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자 원영스님 8주간 진행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한국 현대불교의 거목 성철(性徹·1912~1993) 전 종정스님의 법어(法語)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미주에서 처음 마련돼 관심을 끈다.
뉴욕 맨해튼 조계사에서 5일부터 8주간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성철스님 백일법문’ 특강을 진행한다. 이번 특강은 성철스님의 제자인 원영스님(뉴저지 보리사 회주)이 맡게 되어 관심을 끈다.
원영스님은 맨해튼에 오기 힘든 불자나 성철스님 법어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해 매월 첫째 일요일과 셋째 일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뉴저지 보리사에서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설법을 병행하게 된다.
'백일법문'은 1967년 겨울 해인사. 조계종 첫 총림(叢林)인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으로 취임한 성철 스님이 동안거를 맞아 약 백일간 대중스님들을 위해 불교를 총체적으로 강설한 것을 이른다.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불교의 근본사상이 ‘중도’임을 정립했고, 현대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백일법문은 1947년 봉암사 결사와 1967년 해인총림 지정과 함께 한국 불교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꼽힌다.
성철 스님 스스로 “선(禪)과 교(敎)를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설명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자부했던 이 법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제자들이 설법을 몰래 녹음해 보관한 덕분이었다. 성철 스님을 평생 시봉한 원택 스님이 훗날 성철스님의 허락을 얻어 1992년 처음 <백일법문>(장경각 펴냄)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백일법문'은 지리산에서 가야산으로 나아간 발걸음, 견성을 이루어 깨달음에 이르렀던 정진, 해방과 더불어 불교 중흥의 길을 마련하였던 실천과 가르침, 중생들에게 연기법칙을 전하였던 청량한 법음 등에 대한 사진과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특강을 진행하는 원영스님은 성철 스님을 찾아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성철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하기 바로 전 해였다. 서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원영스님은 이런 저런 세상사를 거친 뒤에 불쑥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고 한다.
원영 스님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왜 하필 백련암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는 절이라곤 백련암밖에 없고, 스님이라고는 성철 스님밖에 몰랐다. 그래서 백련암을 찾아갔다”고 답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펴내는데 공헌하고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원택 스님은 원영 스님의 사형이다. 성철스님은 제자들에게 꾸중을 많이 했던 엄한 스님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원영 스님은 “나는 야단맞은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경남 산청 태생으로 사투리가 심한 성철 스님의 말씀을 역시 경상도 출신인 원영 스님이 잘 알아들은 덕분이었다.
원영 스님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도 그 속에 특별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 가르침 또한 일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 대부분일 텐데, 특별한 것을 기대하는 심사도 제대로 된 이해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영 스님은 한국에선 경기도 하남의 정심사에 주석(駐錫)하고 있다. 이곳엔 특이한 전각(殿閣)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성철 스님의 사리탑을 모신 곳이다. 성철스님 사리탑은 해인사에도 있지만 이곳은 말년의 성철 스님이 서울에 오면 잠시 머물던 인연으로 원영 스님이 조성했다.
사리탑은 맨 아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새겼고, 중간에 동(銅)으로 제작된 성철스님 좌상이 있다. 가장 상단에 사리를 모셨는데 외부에서도 친견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원영 스님은 뉴욕불교사원연합회장도 역임하는 등 미주 포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지난 2012년 12월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비극이 벌어졌을 때는 원각사 주지 지광스님들과 김정광 뉴욕불교문화원장 최한규 거사 등 불자들이 함께 현장을 찾아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모습이 주류 언론에 일제히 보도돼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 성철스님 백일법문 특강
맨해튼 조계사
9월 5일~10월 24일 (8주간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반~8시반)
주소 : 42 West 96 st. New York NY 10025 전화 212-
뉴저지 보리사
매월 첫째 일요일과 셋째 일요일 오후 3시~4시
주소 : 180 Tenafly Rd. Englewood NJ 07631 전화 201-816-0633
문의 : 보리사 borisalove@gmail.com 전화 201-657-7728, 201-725-9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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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가야산 호랑이’ 성철스님 행장
성철 스님 <사진 유투브 캡처>
“불교보다 더 나은 진리가 있다면 또 찾아나서야제!”
성철 스님은 1936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야산 해인사 동사 스님에게로 출가하여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다스렸으며, 중도의 깨달음을 일러주기 위해 여러 학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현대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봉암사 결사(結社)’를 주도하였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한국 불교 주요 사찰이 결혼한 대처승(帶妻僧)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로 시작된 불교 혁신 운동이다.
당시 성철, 자운, 보문, 우봉 스님은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생활의 지표로 삼으며 스스로 결사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졌고, 대처의 타락한 승풍을 쇄신할 것도 천명하며 부처의 교법에 따른 수행 정신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성철 스님은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가야산 해인총림은 승단정화운동을 거쳐 1962년 출범한 대한불교조계종이 5년 뒤 지정한 첫 총림(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이다.
1967년 당시 56세로 초대 방장에 취임한 성철스님은 첫 동안거를 맞아 한국불교 최고의 설법으로 꼽히는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요”라는 유명한 법어를 내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평생을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했던 성철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열반(涅槃)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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