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우리의 미래라면 노인은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노인들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원천이며, 사회발전을 이끈 원동력이자, 인생의 값진 경험과 지혜를 갖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고 우리의 내일이 있는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일궈온 그들의 노고를 잊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진정한 우리의 민낯을 볼 수 없는 부끄러움을 의미한다.
어떤 일에 평생을 바치면서 덕망이 높은 사람을 우리는 ‘원로'라는 이름으로 존경을 담아 부른다. 예전에는 마을에 원로라고 할 수 있는 분이 한 두 분쯤 계셔서 마을의 대소사를 묻고 가르침을 받았다. 19세기 말 조선을 다녀간 미국인 교사 조지 길모어는 “조선 사회에서 백발은 영광의 표시이며 할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노인에 대한 젊은이의 예의는 서양인들도 배워야 한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가에서도 국가의 중요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국가 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두기도 한다. (헌법 제90조)
사회적인 갈등으로 우리사회가 혼란스럽고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지역사회에서 신망 받는 원로들이 나선다면 증폭되는 대립과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깊은 경륜을 바탕으로 지조와 기백을 지키며 정의를 위해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원로를 찾기란 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보화 시대 한가운데 있는 요즘 세대에서는 이러한 원로의 가르침을 받는 일도, 존경받는 원로를 모시는 것조차도 생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원로는 원로의 자리에서 충분히 빛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어디서든 인정받아야 하고 어디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원로들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분위기를 망치고 오히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지역의 어른으로서 제대로 된 말과 제대로 된 행동,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행히 파리에는 거목 한묵 선생님이 원로중의 원로로서 존경을 받으며 한인사회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간직하겠다며 출발한 한인 원로들의 모임 청솔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재불한인사회를 일궈온 1세대 주역들로, 한인사회의 사정에 밝고 누구보다 애정이 깊은 청솔회는 한인사회의 다양한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 나가고 있다. 이들이 자리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더없이 감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역대 한인회장들 상당수가 아예 한인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인사회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뒷짐만 짓고 있을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두차례라도 정기 회동을 갖고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덕담을 나누고 자문하는 역할도 필요하리라 본다. 영향력을 발휘하라는 것이 아니라 신망과 경륜을 지닌 원로로서 적어도 한인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원로의 존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 추 역할을 한다. 가정에서부터 사회 곳곳의 크고 작은 조직에 이르기까지 기꺼이 원로라 칭할 수 있는 분들의 존재 유무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원로가 존경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한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