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일을 몹시 비능률적으로 하는 곳이다. 자정이 되어 체크인하러 가니 줄이 늘어섰다. 야드에는 기다리는 트럭들로 엉켰다. 나는 한산한 곳에 자리 잡아 다행이다.
닥에 대고도 짐을 내릴 기미가 안 보인다. 잠을 자둬야겠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하차가 끝났다. 그러고도 서류 받느라 또 한참 걸렸다. 잠을 제대로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다. 다행인 것은 트레일러 내부 물청소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TA 트럭스탑으로 돌아가 40분을 더 쉬고 10시간 휴식을 채웠다. 다음 화물은 3시간 거리에 오전 10시 약속인데 이미 불가능하다. 워싱턴 DC와 볼티모어를 지나가니 출근길 정체로 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일단 정오 도착이라고 보고했다.
역시나 길이 막힌다. 뉴욕, LA, 시카고, 워싱턴 DC, 애틀랜타는 미국에서 가장 교통이 막히는 도시들이다. 그래도 열심히 달려 11시 30분에 도착했다. 닥에 대기 위해 트레일러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어제 어두운 새벽이라 제대로 못 봤다. 트레일러 청결 상태는 밝은 곳에서 확인해야 한다. 아주 더럽지는 않아 짐은 실을 수 있다.
여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짐 다 싣고 직원이 오더니 261달러를 내란다. 럼퍼피인가 했더니 Pallet 값이랑 Late fee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팰릿 값을 따로 받다니. 1시간 30분 늦었다고 지각료까지. 바쁘지도 않고 한산하구만. 지각료는 내 잘못이 아니다. 본래 앞 화물 배달 약속이 자정이다. 내가 배달하고 10시간 휴식을 마치면 빨라도 오전 10시다. 4시간 거리에서 화물 싣는 약속이 오전 10시니 애초에 내게 와서는 안 되는 화물이었다. 그나마 내가 최대한 빨리 움직여 오전 7시에는 발송처로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하며 예상 도착 시간도 알렸다.
가야할 거리가 300마일이 넘는다. 업스테이트 뉴욕 시라큐스 근처다. 가다가 트레일러를 핏스톤 터미널에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결이 여의찮은지 내가 배달을 마치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6시간 30분. 길이 막히지 않고 쉬지 않고 달리면 시간 내 도착은 가능하다. 그런데 트레일러에 짐을 어떻게 실었는지 13번 핀에 맞추고도 텐덤 타이어 무게가 아슬아슬하다. 그냥 가기에 불안하다. 트럭스탑에 들러 무게를 달아보기로 했다. 가뜩이나 바쁜데.
생각대로 텐덤 타이어 무게가 거의 한계치(限界値)에 가깝다. 그래도 중량 오버는 아니니 그대로 달리기로 했다. 원래는 12번핀을 넘어가면 안 된다만 그걸 따질 시간이 없다. 플로리다에서 올라 올 때도 매번 웨이스테이션으로 불려 들어갔었다. By pass 사인을 받아 그냥 통과하기는 했다. 텐덤 타이어 중량이 한계치에 가까워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30분 남겨두고 배달처인 Sysco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일 오전 5시 30분에 화물을 받는단다. 내부에 주차할 수도 없다. 5마일 떨어진 호텔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 갔다 내일 오라고 한다. Sysco에서 소유한 곳이라 했다.
며칠 전 눈폭풍 영향인가 아직도 눈이 많다. 호텔에 도착하니 눈을 치웠어도 완전하지 않아 바닥이 얼어 있다. 주차하고 식사를 하려고 건물로 들어갔다. 바가 있었다. 햄버거 시키고 생맥주도 한 잔 시켰다. 트럭 운전한 이후로 밖에서 술 마신 적은 처음이다. 오늘은 운행을 다 했으니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 맥주 맛은 좋았다.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 나중에 머리가 좀 아팠다.
야간 디스패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일 오전 8시로 약속 시간을 변경해달라고 했다. 약속시간 변경이 안 된다고 연락이 왔다. 새벽에 오프 듀티로 가야 한다. 5마일 정도 거리니까 별 무리는 없으리라.
대청소
새벽 4시 30분에 기상했다. 5시가 되니 8시간 휴식이 끝나 4시간 30분가량이 새로 들어왔다. off duty로 운전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는 다른 트럭들도 있다. 어젯밤에는 나 혼자였는데.
5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 옆에 있던 다른 트럭도 나를 따라온다. 가는 길 중간에 가파른 고개가 있다. 어찌나 가파른지 시동을 꺼트릴 뻔했다. 3단 기어로 간신히 올라갔다. 뒤따라 오던 트럭도 쩔쩔맨다.
시스코에 도착했다. 앞에 트럭 두 대가 있었지만 빨리 입장했다. 처음 오는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설명을 들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그려 복사한 약도를 준다. 주차와 닥킹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눈이 많이 왔었는지 주차 공간 뒤로 치운 눈이 트레일러 높이 만큼 쌓였다. 바닥도 얇은 눈과 얼음으로 덮였다.
