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날 때 동시에 두 길을 갈 수는 없다.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선택하면 다시 그 기회는 돌아오지 않기에 선택은 중요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뒤늦은 선택에 대한 후회는 아무 소용도 없다.
기적처럼 선택이란 것이 내가 가야만 하는 길로 나타날 때가 있다. 운명이기에 나를 찾아올 수도 있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찾아 올 수도 있는 길이다. 27살의 청년 이승호씨는 사춘기의 터널에서 이 운명의 길을 만났고, 그 길을 따라 여전히 걷고 있다.
중학교 때 프랑스에 건너온 재불교민 1.5세인 이승호씨는 그랑제꼴인 에꼴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프랑스 국가공무원으로 INSEE (L'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économiques:통계. 경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 파리에 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2003년에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왔습니다. 조기 유학을 하게 된 것이죠. 작은 아버지께서 파리에서 주재원 근무를 하고 계셨고, 아버님께서 자식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셨어요. 희소성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미국보다는 유럽, 유럽에서도 문화, 예술의 도시인 파리에 끌리셨는데 작은 아버지가 계시니 안심이 되신 거죠.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학교생활에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 중학교와 연결된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프랑스어 집중수업을 6개월 동안 받았어요. 종강을 하면서 테스트 시험을 보았고 성적이 잘 나와 중학생 2학년(4ème)으로 시작할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6개월 정도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에 말썽을 피웠는데, 하나를 잘못하니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제가 한 것처럼 되더라고요.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이 선생님께 오해를 크게 사서 작은어머님이 학교까지 오셔야 했는데 다행히 작은 어머님이 프랑스어를 잘 할 줄 알아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만약 주변에서 프랑스어를 하시는 분이 없었다면 학교생활이 더 힘들었을 것에요. 6개월 정도 지나자 문화적 차이를 피부로 실감하면서 적응도 점차 하게 되어갔고, 어머님과 여동생이 파리에 와 함께 살게 되면서 심리적 안정도 찾았던 것 같아요.
2학년 때는 적응도 어렵고, 불어도 잘 하지 못할 때라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프랑스어 실력이 늘면서 3학년 때부터는 성적이 올라갔어요.
중학교 졸업 하고는 6구에 위치한 사립고등학교(Lycée Stanislas)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 들어갈 때는 서류를 접수하고 합격이 되면 교장선생님과 면접을 봐야합니다. 저는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수학 점수가 높아 입학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프랑스는 다른 과목이 부족하더라도 수학을 잘하면 알파플러스가 있습니다. 고 1때까지는 수학, 물리, 화학 등을 잘했지만, 고 2때부터 사춘기라고 할 수 있는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공부는 등한시하고,친구들과 기타, 피아노 등을 연주하며 음악에 빠져 지내며 놀았습니다. 공부를 안하는 만큼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졌습니다.
● 마음을 잡고 다시 공부하게 된 계가 무엇인가요?
고2 여름 방학 때 한국에 갔었습니다. 가까운 친척 중에 제 또래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간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하며 자포자기로, 공부는 포기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때 베짱이처럼 놀며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지 않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프랑스에공부하는 것이 내게 행운이자 기회란 것을 깨달았죠. 남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인데, 전 남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때 드라마 ‘쩐의 전쟁’을 보았어요. 드라마 내용 중에 천사리 마을이 나와요. 독고영감이란 사람이 천사리 땅을 사서 병원, 집 등을 지어 가난한 이들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그들의 노후보장을 해주는 거죠.
저는 부모님이 다 일을 하셔서 조부모님이 키워주셨어요. 그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어 노후 복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때 본 천사리 마을인 실버타운이 인상적이었고, 저도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직접 이런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울메이트와 같은 친구들에게 나도 돈을 많이 벌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선언을 했죠.
