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 보이는데

 

요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원래 요리는 라면을 끓일 때 ‘파송송 계란탁’이 고작이었다. 식재료가 주방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올려지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요리는 그저 오래오래 손이 아니라 입과 혀의 일로만 여기고 살았다.

 

코로나19 봉쇄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유튜브 동영상을 유심히 따라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맛있고 영양 만점의 요리가 그냥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특히 냉장고에 흔히 보이는 식재료를 이용해 금세 만드는 요리는 효능감 있게 다가왔다.

 

적양배추에 양파와 당근을 가미한 야채 절임이 딱 그런 요리였다. 식재료와 조리 방법은 단순 명료한데 영양가와 맛은 탁월했다. 야채를 채 썰어 소금 한 꼬집을 뿌린 후 올리브유,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 꿀, 후추 등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섞어 2시간 숙성하면 완성이었다. 구운 고기에 파절이 대신 곁들이거나 버터 발라 구운 빵에 올려 먹으면 새콤 쌉싸름 달콤한 맛이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조리 과정은 만만하기 그지없고 재료 또한 평범하고 건강식이라 당장 시도해보았다.

 

동영상과 달리 곳곳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식재료면 된다고 했는데 정작 적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머스타드 소스가 없었다. 하루 종일 요리만 생각할 수는 없어 깜빡 잊기도 해 빨리 사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고 한인 식품점에 갔는데 머스타드 소스만 없어 따로 콜스 슈퍼마켓을 찾아야 했다. 결국 식재료를 완비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조리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잔류 농약을 없애기 위해 야채를 씻어서 한동안 물에 담가 놓았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채칼이라 몇 배 조심해서 다루어야 했다. 야채 부스러기는 여기저기 흩어졌고 흔한 소금통이 안 보여 온 주방을 헤집고 다녔다. 양념장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계량 숟가락이 없어 대충 양을 맞춰야 했다. 끈적거리는 꿀은 잘 떨어지지 않아 딱 두 숟가락을 넣는 게 까다로웠다.

 

재료 준비가 끝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잘 절여진 야채에다 양념장을 뿌리고 섞어 유리병에 담으면 됐다. 다만 병목이 좁아 야채가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금씩 조심스럽게 넣어야 했다. 그래도 유리병 주위에 부스러기가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간단한 야채 절임인데 부엌에는 잔칫날처럼 치울 물건이 쌓였다. 도마, 그릇, 야채 절인 통, 양념통, 채칼, 부엌칼, 숟가락을 씻었다. 여기저기 깔려 있는 쓰레기도 말끔히 모아 버렸다. 소금, 머스타드, 올리브유, 후추는 마개를 닫아 제자리에 정리했다. 조리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싱크대 주변을 행주로 닦고, 그 행주도 씻어 말리고 나서야 일이 끝났다. 동영상으로 본 적양배추 절임은 간단의 극치였으나 실제로는 전혀 간단치 않았다. 재료 준비와 뒷정리가 조리보다 더 복잡했다.

 

27년간 부부로 살고 있는 아내는 적양배추절임처럼 간단명료한데 실상은 복잡 미묘한 구석이 있다.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아내가 피곤하다면서 ‘까치봉’ 안마를 해달라고 했다. 까치봉은 까치의 머리, 다리, 꼬리를 본떠 만든 삼각형 목제 안마 기구이다. 그날은 집에서 사무실 일을 했다. 끝나면 안마를 해 주마 했는데 일이 늦어졌고 그 사이 아내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10km 달리기를 하고 회사에서는 입식 책상에서 몇 시간 서서 일한 탓에 피곤이 몰려왔다. 결국 아내에게 안마를 해주지 못하고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한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때 잠을 깬 아내가 발 안마를 해달라고 했다. 졸음과 노곤이 범벅이 된 터라 아침에 하면 안 되겠냐고 간청했으나 막무가내였다. 하릴없이 거꾸로 누운 채 까치봉을 들고 아내의 발을 잡고 안마를 했다. 비몽사몽간에 만지작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러자 아내가 큰 소리로 “여보, 안마 안 해요?’라고 짜증을 냈다. 깜짝 놀라 까치봉을 잡고 무심코 아내의 발바닥을 꾹 눌렀다. 그녀는 “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차 싶었다.

 

‘까치봉’의 부러진 꼬리로 아내의 발바닥을 찌른 것이었다. 몇 년 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까치봉의 꼬리가 부러졌고 그 부위는 까칠하고 뾰족해서 안마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발바닥이 찔렸으니 날카로운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아내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이불을 말아들고는 아이들 방으로 훌쩍 가버렸다. 따듯한 애정의 도구인 까치봉이 부부간에 갑작스러운 각방을 초래한 것이다. 평소 온화한 아내의 극대노라서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다음 날에도 분이 식지 않은 아내에게 발이 손이 되도록 빌고 손이 발이 되도록 분발했다. 일상 반복으로 이루어지던 발 안마도 알고 보니 간단하지 않았다. 제대로 하려면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아내의 발을 귀하게 여기고 어떡하든 피로를 풀어주겠다는 소중한 사랑이 필요한 복잡한 일이었다.

 

정신없이 휙휙 지나치는 세상일은 간편 요리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남이 하는 일이라서 단순하고 간편하게 보인다.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세상일의 진상은 동영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전혀 딴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27년 아니라 50년을 함께 살아도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매일 매순간 신묘하게 달라지는 성품을 가진 아내는 말할 것도 없다.

 

쉬워 보이는데 사실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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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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