하차를 기다리는 동안 2시간이 지나갔다. 여기 오느라 쓴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채워졌다. 배달지 출발 메시지를 보냈다. 글렌은 터미널로 오거나 집으로 바로 가거나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집으로 바로 가면 좋지. 그런데 주차 공간이 있어야 말이지. 타로카드를 뽑아봤다. 두 번이나 뽑아도 절대적으로 집으로 가라고 나왔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뉴욕 인근에 주차할만한 공간을 검색했다. 없다. 내가 생각했던 곳은 10시간이 넘으면 견인(牽引)까지 한다고 악명이 높았다. 한나절이나 하룻밤 정도야 어떻게든 집 근처 서비스 로드에 세워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위험하다. 타로카드가 아무리 잘 나와도 아무 대책 없이 갈 수는 없다. 내가 믿음이 부족한가?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핏스톤 터미널로 향했다. 시라큐스에서는 뉴욕보다 핏스톤이 약간 더 가깝다. 오면서 빌 브라이슨의 a walk in the wood를 들었다. 저자가 44세일 때 친구와 아팔라치안 트레일을 걸었던 기록이다. 빌 브라이슨은 참 글을 맛깔나게 쓴다. 유머 감각이 글에 묻어난다. 운전하다 몇 번을 웃었다. 그가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은 외모에서도 드러난다.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같다.
정오경에 핏스톤 터미널에 도착해 인바운드 베이에서 차량 검사를 받았다. 트레일러 바퀴 하나를 교환하고 트레일러 내부에 두 곳을 땜질한다. 엔진룸 후드도 열어보더니 팬벨트가 손상됐다며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솔직히 요즘 게을러서 프리 트립 인스펙션을 잘 안 한다. 하지만 했더라도 그 부분은 발견 못 했을 것이다. 팬벨트 한쪽으로 이빨 빠지듯 톱니 모양으로 몇 곳이 떨어져 나갔다. 마침 엔진 오일 교환 시기도 됐다.
여기 오느라 가이암과 트레일러는 소금 범벅이 됐다. 와쉬 베이에서 all three(트랙터, 트레일러, 와쉬아웃)를 외쳤다. 말끔해졌다. 오늘은 야드가 한산하다. 트레일러 주차하고, 밥테일 주차구역에 가이암을 세운 후 트랙터샵에서 작업 예약을 했다. 언제 연락이 오려나?
집으로 바로 가도 되지만, 하루 머물며 정리를 하기로 했다.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트럭 내부 대청소를 했다. 나는 쓰레기도 잘 못 버리는 호더 기질이 있다. 언젠가는 쓸 데가 있겠지 싶어 물건을 보관하지만, 결국에는 대부분 안 쓴다. 사람도 잘 정리 못 한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도 한두 가지 장점은 있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도움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받을지도 모르는 그 도움보다 쓰레기 같은 인간과 관계를 유지하느라 드는 에너지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잘 안 쓰는 것, 오래된 음식까지 다 버렸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도 했다. 바닥도 쓸고 물걸레질을 했다. 벙커룸도 얻었다. 마침 방 하나가 남았다.
제시 익스프레스에 전화해 내일 뉴욕행 버스를 예약했다. 아침 6시 버스를 타려면 5시까지 맥도날드에 가 있어야 한다. 걸어가도 되고, 짐이 있으니 택시를 불러도 된다. 그때까지 트럭 수리가 안 끝나면 열쇠를 맡기고 갈 생각이다.
이번에 집에 가면 아이들 여권 신청과 2018년 세금 보고가 주된 용무다. 애들 학교 때문에 토요일에만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토요일은 모두 예약이 찼다. 3월 30일에만 한 곳에서 가능했다. 일단 예약은 해뒀다. 자마이카 우체국은 예약 없이 워크인이라 오는 토요일에 시도해보기로 했다. 몹시 복잡할 것이다
서류 준비
간밤에 벙커룸에서 늦도록 유투브를 보며 리즈 오퍼레이터에 대해 공부했다. 다음 달이면 회사에 취직한 지도 일년이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나갈 시기다.
전화 소리에 깼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였다. 트랙터샵으로 수리하러 오라고 했다. 가이암을 수리창에 들여놓고 벙커룸으로 와 짐을 챙겼다.
새벽 4시 30분, 더 지체할 수 없다. 정비사에게 트럭키를 맡겨 놓고 뒤를 부탁했다. Lyft로 택시를 불렀다. 새벽이라 꽤 먼 거리에서 왔다. 오는 데 18분가량 걸렸다. 다행히 약속 장소인 맥도날드에 5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앗! 맥도날드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안에 사람은 있는데 6시에 연다는 쪽지가 문에 붙어 있다. 추운데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길 건너편 주유소는 문을 열어 건너갈까 하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그냥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나 밴 승합차가 왔다. 이후로 몇 곳을 더 들러 손님을 태우고 뉴욕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승객은 적었다. 요금이 올랐는지 25달러를 달라고 했다. 전에는 20달러였는데. 기사마다 다르게 받나? 기사와 승객들은 내내 스페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건너 지하철역에 내렸다. A트레인을 타고 내려가 42가에서 7트레인으로 환승했다. 플러싱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거의 6주만이다. OTL 드라이버는 집에 자주 못 간다. 6주보다 짧은 간격으로 집에 가면 돈을 못 번다는 얘기도 있다. 어제 유투브에서 본 프라임 드라이버는 3개월 일하고 열흘 동안 집에 간다고 했다.