이때부터 공부를 해야만 하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을 때 교장선생님과 면접이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의 관례로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성적관리도 해주며 진로 등을 상담해줍니다. 저는 교장선생님께 지켜봐달라고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잠을 줄이고 밤낮으로 공부를 하고 방학에도 복습반에 들어가 공부를 했죠. 한 학기기가 지나자 교장선생님이 성적이 올랐다며 격려를 해주시는데 어깨가 으쓱하며 공부하는 재미도 커졌어요. 2학기에는 상위권으로 진입하고, 3학기에는 1등을 했습니다. 한 만큼 결과가 나오자 자신감도 커지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반(préparation)에 들어가 2년 과정을 마치고는 시험을 봐서 에꼴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에 들어갔습니다.
● 에꼴 폴리테크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제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출세하여 돈 많이 벌어 좋은 일을 하고,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선언했던, 사회적 기여를 하겠다는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죠. 현실적으로 큰 돈을 번다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하고, 제가 돈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성이 어렵겠더라고요.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제도화시키는 일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구현하는 것이 현실성이 더 크다고 보았습니다. 국가, 정부의 제도, 정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에꼴 폴리테크닉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양성교육기관으로 1학년 때는 6개월 동안 군사훈련을 3개월 동안은 일반 수업이 진행됩니다, 2학년 때는 모든 분야에 걸친 공부를 하고요, 3학년 때는 2학년 때 흥미가 있었던 과목 중에서 골라 전공을 정합니다. 저는 경제학을 선택했습니다.
3학년이 석사과정으로 처음에 금융공학을 할까 했는데 교수가 이유를 물었어요. 저는 돈을 벌고 싶다고 했습니다.교수님이 왜 돈을 벌려고 하느냐고 묻는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려던 초심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만을 추구하려는 제가 보였습니다. 다시한번 경제 정책, 연금법, 조세 등 공공정책의 개발로 가자로 다짐하며 경제학을 선택했습니다. 이때 미국의 5곳의 유명대학에 박사과정 입학 서류를 넣었는데 다 떨어져 좌절감이 컸었어요. 처음으로 맛본 실망감, 좌절감에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운 좋게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며, 겸손함을 배운 시간입니다. 그리고는 4학년 과정까지 마침으로써 졸업을 하고는 2015년 9월부터 INSEE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INSEE를 선택한 이유와 다른 계획은 있으신가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턴으로 여러 곳에서 일했습니다. 인턴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의무로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무로 응용하며 배우는 시스템입니다. 저는 경제통상대표부에서 6개월, 금융권BNP은행의 자산운용부서에서 금융엔지니어링, 리서치 관련 일을6개월, CGI 3개월, OECD에서 6개월 등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국제적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더 맞고 흥미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각국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프랑스 내에서만 거주하며 일하는 것보다는 외국에서 일하면서 사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첫 시작으로 INSEE의 거시경제 분석팀에서 일하며 간행물에 필요한 글도 쓰며, 리서치 연구논문도 1년에 한편씩 써야 해 아주 바쁘게 보냈습니다.
국가 공무원은 3년마다 일하는 곳이 바뀌는 순환제로, 일하고 싶은 곳에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재정부나 프랑스 중앙은행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은 국제적 업무를 하며, 전문성이 높고 세계 경제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져 실무를 보면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고, 재정부는 IMF, 세계은행, OECD와 연결되어 있어 더 넓은 안목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일할 수 있으며,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로 국제적 업무를 보며 경제 분야에 전문성과 식견을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이를 시작으로 여러 방면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많이 쌓을 예정이며 이번 9월부터는 박사과정도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역량을 키우고 싶어서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많은 경험과 더불어 저의 사회적 위치도 높아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어지고, 영향력도 커지리라 믿습니다. 성장 속에서 저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사회적 이익,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묻는 일과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저를 성찰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하며 어쩌면 이렇게 바르고, 에너지 넘치고, 밝을 수 있을까 감탄을 했다. 젊음이 주는 용기와 더불어 자신에 대한 신뢰가 그를 이렇게 탄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제 27살인 이승호씨가 가는 길 앞에 선택의 길이 나왔을 때 초심이 반짝반짝 빛을 내어 인도해주리라 믿는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