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미묘해지는 정치 및 각 분야 현실을 한정된 그림 칸 안에 절묘하게 담아내 상황 자체를 비꼬거나 웃음을 주는 호주 미디어의 인기 카툰들을 한 눈에 보는 ‘Behind the Lines 2018’ 전시회가 문을 열었다. 이를 주관하는 ‘호주 민주주의 박물관’은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 소속의 풍자만화가 매트 골딩(Matt Golding)씨를 ‘Cartoonist of the Year’로 선정했다. 사진은 그의 카툰 ‘Curiouser and Curiouser’. 호주 정치 권력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빗대어 묘사한 풍자이다.
‘호주 민주주의 박물관’, 인기 카툰 선별한 ‘Behind the Lines’ 전시
페어팩스 미디어 소속 매트 골딩씨, ‘Cartoonist of the Year’ 선정
호주 정치 부문에서 올해는 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 자유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국민당(National Party)의 바나비 조이스(Barnaby Joyce) 대표 겸 연방 부총리가 담당 비서관과의 스캔들로 사임했으며, 정작 본인들조차 몰랐던 이중국적 신분이 드러나 의원직을 내놓거나 사임 후 보권선거를 치른 이들도 여럿이 나왔다.
압권은 올해 중반 불거진 자유당 내 권력투쟁이었다.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총리에 대한 유권자 지지도 하락으로 자유당 내에서는 새 당대표 선출 움직임이 본격화됐고, 내무부(Department of Home Affairs)를 맡고 있던 우파 정치인 피터 더튼(Peter Dutton)의 당권 도전에 턴불 총리가 자리를 지켜내기는 했지만 그의 재도전 움직임을 앞두고 사임을 발표하면서 자유당은 내년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익살과 해악, 풍자를 기본 요소로 하는 카툰(Cartoon)은 보통 한 컷의 그림으로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오히려 글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특히 정치 카툰은 특정 상황을 한정된 그림칸 안에 보다 적절하게 담아내려는 의도에서 다소 과장된 신체적 특징이나 표정을 만들어내게 되고 또 이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 때문에 시사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분노를 던진다.
매트 골딩(Matt Golding)씨의 또 다른 인기 카툰. 지난 10년 사이 7명의 총리(Prime Minister)가 등장한 상황을 드러낸 것이다.
‘Cartoonist of the Year prize 2018’을 차지한 매트 골딩(Matt Golding)씨.
권력의 핵심에 있는 정치권 상황은 종종 서커스의 곡예 이상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카투니스트들은 그것을 적절하게 때론 날카롭게 담아내 보여준다.
매년 이들 카투니스트들의 시사 풍자를 선별해 전시하면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카툰 전시회가 문을 열었다. 캔버라의 옛 의회(Old Parliament House)에 자리한 ‘호주 민주주의 박물관’(Museum of Australian Democracy. MOAD)이 매년 개최하는 ‘Behind the Lines’가 그것이다.
MOAD의 큐레이터 리비 스튜어트(Libby Stewart)씨는 “올해 선별된 카툰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각 상황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올해 선별 전시된 카툰 가운데는 스콧 모리슨이 턴불을 몰아낸 자유당의 지도력 공백이 두드러진다. 이를 소재로 한 카툰 가운데 정치권력의 미묘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 소속의 풍자만화가 매트 골딩(Matt Golding)씨가 ‘Curiouser and Curiouser’라는 카툰으로 ‘올해의 카투니스트’(Cartoonist of the Year) 상을 차지했다.
이해하기 힘든 정치권 상황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상상되는 한 장면으로 묘사한 그의 카툰은 이번 풍자만화가 전시되는 ‘Old Parliament House’의 전시장 입구에 걸려져 카툰들이 보여주는 ‘기묘한 정치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했다.
