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으로는 사서(四書) 삼경(三經)이 있다.
사서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그리고 중용(中庸)이다.
사서 중 ‘논어’에서 사람다운 삶을, ‘맹자’에서 올바른 삶의 근원을, ‘대학’에서 삶의 진화를,‘중용’에서 기우뚱한 균형의 혁명 논리를 밝히고자 했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의 한 편명(編名)에 지나지 않았다.
송 나라 주희가 두 책을 독립시켜 ‘논어’,‘맹자’와 함께 읽어야 할 책, 즉 사서로 삼았다. 사서 중 가장 유명한 논어는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맹자, 대학 등 뒤쪽으로 가면 접할 기회가 줄어 든다. 특히 대학과 중용은 분량은 많지 않지만 사실 너무 어려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자에는 해설이나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해석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중용,인간의 맛(통나무: 2011)’의 저자 도올 김용옥의 이력은 매우 특이하다. 일단 학력에서 일본의 동경대학, 대만의 국립대학, 미국의 하버드대학을 모두 섭렵한 학자이다.
한·미·일·중의 최고대학을 모두 다닌 것이다. 집안 역시 명문으로 형님은 우리나라 최초 화학박사이고, 아내 역시 중문과 교수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불교에 심취하다 동양사상에 빠져들어 철학자로서 손색없는 재원이다. 잦은 정치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긴 했어도 이 시대를 대변하는 지성인임에는 틀림없다.
본인의 ‘몸’철학을 위해 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지자이다. 근자에는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교육방송에 동양철학 강의는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최근 교육방송 방송 통제(?)를 빌미로 출연 거부 사태를 빚은 약간 불미스러운 일도 만드는 문제아 기질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교수들의 외부 강의료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한 바가 있다. 그 당시 통상 한 시간에 10만원 정도 하던 것을 최소 2시간에 시간당 50만원을 요구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실제로 그렇게 받고 강의를 했다.
이런 저런 기행으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그의 책의 순도는 높다. 그는 다작이 특기이고 한 번 주제를 잡으면 일필 휘지로 써 내려가는 것이 그의 작품 활동의 특징이기도 하다.
동양사상 입문특강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986)’이라는 책으로 도올과 첫 만남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신선해서 그 후로 그가 낸 저서 대부분을 읽었다. 직접 강의도 듣고 교육방송의 강의도 열심히 보았다. 김우중과의 ‘대화(1991)’,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89)’,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86)’, ‘혜능과 세익스피어(98)’, ‘도올 김용옥의 신한국기(90)’, ‘너와 나의 한의학(통나무: 2000)’외에도 ‘노자와 21세기 1.2.3(2000)’등 많다.
물론 한 사람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올의 도덕경에 대한 비판서는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자인: 2000)’은 일반인으로 도올의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서병후의 ‘도올에게 던지는 사자후(화두: 2001)’는 도올의 불교에 대한 오해를 실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두 권의 책 외에도 그의 번역과 논리에 대한 비판서는 많다. 동양 철학적 관점에서 본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중’은 물리적이고 산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인 맥락에서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과 공정을 말하고,‘용’ 은 일상생활에서 바람직한 행위를 반복하여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습성을 길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서양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이 양극단의 중간대로 살아가는 습성을 기르는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위험한 상황에서 무조건 피하고 보는 비겁과 앞뒤 가리지않고 덤비는 무모와 달리 용기가 중용이라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은 이런 것이다. 용기(courage)는 비겁(cowardice)와 만용(rashness)의 중용이며, 너그러움(liberty)는 낭비(prodigality)와 인색(meanness)의 중용이며, 기지(ready wit)는 익살(buffoonery)과 아둔(boorishness)의 중용이며, 긍지(proper pride)는 허영(vanity)와 비굴(humil ity)의 중용이며, 겸손(modesty)는 수줍음(bashfulness)과 몰염치 (shamelessness)의 중용이다.
요즈음 세태가 하도 흉흉하고 지나친 흑백 논리로 상대를 매도하고 있어 더욱 중용의 미덕이 필요한 시대라고 본다.
그렇다고 흰색도 아닌, 그런다고 흑색인 것도 아닌 애매함 회색을 중용이라고 보지 않는다. 두 극단 중에 하나는 더 잘못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덜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중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반대 의견일지라도 충분히 듣고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용기가 바로 중용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중용의 흔적은 우리 궁궐 대문에 남아 있다. 서울 창덕궁의 대문의 이름인 돈화문은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온 것이며, 남대문의 이름인 숭례문은 ‘돈후이숭례(敦厚而崇 禮)’의 마지막 두 글자이며, 정도전이 그 이름을 짓고 양녕대군이 현판 글씨를 썼다.
칼럼니스트 김영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