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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도심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자리한 ‘ANZAC War Memorial’ 앞 물 위를 수놓는 양귀비 꽃(사진. 이 꽃은 1차 세계대전을 상징한다). 지난 일요일인 11월11일, 제1차 세계대전 정전 100년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1,701송이의 꽃은 띄우고 있다. 이는 1차 대전에 참전한 NSW 주 1,701개 도시 및 타운 수를 나타낸다.

 

‘갈리폴리의 비극’ 겪은 호주, 전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약 4년4개월에 걸쳐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24일 발발-1918년 11월11일 정전 협정)은 오늘날까지 인류가 치른 가장 큰 전쟁이자 참극 중 하나로 기록된다. 전사자는 군인만 970만 명(질병과 사고 포함), 민간인 사망자는 657만 명(전쟁으로 인한 직접 사망 95만 명, 전염병과 기아 등 간접 사망 59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간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이 수치는 비록 전쟁이라고 하지만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개발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역동성을 더해 준 반면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목숨을 대량으로 앗아가는 데 사용된 것이 이 전쟁이기도 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은 지뢰, 장거리 포, 잠수함, 전투 비행기가 등장했고 심지어 독가스가 사용된 인류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대부분은 신원조차 파악되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묻혔다.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이 잠든 묘지에는 양귀비가 자생해 핏빛 꽃을 피워냈다. 이로 인해 빨간색 양귀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이 엄청난 전투에서 소중한 청춘들의 잃어야 했던 호주 또한 비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합군을 이끌던 ‘모국’ 영국의 요청으로 터키 갈리폴리(Gallipoli) 상륙작전에 뉴질랜드 군과 함께 ‘ANZAC’(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부대를 구성, 파견한 호주는 짧은 시간에 2만 명 가까운 사상자(전사 8천700명 이상)를 낸 최대의 국가적 비극을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갈리폴리 작전 실패 이후 프랑스 서부 전선에서 호주군의 희생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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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정전이 공식 발표된 날의 시드니 풍경. 이날 시민들은 도심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에 몰려 전쟁이 끝났음을 기뻐했다. 사진 : Australian War Memorial

 

지난 일요일, 11월11은 제1차 세계대전 정전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국은 이 전쟁의 비극을 잊지 말고 또 다른 전쟁을 막자는 의미에서 ‘11’이라는 수가 세 번 겹치는 이날 11시를 기해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호주의 참전군인 클럽인 각 지역 RSL 클럽은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짧은 묵념 시간을 가지며 영국과 마찬가지로 매년 11월11일 ‘Rememberance Day’를 기해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대대적인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La guerre est finie!”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전선 중 하나인 프랑스 북부 솜(Somme)에 배치되어 있던 호주 군인들이 이 소리를 들은 것은 1918년 11월10일 오후였다.

이 지역의 프랑스 민간인들이 흥분한 상태로 “La guerre est finie!”이라는 말을 외쳐댄 것이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손을 흔들며 이 말을 반복했다.

이들이 기쁨으로 외치던 소리는 호주군 진지에도 곧바로 전해졌다.

“The war is over!”

그 즈음 호주군은 조만간 새로운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상,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 최전방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휴전협정이 진행됐고 정전이 합의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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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휴전협정 서명에 참여한 영국-독일 6명의 대표를 표현한 그림. 왼쪽부터 독일 해군제독 Ernst Vanselow, 독일 외무부 장관 Alfred von Oberndorff, 독일 장군 영국 해군장교 Detlof von Winterfeldt, 영국 해군장교 Jack Marriott와 Matthias Erzberger(테이블 앞에 서 있는 이), 테이블 뒤 영국 장군 George Hope와 제1함대 제독 Sir Rosslyn Wemyss, 프랑스 장군 Ferdinand Foch(서 있는 이)와 Maxime Weygand.

 

1915년 갈리폴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 호주-뉴질랜드 군으로 이루어진 ‘안작 부대’ 참전 군인들은 서부전선에 배치됐으며, 3년여의 주요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며 ‘핵심 정예부대’라는 명성을 쌓았다.

호주는 영국의 요청으로 병력을 파견한 뒤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첫 ‘안작’ 파견 이후 30만 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으며 6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이 돌아온 호주는 어떠했을까?

