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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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고도(古都) 라인베르그의 새벽을 알리는 녹슨 청동의 종소리가 은빛으로 은은하게 천상의 유혹처럼 울리며 나그네의 곤한 잠을 깨운다. 낯선 곳에 여행을 하면 언제나 눈은 처음 보는 것들로 분주하고 코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벌름거려진다. 한국의 깊은 산사(山寺)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같은 듯 다른 이 소리도 평화롭게 가슴의 울림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중국계 독일인이 하는 민박집에서 잠을 잤으므로 무료 아침식사는 없었다. 근처에 아침을 파는 가게가 안보여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왔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달리고 있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비를 맞으며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오르는 라인 강변의 도로를 달리니 마성의 무엇엔가 홀려서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어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유혹하여 이리로 끌고 왔을까?

 

나는 어렸을 때 아우토반을 총알 같이 벤츠나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을 몰고 달리고픈 꿈을 꾸어보았다. 소시지 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분데스리가의 축구를 보며 크게 함성도 지르고 싶기도 했었다. 이곳이 제 2차 산업혁명의 발원지(發源地)이며 두 번의 세계대전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 세계를 두드려 부쉈고 스스로도 부서지고 망가졌다.

 

오르소이로 가는 중간에는 비바람이 폭풍으로 변해서 얼굴을 때린다. 넓게 펼쳐진 밭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서있다. 풍력발전기는 아무데나 세우지 않는다. 새들은 두 개의 날개로 평형을 이루며 날고, 풍력발전기는 세 개의 날개로 바람을 안고 돌며, 나는 하나의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달린다. 달리기는 풍력발전기보다도 더 좋은 에너지를 사람에게 제공한다. 달리기는 내게 아무리 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세상은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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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나 풍력발전기는 바람과 마주보며 돌아간다. 풍력발전기는 바람을 마주보며 돌아가면서 덧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유용한 에너지로 바꾼다. 바람과 마주서서 힘겹게 달리면서 나도 거친 바람과 고난을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쓸 수 있다는 당찬 생각을 하면서 다시 어깨를 펴고 없는 힘을 쏟아본다.

 

고대 그리스에는 ‘사이렌’이라는 신화가 있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 저 멀리서 맑고 고혹적인 마성(魔性)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 노랫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외로운 뱃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노랫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넋을 잃고 노를 저어간다. 어느덧 노래를 부르는 곳이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배는 바위에 부딪쳐 배도 사공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스타벅스는 이 전설의 주인공 사이렌을 로고로 사용하여 세계인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아주 옛날 독일의 라인 강변에 로렐라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살았다. 그녀는 얼굴도 예뻤지만 황금색 긴 머릿결은 물결처럼 아름다웠다. 로렐라이는 이웃 마을의 멋진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 소년은 기사(騎士)가 되어 배를 타고 먼 전쟁터로 떠나갔다. 로렐라이는 매일 강가에 나가 그 기사를 기다리며 노래도 하고 머리도 빗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습과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앞을 지나가던 뱃사람들이 정신을 빼앗겼을 정도였다.

 

오랜 전쟁이 끝나고 그 기사가 배를 타고 라인강의 협곡으로 배를 타고 오다가 그만 소용돌이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렐라이는 너무나 슬퍼서 강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그 뒤로 이 협곡을 지나가던 무수히 많은 배들이 암초에 좌초(坐礁)되어 침몰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로렐라이가 한을 품고 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슬픈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다 하이네가 이것을 소재로 시를 썼고 이 시는 다시 민요풍의 선율로 작곡이 되어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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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도르트문트, 에센, 뒤스부르크, 겔젠키르헨, 보쿰 등의 도시권을 이루는 지역을 루르 지방이라 부른다. 1960년–1970년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 산업의 중심지가 바로 루르 지방이다. 무연탄과 철광석을 캐는 세계적인 광산이 모여 있는 이 도시들은 산업혁명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탄광으로 인해 막강한 경제적 부를 누려왔던 곳이다. 이곳을 달리려니 아직도 공장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석탄가루는 날리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유럽의 중공업의 무서운 경쟁자로 나타나자 독일의 중공업 산업은 경쟁의 힘을 잃어가며 쇠락(衰落)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하고 2018년에는 독일에서 모든 탄광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광산에서 사용하던 모든 시설들은 그대로 있다. 겉모습은 옛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도시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물 하나는 간직하고 있는 독일의 도시들의 역사는 웬만하면 10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옛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름만 고도인 서울을 생각하면 우울증(憂鬱症)이 도진다.

 

이제 일주일째 달리고 있다. 어제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는 저녁도 먹기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다행히 식당 문이 닫기도 전에 눈이 깨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리는 그래도 평소에 훈련을 하여서 잘 적응하고 있는데 손수레를 미는 손을 훈련이 안 되서 잘 때면 가끔 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뭐든지 훈련이 필요하고 적응이 필요하다.

 

끝없이 달리면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枯渴)되면서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잡념이 사라지고 세상사 헛된 욕망이 지워진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의 자리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충만하게 채운다. 이렇게 채워진 감동의 여운은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것이 나를 유혹하여 뱃사공이 넋을 잃고 어디로 가는줄도 모르고 맹렬하게 노를 젓듯이 이렇게 끝없이 맹렬하게 달리게 만든다. 달리기가 나의 ‘로렐라이’이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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