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을 끊고 평정을 찾았다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간 밤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깼다. 뭔가 아직도 불안한 것이 있나? 알람콜은 역시 5시 45분에 정확히 왔다. 샤워 후 식사하고 7시에 시작하는 Pre-trip inspection (운행 전 차량검사)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도 지난번에 들은 것이지만 한 번 더 들으니 좀 더 이해가 됐다. 밤 9시까지는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온라인으로 하는 설문 조사가 남아 있었다. 정부에서 하는 것과 회사에서 하는 것이 각각 있었다. 정부에서 하는 것은 개인 성격과 성향에 대한 질문이었다. 모르는 내용은 사전을 찾아가며 설문에 응했다. 왜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회사에서 하는 것은 일과 관련한 개인의 지향이나 적성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이 설문에 기반해서 성격이 맞는 트레이너나 트럭 분야를 추천해 주는 용도로 쓰이는 것 같았다.
8시 30분에 예정된 여학생들을 위한 하이웨이 다이아몬드 미팅도 취소됐다. 트럭업계에서 여성 운전수의 비율은 4%인데 프라임에서는 12%라고 했다. 업계 평균보다 세 배나 높다. 회사에서는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방으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잠을 잔 후 점심을 먹었다. 영화관에 갈까 생각했지만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는데 킬링타임용으로 시내까지 일부러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내가 결정할 사항이 더 남아 있다. 바로 어떤 분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냥 보기엔 트럭 운전이 다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형태의 화물을 모느냐와 어떤 범위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나뉜다.
가장 흔히 보는 네모난 박스 형태의 트레일러를 드라이밴(Dry van)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온도조절 장치가 달린 것은 리퍼(Reefer)라고 부른다.
평평한 바닥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은 플랫베드(Flatbed)다.
탱크에 액체 화물을 싣고 다니는 차량은 탱커(Tanker)다. 탱크 내부에 격벽이 없이 통으로 된 것은 벌크 탱크인데 주로 식품을 운송한다.
이 외에 덤프트럭도 있지만 공사용 차량은 별도로 취급한다.
프라임에서는 리퍼, 플랫베드, 탱커 세 개의 디비전(Division)이 있다. 디비전 별로 운전 외에 업무 내용, 근무의 형태나 시간 등에 차이가 있다.
초보자에게 가장 무난한 것은 리퍼다. 가장 장거리를 뛰어야 한다. 주로 새벽에 물건을 인수하거나 배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프라임에서 가장 큰 디비전이다.
플랫베드의 경우 화물을 고정하는데 많은 신체적 활동을 필요로 한다. 거의 노가다에 가까운 작업이지만 가장 다양한 형태의 화물과 다양한 장소에 갈 수 있어 육체활동을 좋아하고 뭔가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수업 시간에 보니 젊은 백인 학생들이 플랫베드를 많이 지망했다. 주로 평일 낮에 물건을 배달하고 주말에는 쉬는 경우가 많다.
탱커는 화물의 출렁거림으로 인한 전복 위험성이 높아 일반 회사에서는 경력자만 채용한다. 프라임에서는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는지 모르겠다. 프라임에서 가장 작은 디비전이고 활동 지역도 제한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디비전을 다 경험해보고 싶지만 탱커는 가장 나중이다. 지금은 리퍼 아니면 플랫베드다.
사실 초보자 학생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범위는 넓지 않다. 본인이 특정 분야를 꼭 고집하지 않는 한 거의 리퍼라고 보면 된다.
활동 반경에 따라서는 OTR, Regional, Intermodal, Dedicated, Local 등으로 나눈다.
OTR은 Over The Road의 줄임말이다. Long-Haul이라고도 부른다. 전국을 누비는 장거리 노선이다. 가장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해서 운전수들이 꺼리는 직종(職種)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사람이 부족하고 그 부족분을 나 같은 신입자들이 채운다.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는 자유도 한두 해지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라임 리퍼는 OTR이다.
Regional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말이 지역이지 남한 땅의 몇 배의 넓이를 커버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간다고 보면 된다.
Intermodal은 항구나 열차 화물 터미널 사이를 오가며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일이다. 며칠에 한 번 꼴로는 집에 갈 수 있다.
Dedicated는 특정 회사만의 화물을 전속(專屬)으로 운송하는 일이다. 수입이 안정적이고 경우에 따라 매일 집에 갈 수 있어 트럭커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이다. 그만큼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도 경력자에게 유리하다.
Local은 말 그대로 시내 배달 업무다. 일반 직장과 같은 형태의 출퇴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형 트럭을 몰고 시내를 다니는 일은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다. 또 직접 물건을 싣고 내려야 해서 육체 노동도 많다.
CDL Class A 면허를 갖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덤프트럭이나 레미콘을 몰 수도 있고, 청소차를 몰 수도 있다. 나중에 더 나이들어 해보고 싶은 일은 영화촬영용 트럭을 모는 일이다. 뉴욕에서 택시를 몰다 보면 영화촬영현장을 자주 마주친다. 일찌감치 대형트럭이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장비를 내린 후에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서 있는 것이라 일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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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끊고 평정을 찾았다
나의 글쓰기는 자유롭다
나는 한 때 반 년 가량 페이스북을 중단한 적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때의 공백기간 덕분에 페이스북을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람마다 페북을 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일상의 기록 목적이 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좋아요 숫자에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페북을 끊었다. 그리고 평정(平靜)을 찾았다.
페북 재개 이후에 나는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며,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거나 공감하지 않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도 않는다. 댓글을 다는 경우는 정말로 관심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의 포스팅에 큰 관심은 없다. 트럭킹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지금의 일상을 기록해 두자는 취지다. 말하자면 일기다. 그렇다면 블로그나 구글 드라이브 같은 곳에 올려도 되지 않겠나? 맞다. 그래도 된다. 그런데 일기라도 결국에는 누군가 나중에 읽을 것을 전제로 쓰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설령 자신일지라도. 그러니 페북에 일부를 공개한다고 큰 해는 없을 것이다. 관심 있는 사람만 읽을테니까. 개인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있다. 다만 페이스북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올리기가 편리하다. 의견을 청취하기도 용이하다.
택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흥미로운 경험이 많았다. 그때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나중에 쓰려니 흥도 안 나고 글에 생동감도 없다. 심지어 기억이 왜곡(歪曲)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훗날 내 생업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업작가는 아니더라도 생계의 일부를 담당한다면 충분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쓰는 것이니까.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근력(筋力)이 붙어야 한다. 꾸준히 일정량 이상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설익은 글이지만 연습 삼아 쓴다.
그런데 좀 생소한 분야에 도전해서 그런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해주는 분들이 온오프라인으로 계시다. 개인적으로 나를 만나서 식사를 사주고 선물을 주거나 심지어 현금까지 후원하신 분들이시다. 한국에 있는 친구는 전화를 통해 진심 어린 격려를 해준다.
내가 좋아서,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인데 누군가에게는 다소나마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 글쓰기에 약간이나마 책임감을 느낀다. 글을 수려(秀麗)하게 잘 써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내 삶을 글로 쓰는 것이기에.
나는 여전히 불친절한 필자일 것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을 것이며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글을 쓸 것이다. 좋아요를 바라고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는 자유롭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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