“매년 하는 말이지만 올해는 정말 놀라운 한 해였다”는 스튜어트 큐레이터는 “헌법 44조에서 명시한 이중국적자의 의회 활동 금지로 의원직을 내놓아야 의원들, 그 가운데 국민당 대표이며 부총리를 맡았던 바나비 조이스 의원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꽤 오래동안 지속되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주요 정치적 이슈가 됐던 일로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5월26일 자 호주 전국지 ‘The Australian’에 게재된 에릭 레베케(Eric Lobbecke)씨의 카툰. 핵무기를 체스 판위에 놓고 회담을 진행하며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는 북한과 미국 지도자를 담아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집권 여당 내의 지도력 공백을 가장 큰 이슈로 언급했다. “사람들은 자유당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를 피부로 인지하기 전에 새로운 대표 체제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곧이어 웬트워스(Wentworth)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자유당의 지도력 공백’이라는 전시회는 막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턴불 총리가 자유당 대표직 물론 의원직을 사임하면서 그의 지역구인 웬트워스 보궐선거에서 자유당은 무려 100년 이상 지켜온 이 지역에서의 의원 배출에 실패, 상당한 충격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 MOAD 전시회에서 ‘올해의 풍자만화가’로 선정된 몰딩씨는 “올해 정치 상황은 다른 해와 구별되는 몇몇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며 “전 세계적으로 우파 세력이 힘을 얻은 것이 그런 변화들”이라고 말했다. 국가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치스(Nazis)의 출현, 일부 국가에서의 부르카(burka. 무슬림 여자들이 얼굴은 물론 몸 전체를 감싸기 위해 입는 옷) 착용 금지, 백인 우월주의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It's OK to be White’ 운동 등 우리의 민주주의 여정에 의아함을 갖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정치적 게임이라는 고되고 힘겨운 세계에 빠져 지내지만 이를 카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원더풀하다”는 말로 카투니스트로서의 보람을 언급했다.
올해 자신에게 ‘Cartoonist of the Year’의 영광을 안겨준 카툰에 대해 그는 “본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라며 “때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만약 아이디어가 강하다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고 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전시회에는 캐시 윌콕스(Cathy Wilcox. The Age 및 Sydney Morning Herald), 마크 나이트(Mark Knight. Herald Sun), 마이클 루닉(Michael Leunig, The Age 및 Sydney Morning Herald),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 Sydney Morning Herald), 데이빗 로우(David Rowe, Financial Review), 여기에 제이슨 챗필드(Jason Chatfield, The New Yorker)씨의 풍자만화들도 눈길을 끌었다.
시드니 웬트워스(Wentworth) 지역구 보궐선거(턴불 전 총리 사임에 따른)에서 100년 이상 의석을 지켜온 자유당이 무소속 케린 펠프스(Kerryn Phelps. 가운데) 후보에게 패한 장면을 묘사했다. 무너진 모래성에 깔린 자유당 후보 데이빗 샤마(David Sharma. 왼쪽) 후보와 그를 전략적으로 이 지역구 후보로 내세웠던 모리슨 총리(Scott Morrison. 오른쪽) 총리.
MOAD의 대릴 카프(Daryl Karp) 박물관장은 이번 카툰 전시와 관련, “호주의 정치 풍자는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며 빼어난 풍자만화에 찬사를 보냈다.
카프 관장은 “우리(호주)는 지난 10년 사이 7명의 새 총리가 집권하는 것을 보았고 2007년 이래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절반 이상 하락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풍자만화가들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 힘을 잃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호주는 지난 2010년 노동당 정부의 부총리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가 케빈 러드(Kevin Rudd) 총리(노동당 대표)의 당권에 도전, 새 총리가 되었으며 3년 뒤에는 케빈 러드가 다시 당권 투표를 통해 노동당 대표직을 되찾으며 집권 여당의 갈라드를 밀어내고 총리 자리에 앉았다.
이어 치러진 연방 총선에서 러드의 노동당은 자유-국민 연립에 패해 토니 애보트(Tony Abbott) 자유당 대표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으며, 2015년에는 자유당 당 대표 경선에서 1표 차이(러드 정부 당시인 2009년 대표 경선에서 턴불은 애보트와 맞붙어 41표를 획득, 42표를 얻은 애보트에 패했다)로 애보트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말콤 턴불이 당권에 도전해 애보트를 밀어내고 총리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도 지난 8월 피터 더튼의 도전에 직면했으며, 자유당 의원 투표에서 더튼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재도전을 천명한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사임하면서 새로이 치러진 의원투표에서 모리슨이 당 대표로 선출, 제30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호주는 지난 2007년 케빈 러드의 집권 이래 10년 사이 무려 7명의 총리가 바뀐 것이다.
한편 ‘Behind the Lines 2018’는 ‘호주 민주주의 박물관’(MOAD) 전시에 이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일반에 선보인다.
-Parramatta Riverside Theatre : 2019년 1월29일부터 2월21일
-Old Treasury Building, Melbourne : 2019년 2월26일부터 4월29일
-Bunker Cartoon Gallery, Coffs Harbour : 2019년 5월1일부터 7월6일
-State Library, Queensland : 2019년 7월29일부터 11월2일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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