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나는 그동안 많은 책을 사 모았다.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시집을 한번도 사 볼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생전에 시집을 구입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마실 온 60대 초반의 아주머니와 함께 할멈과 나는 ‘강호동의 스타킹’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10여명의 시골 노파들이 나란히 무대에 나왔다. 노파들이 무슨 재주를 부릴까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노파들이 흘러간 옛노래나 지방 민요를 부를 것이라 상상하였다. 그런데 고희가 넘은 촌노들은 자신들이 한글을 처음 배운 후에 지은 시를 각자 낭독하러 나왔다고 말한다. 그들이 차례로 자신들이 지은 시를 낭독하는데 나도 감동하였고 마실 온 아주머니도 감동했다. 아주머니는 이들의 시가 담긴 시집을 한 번 읽고 싶다고 한다.

나는 시집을 주문했고, 오늘 우편으로 도착했다. 한 권은 그 아주머니에게 선물하고 나도 한 권을 펼쳐 보았다. 89명의 할머니들의 시를 단숨에 읽어 볼 수 밖에 없었다. 한글 맞춤법도 틀린 것 그대로 편집도 수정도 없이 인쇄된 촌노들의 시가 나의 심금을 울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박금분씨의 ‘가는 꿈’이란 시는 단 37자로 이뤄져 있다. 그 뿐인가 박문임씨의 ‘기도’는 단 35자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세상 하직을 위한 마음,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그 몇 자로 충분히 표현하였다.

어느 분은 “시와 생활이 함께 있으므로 시도 시 다워지고 생활도 생활 다워 질 수 있다” 고 말씀하셨다.

어느 시인은 19살때 6.25가 났다고 하였으니 지금 그녀의 나이는 87살이다. 80살이 훨씬 넘은 그녀가 한글을 배워 살다보니 어느새 라는 시를 인쇄물로 세상에 남기셨다. 할매 참으로 장하시다. 할매 인생 파이팅이다.

나는 한국 TV 방송에서 초등학교도 못나온 늙은이들이 늦깎이로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여 중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환갑 진갑이 넘은 나이에 대학생이 되어 손자뻘 되는 학우들과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늙은이들이 처음으로 한글을 깨우쳐 버스 승차시에 목적지 표시를 스스로 읽고 버스에 타고서는 “세상에 이렇게 좋을꼬!” 하며 감탄하는 모습도 보았다. 음식점 간판을 읽고 먹고 싶은 음식의 가격도 자신의 눈으로 찾아내고서 좋아하는 모습도 보았다.

나는 한글을 스스로 깨우쳤다. 10살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여 3학년에 편입했으나 다음날 그만 두었다. ‘쪽바리’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다.

이후 나는 순전히 혼자서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우쳤다. 마을 아이들이 길가 간판들을 읽으면 그 많은 간판을 머리로 외워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혼자 다시 그곳에 찾아가 간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그리고 작은 막대기로 간판 이름들을 길 바닥에 쓰는 식으로 한글을 깨우쳤다.

할머니들의 시집 이름이 마음에 든다. 제목은 ‘시가 뭐고?’이다. 칠곡 할매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또 한번 파이팅입니다.

  • |
  1. song.jpg (File Size:17.2KB/Download:23)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고마운 S원장님 file

    오해와 감사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밤새 내린 눈으로 길에 눈가루가 쌓여 있었다. 날씨는 영하였다. 월마트에 배달할 컨테이너 무게는 지금까지 운송한 것 중 가장 무거웠다. 차 무게까지 합하면 거의 한계 중량인 40톤에 가까웠다. Nathan은 트레일러 바퀴...

    고마운 S원장님
  • 오늘도 난코스 훈련 file

    맹훈련 조련사Nathan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늘은 조지아 - 테네시 - 켄터키 - 미주리로 해서 프라임 본사에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프리트립 연습을 했다. 컨테이너 부분과 실내 부분을 했다. 실기 시험에서 In-door inspection은 필수고 나머...

    오늘도 난코스 훈련
  • 자녀들의 딜레마, 한국식? 뉴질랜드식?

    우연히 대학생 딸의 문신을 본 후 충격을 받고 한달 넘게 딸과 대화를 끊고 있다는 아버지, 고등학생 아들의 책상에서 콘돔을 발견한 후 아이를 야단쳤더니 돌아오는 말대꾸.    ‘왜 내 책상을 뒤져요? 사생활을 존중해 주세요!!’대성 통곡하고 들어 누웠다는 어머니.   ...

    자녀들의 딜레마, 한국식? 뉴질랜드식?
  • “우린 필요하면 언제든 만난다” 운전대 잡은 남북 정상

      [시류청론] 볼턴 농간에 넘어간 트럼프, 북 담화로 북미회담 제자리에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제3차남북정상회담 한 달 만인 5월 26일 오후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극비리에 판문점 북한 측 판문각에서 전격적으로 열렸다...

    “우린 필요하면 언제든 만난다” 운전대 잡은 남북 정상
  • 아름다운 만남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지저분한 밑바닥까지도 알아야 된다고 직접 체험해 보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문학을 해도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잘못된 인식입니다. 꼭 바닥 인생을 살아야만 글을 쓰고 모르면 못 쓰는 것은 아니거든요.     명상 속에서 보면 모든 것...

