리가 없나 싶었지만 한편으로 여간 통쾌한 일이 아니었다.
원금은 물론 이자와 소송 비용까지 638달러 전액을 받아낸 승리의 쾌감을 마음껏 누리면서 한편으론 다시는 종업원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임금을 선불 해 주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