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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 여름. 80년대 초반. 레닌그라드 록 클럽. 페테르부르크 언더그라운드의 반쯤 숨겨진 존재.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형성되는 길목에 있던 러시아 록 음악의 여명기(黎明期). 밀수품 루 리드, 데이비드 보위, 이기 팝, 밥 딜런, 롤링 스톤스의 밀수 음반들. 반쯤 금지된 음악회에 경계요원들을 피해서 화장실을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들어가고 뚫고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아가씨들이 정말 많았었다. 싸구려 몰다비아 와인. 히피 같은 친구들이 떼거리로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기타를 쳐대고 샤실릭을 만들 때 쓰는 쇠꼬챙이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었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즐기던 피크닉. 우울함을 즐기는 마이크 나우멘코가 동료들과 팬들에게 둘러 싸여 있고 그의 아내인 토마토를 좋아하는 나타샤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젊은, 아무도 모르는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음악가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나무 음영을 뚫고 기타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가까이 왔다. 빅토르 최였다. 이렇게 전설이 탄생한 것이다.

 

80년대에는 삶 자체가 동이 트는 것 같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우연히 모여든 손님들을 들여다보고 이색적인 음악과, 갖가지 영감을 받은 록 음악 클럽에 놀라곤 했다.

 

 

여름이라네!

여름이 나를 죽게 만드네,

내게 빨리 구급차를 불러주게, 구급차,

그런데 크바스가 다가오는구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는 마이크 나우멘코가 빅토르 최에게 바친, 초기 러시아 록 그룹 “키노” 스타일로 쓰여진 노래, “레토(여름)”을 주제로 한 판타지 같다. 이 노래는 영화에서 로마 즈베리가 낮은 목소리로 힘주지 않고 불렀다. 로마 즈베리는 마이크 나우멘코 역도 그렇게 쉽게, 예상치 않게 단순하게 연기했다. 감독이 속눈썹의 가느다란 움직임까지도 고려하고 선택한 작업이라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마이크는 은밀하고 집중력이 강한 인물이다. 그에게서는 자존심과 약한 마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생의 드라마와 영혼의 관대함이 함께 깃들여 있다.

 

 

여름이라네!

난 커틀릿처럼 구워졌네,

시간은 있는데 돈은 없구나,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아

 

 

이 영화는 결말(結末)을 짐작하기 어렵고, 힘들이지 않고 쉽게 볼 수 있고, 극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잘 표현된 것은 시대의 분위기이다. 시대정신을 들이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모든 대중가요가 검열에서 “승인”을 받은 내용과 이데올로기에 관해서 주로 노래하고 있던 침묵의 시대에 어떻게 자유가 자라나고 “다른 세계”의 음악이 탄생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 영화는 소련 시절 1960년대에 촬영되었다. 흑백 영화 제작은 러시아 현대 영화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가벼운 톤으로 묘사되는 순전한 러브스토리로 멜로드라마 같은 맛이나 느낌이 없다. 영화의 언어는 수채화같이 맑고 투명하게, 새로운 리듬과 의미로 꽃핀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게를 잃어버리고, 환상적인 리얼리즘으로 승화된 현실의 모습이다.

 

영화 “레토(여름)”에서의 삶은 현실에 평행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이미지, 상상의 무대가 거의 연대기적인 사실들과 같이 접합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사건들의 일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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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현실은 서로 어긋나거나 갈등하지 않고 가정법에 맞추어져 어울린다. 그랬었다면 어땠을까? 그랬었던 것 같다. 서로 어울리던 동료들에게 눈이 찢어진 “페테르부르크 공대의 지그프리드”가 검은 옷을 입고 다가와 “백수”를 부르면, 모두들 같이 따라 부른다. 이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카리스마를 가진 마이크와 그의 아내 나타샤이다. 그리고 여기서 관객들이 일어나는 일을 의심하기 않도록 영화는 항상 “목격자”, “감정인”이 등장하여 계속해서 “모든 상황이 그게 아니야!”, “그렇지 않았어”라고 의구심을 계속 제기한다.

 

실제 사건들과 진짜 이름들이, 가볍지만 많은 점에서 허구(虛構)가 가미된 “시작”에 관한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마이크가 빅토르 최에게 대낮의 “백수” 후렴에 “엄마”라는 단어를 덧붙이도록 충고하는 것이나 그룹의 이름을 무작위로 이말 저말 건드려보면서 “피보(맥주) ㅡ 팔토(외투) -비노(와인) - 키노(영화)!”로 짓게 되는 과정, 당시의 본격적인 음악가들은 경멸했던 드럼머신을 사용하게 된 경위들이 그렇다.

 

 

전설에는 이렇게만 접촉할 수 있는 법이다. 음악적으로 부드럽게 연주하면서.

불 대신 – 연기

달력의 그물망 속에서 하루를 끄집어내었네.