    아름다운 만남
  •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 file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3)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시장 거리를 달리다 정육점에 소꼬리가 있는 것을 보고는 로토라도 당첨된 기분으로 샀다.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이니 정말 로토에 당첨된 것이다. 유라시아를 달리며 꼬리곰탕을 먹을 ...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
  • 고려인 록가수 빅토르최 조명 러영화 '레토' file

          레닌그라드, 여름. 80년대 초반. 레닌그라드 록 클럽. 페테르부르크 언더그라운드의 반쯤 숨겨진 존재.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형성되는 길목에 있던 러시아 록 음악의 여명기(黎明期). 밀수품 루 리드, 데이비드 보위, 이기 팝, 밥 딜런, 롤링 스톤스의 밀수 음반...

    고려인 록가수 빅토르최 조명 러영화 '레토'
  • 런던 스모그와 서울의 미세먼지

    1952년 런던에서 대규모 스모그 참사가 일어났다.  서울도 걱정이다.  쾌적한 공기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절대 절명의 자산인데……     우리는 흔히 ‘런던’하면 안개를 연상한다. 그런데 왜 스모그라고 부르는 것일까? 스모그(Smog)는 매연(Smoke)과 안개(Fog)의 합성어...

  • 낙엽 밟히는 그리움을 걷다

        사계절이 뚜렷하진 않지만 언제 바꼈는지 바뀌는 건 틀림없다. 밤바람에 낙엽구르는 소리가 선잠을 깨운다. 아직도 여름인줄 알았는데 성큼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하늘 끝에 닿았던 나무의 푸른 잎새가 듬성듬성 숱 없는 여인들 머리처럼 엉성해서 서글프다. 발끝...

  •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file

    [종교칼럼] 불룸하르트의 기도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 교회) 주 우리 하나님, 단 한 번도 우리에게서 도움의 손을 거두지 않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은 것을 알고 우리가 기쁨으로 주 앞에 섭니다. 우리를 이끄셔서 우리 앞...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 文대통령, 중재자 아니라 주도자 되라 file

    ‘한겨레 평화선언’으로 남북이 리드해야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트럼프쇼’가 따로 없습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돌연 공개 편지로 취소하더니 하룻만에 다시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간을 보는군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물론, ...

    文대통령, 중재자 아니라 주도자 되라
  • 워홀러가 워홀더로 변신하려면?

    연간 3,000명의 쿼터가 순식간에 채워지는 뉴질랜드 워킹할리데이 프로그램. 이번에도 이변은 없었습니다. 지난 5월 16일 아침의 한국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로 등판했던 NZ워킹 할리데이는 당일 오전에 “완판”으로 마감이 되었다지요.    오늘은 워킹 할리데이 소지자(...

    워홀러가 워홀더로 변신하려면?
  • 모국의 초파일..여래사 가는길 file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햇수로 15년만입니다. 모국에서 사월초파일(四月初八日)을 맞았습니다. 비록 판문점에 가지는 못했지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모국의 하늘아래서 맞은데 이어 부처님 오신날을 맞은 것 또한 감회(感懷)가 새로...

    모국의 초파일..여래사 가는길
  • 청년들이여 페르샤로 오라! file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2)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이란은 역사적으로 고려 때까지 한국과 가까웠던 나라였는데 조선 초기 이후에는 교류의 흔적(痕迹)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두 나라의 교류는 오랫동안 끊겼다. 이란에 오기 전까지 이...

    청년들이여 페르샤로 오라!
  • 하루에 삼계절을 경험하다 file

      광활한 평원에서 산악지대로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프리트립 연습을 한 후 트럭을 출발시켰다.   (Pre-trip inspection은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차량 전반에 걸쳐 어떤 문제도 없는 지 세세하게 확인하는 과정...

    하루에 삼계절을 경험하다
  • 백기완 선생님 부디 쾌차하십시오 file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나는 이 어른을 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뵈었을 때 “저 녀석은 투사가 될 줄 알았더니 목사가 됐어”하시며 컬컬 웃으셨다.   피로 범벅이 된 고문실에서 살점이 떨어지고 손톱을 뽑혀가며 민족과 민...

    백기완 선생님 부디 쾌차하십시오
  • 우는 신부보다 웃는 신부가 좋다

    한국 옛 신부들은 눈물 흘릴만한 이유 있어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한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신부는 월남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격식과 절차는 대부분의 결혼식과 다를 바가 없는 아름다운 혼례이었습니다. 아...

    우는 신부보다 웃는 신부가 좋다
  • 공부 외에 꼭 필요한 기술(2)

    효과적인 대화술은 성공을 위한 큰 자산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칼럼니스트) = 대학의 정규 과목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학습 내용 외에 학교를 다니면서 습득해야 할 여러 가지 기술이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인간 관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지난 주에 말씀 ...

    공부 외에 꼭 필요한 기술(2)
  • 생전 처음 사 본 시집 file

    [이민생활 이야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나는 그동안 많은 책을 사 모았다.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시집을 한번도 사 볼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생전에 시집을 구입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마실 온 60...

    생전 처음 사 본 시집
  • 천국의 노숙자들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특히 집값과 렌트비가 저소득층에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오클랜드에서는 올 겨울 길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사상 최고를 보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복지 선진국 뉴질랜드지만 주택난...

    천국의 노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