 

새로운 국가 정체성

 

“좋든 나쁘든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우리 모국(Mother Country)과 함께 할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군은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울 것이다.”(For good or ill, we are engaged with the Mother Country in fighting for liberty and peace. And above and beyond everything, our armies will fight for British honour.)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14년 8월,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이 사설은 당시 대영제국의 한 일원으로, 또 영국을 ‘모국’으로 여기고 있던 호주인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역사학과의 라이 프란시스(Rae Frances) 교수는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호주인 대부분은 영국 태생이었고 또 영국 혈통이었기에 ‘모국’을 위해 그들 스스로의 몫을 하고 싶어 했다”며 이 글에 호주인들이 크게 반응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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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스마니아(Tasmania) 주 호바트(Hobart) 북부 브라이튼(Brighton) 출신이 한 자원입대 병사가 전장으로 나가기 전 신분확인용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어 프란시스 교수는 “이들은 영국의 힘을 믿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이 끝남으로써 대영제국의 지배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그녀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후 너무 많은 이들이 군 입대를 자원했기에 연합군을 주도했던 영국의 군 채용관들은 오히려 지원자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수개월 뒤 영국의 요청으로 긴급 구성된 ‘안작 부대’가 연합군 측과 합동으로 펼친 갈리폴리 상륙작전, 그리고 이후 전투에서 호주 병력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호주는 대영제국의 한 일원으로서의 의무감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호주인들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징병 문제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지속적 병력 증원 요청을 받은 당시 빌리 휴즈(Billy Hughes) 호주 총리는 모병만으로 필요 병력 확보가 어렵자 징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미 징병제를 도입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갖고 있었음에도 휴즈 총리는 1916년 이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보다 분명한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총리의 예상과 달리 국민투표는 근소한 차이로 징병제 도입 반대가 우세했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그는 이듬해 다시금 투표를 실시했으나 이 또한 반대가 더 많았다.

 

전쟁 외 다른 문제들 불거져

 

호주 병사들의 파병 논란에 가려져 있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 호주 경제는 본격적인 침체기로 접어들던 상황이었다. 1915년 3월, 호주는 무려 11%라는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무역업이 위축되면서 식료품 및 생활필수품 가격은 엄청나게 치솟아 가계재정을 압박했다.

서부 호주 대학교(The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역사학자인 로버트 볼라드(Robert Bollard) 박사에 따르면 호주 경제는 대공황 시기인 10년보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더 악화되었다.

높은 노동조합 가입률로 ‘강성 노조’의 특징을 지닌 노동자들은 1916년 대대적인 파업을 통해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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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호주군 희생자를 추모하는 이미지.

 

호주 각 노조의 파업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NSW 주 서부 내륙 브록큰 힐(Broken Hill)의 광산노동자들이었다. 이 곳 광산은 프랑스 서부 전선 보급 군사물자에 필요한 납 생산의 80%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볼라드 박사는 “1916년부터 1919년 사이, 각 산업 부문에서 호주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 이어졌고 이로 인한 손실은 엄청났다”면서 “그리고 이들의 파업은 호주 정부의 무조건적인 전쟁 지원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고 설명했다.

 

전쟁 이후의 호주는...

 

캔버라(Canberra) 소재 호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의 역사학자 멜리아 햄튼(Meleah Hampton) 박사는 “제1차 세계대전은 호주가 하나의 ‘국가’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고 분석했다.

햄튼 박사는 “1910년대, 국가적 기틀을 다진 호주(1901년 호주 연방 출범)는 국제 무대에서 호주라는 국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며 “그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고 이후 호주는 분명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후 호주는 새롭게 확인된 국가적 자신감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백인국가 전초기지로서의 호주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우려감을 떠안았다.

이 우려는 1919년(6월28일)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 31개 연합국과 독일이 맺은 강화조약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관계를 확정한 회의)을 통해 나타났다. 휴즈 총리가 이 조약 항목에 들어 있는 국제연맹 창설 조항 가운데 인종평등 항목을 거부한 것이다.

휴즈 총리는 일본 대표가 제안한 이 조항이 “호주의 차별적 이민법(백호주의 이민 정책)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며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

프란시스 교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는 전쟁 이전보다 더 엄격하게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와 결속했다고 생각된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서 보듯 일본이 서구 국가에 의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부감을 느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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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국군(Australian Imperial Force) 일원으로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한 병사가 가족과 기쁨의 상봉을 나누고 있다. 사진 : Australian War Memorial

 

아울러 1차 세계대전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정치적 분열을 가져왔다. 볼라드 박사는 “이 전쟁 기간의 상황을 보면 호주 내 좌파 세력이 힘을 강화했고 결국 공산당(Communist Party)이 부상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파 진영에서는 국가주의와 일당 독재를 주장하는 파시스트(fascist) 조직들이 등장하기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국내 상황에서 전쟁 이후 호주 참전 군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들의 삶을 이어갔다.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을 낳았다.

햄튼 박사는 “분명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나타난 여러 정치적 상황은 호주를 하나의 국가로 본 국민적 인식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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