 

 

영화 “레토”에서 우리는 어떻게 모임에서, 대화에서, 논쟁에서, 말에서, 시선에서, 접촉에서, 사랑에 빠진 것에서 음악이 탄생하는 지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알루미늄 오이“랄까.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인상주의적(印象主義的)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음악은 시대의 증인의 역할, 시대 상황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음악은 체제의 회색 바다에서 구원자이고, 행복한 눈빛에 녹아버리는, 중요한 기쁨 비타민이다(특히 영화 끝에 가까이 이를수록 더 그렇다 – 그리고 여기에 영화와 그 당시 시대의 내부적인 논리가 있다). 왜냐하면 여름은 짧고, 여름 뒤에는 “황금의 가을” 따위는 없고 겨울이 다가온다.

 

 

붉은 태양은 재가 되기까지 작렬하고

낮은 태양과 함께 끝까지 타네.

붉게 타는 도시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영화에는 극적인 테마도 있다. 재능을 가진 것으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 자기 의지를 주장하고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받는 고통, 그러나 그것이 없이는 음악이 있을 수 없다.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에 빅토르 최를 알던 친구들, 음악가들의 비판에 부딪쳤다. 영화 제작자들이 빅토르 최와 마이크의 아내인 나탈리야 사이에 생겨난 감정에 대해 억측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토”는 로맨스에 관한 영화가 아니고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끌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탈리야 자신이 이 영화 촬영장을 찾아와서 그들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란 유치원 아이들처럼 어리고 순진한 것이었다면서, 회상해도 조금도 마음이 어렵지 않고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레토”는 사랑에 빠져든 것에 관한 영화이다. 주인공들은 사실상 “사랑”이란 말조차 꺼내지 않고 있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결합하는 결합재이다. 서로서로 사랑에 빠져든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조파르크(동물원)”와 마이크의 노래의 멜로디에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포스트 펑크 계열의 하드록과 아르테미 트로이츠키가 용감한 팝이라고 불렀던 파토스 음악 이전의 빅토르 최의 초기 노래들에는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이 무엇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된 것이지도 알 수 없다. 싸구려 몰다비아 와인 때문이었을까. 방수포(Tarpaulin)들판에서 공동 농장으로 소재가 달라진다. 여기에는 서로서로를 아끼고 즐거워하면서도 숨은 경쟁심을 갖고 있는 음악가들의 복잡한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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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사진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 추모의 벽'>

 

 

내 친구들은 항상 줄을 지어 인생길을 행진하지

그리고 정거장은 포장마차 맥주집 옆에만 있다네.

 

 

이렇게 노래가 만들어지는 여러 소재들이 녹아져 용액처럼 되고, 거기서 음색과 분위기, 세상의 소리들을 끄집어내어 노래가 구성된다. 이런 노래들을 볼 때, 그리고 이런 점을 볼 때 이 영화는 탈출구(脫出口)가 없는 절망의 로맨스이다. 흔들리는 사랑의 삼각관계는 거기서 음악이 나오게 되는 트램펄린일 뿐이다. 음악은 이 삼각관계에서 터져 나와 “모든 것에 무관심한 사람”의 자연주의적인 철학과 함께 날아간다. 이런 무관심 주의는 상처 받기 쉬운 마음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견을 무심하게 숨기고 있다.

 

영화에 흐르는 슬픔은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음악가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세대의 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시대 자체가 다른 억양, 다른 목소리, 다른 울림, 다른 리듬, 다른 말, 그리고 다른 “마지막 영웅”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있다.

 

 

에이, 만나로 만든 카샤(죽) 위에 네 구두는 어디 있나?

그리고 넌 어디에 겹여밈 자켓을 쑤셔 넣었나?

실내용 슬리퍼는 더 깊숙이 감춰, 아빠야,

예전엔 그 슬리퍼 값으로 5코페이카 동전도 아까워했던걸.

 

 

블라디슬랍 오펠랸츠의 카메라에 대해서도 따로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의 카메라는 독자적으로, 그리고 음악가들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동일하게 영화를 빛내고 있다.

 

여기에는 또한 스크린에서 스며나오는 감성적인 인상과 에너지에 젖어들어 있는 영화 제작의 결함(缺陷)도 다수 있다. 영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확한 세부 묘사들이 수도 없는데, 조금도 니스 칠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해서 이미지가 매우 거칠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풍경이 빛바랜 추한 현실과 같이 조합되어 있다. 너덜너덜 뜯어진 초라한 벽, 비참한 공동 주택, 그 안에서 소련이란 나라에게는 매우 이국적인 록 음악이 꽃을 피웠다.

 

키릴 세레브랸니코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제자”는 영화로 다시 잘 제작되었다. 그렇다면 “레토”도 키릴 감독이 이끄는 “고골리 센터”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한 연극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예전에 소련 영화 “앗사”의 개봉 당시 모스크바 전구 공장 문화 공전에서 록 콘서트를 했던 것처럼, 개봉 전에 시끄러운 콘서트를 열 것이 아니라, 음악이 주연을 담당하는 그런 연극을 하면 어떨까. 그 연극을 통해 지금 신세대가 새롭게 빅토르 최를 발견하고 마이크 나우멘코가 작사한 노래와 가사를 알고,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떻게 달라질 수도 있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녹음기에서 돌아가던 카세트 테이프가 부드럽게 체제의 목을 감싸면서, 그 체제를 목 졸라 죽였는지. 빅토르 최의 음악이 어떻게 자유와 저항의 정신으로 구체제를 무너뜨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글=라리사 말류코바 영화평론가 | 노바야가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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