아내와 영사관으로 차를 몰았다. 아이들 여권 신청에 필요한 서류 공증(公證)을 받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승용차로 뉴욕 시내를 운전하니 예전 택시 운전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빈 택시는 별로 안 보였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그간 쌓인 우편물을 정리했다. 우편물 중에는 TLC의 항소가 기각됐다는 편지도 있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읽지도 않을 책을 몇 권 빌렸다. 나보다는 아내와 딸아이가 봤으면 하는 책들이다. 저녁에는 아이들 여권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필요 문서를 챙겼다. 세금 보고 서류를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트럭운전은 W-2라 간단한데, 작년 1월과 2월 택시 운전은 자영업이라 준비할 서류가 많다. 그런데 옆에서 아내가 보고 있는 드라마 내 딸 금사월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간다.
집에서 터미널로 복귀
집에 잘 다녀왔다. 계획했던 일은 못 이뤘다. 대신 푹 쉬고 왔다.
3월 9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했다. 자마이카 우체국은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니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따님이 치장하느라 늦어졌다. 평소에도 동작이 굼뜬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이미 늦었으니 가지 말자고 했지만, 아내는 그래도 가보자고 했다. 11시 정도에 자메이카 우체국에 도착했다. 긴 줄이 늘어섰다. 맨 마지막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니 종이를 보여주며 자기까지가 마감이라 했다. 이 사람들은 우체국이 문 열기 적어도 한 시간 전부터 밖에서 줄 서서 기다렸을 것이다. 오늘은 텄다. 아내가 서두르는 이유는 딸 아이가 18살이 되는 6월 전에 여권 신청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별도의 귀화 신청 절차 없이 부모의 국적을 따라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세 살 어린 아들은 몇 년 더 여유가 있다.
2018년 세금 보고도 못 했다. 막장 드라마의 중독성은 대단하다. 아내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나도 옆에서 같이 욕하며 보고 있다. 그러다 시간을 놓쳤다. 4월 15일이 마감이니 다음번 집에 왔을 때 하면 된다.
식구들과 따로 외식하진 않았지만, 집 근처 맛있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다 먹거나, 스시를 주문하거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말은 안 해도 오랜만에 집에 온 가장의 존재로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영화 가버나움을 봤다. 잘 만들었다. 레바논에서 신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들은 시리아 난민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인물들의 연기가 뛰어났다. 주인공 소년의 마지막 얼굴 클로즈업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일요일도 브런치를 먹고 식곤증(食困症)에 낮잠을 잤다. 이상하게 집에 오면 늘어진다. 이러니 집에서는 일을 못 한다. 풍수가 안 좋나? 올가을에는 이사 가야겠다. 트럭 주차가 가능한 곳으로.
딸아이에게 선물을 받았다. 방석이다. 운전할 때 쓰라고 받았는데, 명상용으로 딱이다. 선물값 겸해서 아이들에게 두둑한 용돈을 주고 왔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그때그때 필요하면 용돈을 주고 있다. 내가 봐도 액수가 너무 적다. 그래도 큰 불평 없는 아이들이 착하다.
저녁 먹고 짐을 챙겼다. 그동안 주문한 물건을 가방에 담았다. 그중엔 CB 라디오 세트, 액션캠 세트, 침대용 노트북 책상 등이 있다. 밤 11시 버스다. 9시에 아내가 운전해 맨해튼으로 출발했다. 아내가 맨해튼까지 태워 준 것은 처음이다. 아내는 맨해튼 운전을 무서워한다. 지금까지 실수로 다리를 넘어간 것 외에는 맨해튼에 운전해서 간 적이 없다. 이제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맨해튼은 일방통행이 대부분이고 회전금지 교차로도 많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어려워한다.
10시에 포트 오서리티 터미널 근처에 도착했다. 일요일 밤이라 주차할 공간은 많았다. 터미널 안까지 같이 걸어가 별다방 커피를 마시고 아내는 돌아갔다. 나중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새벽 1시 30분에 스크랜튼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셔틀버스를 부르겠지만 이 새벽에 나 혼자 타고 가자고 버스를 부르는 것은 좀 미안하다. Lyft 택시를 부르니 약 5분 후에 도착했다. 초짜인지 스마트폰 네비 화면을 보고서도 길을 잘못 찾아 내가 뒤에서 방향을 일러줘야 했다.
트랙터샵에 도착해 트럭 열쇠를 받았다. 트럭은 썰렁했다. 히터를 켜니 천천히 온도가 올라갔다. 짐을 정리했고 딸아이가 선물한 방석에 앉아, 침대용 좌탁에 노트북을 올리고 일기를 썼다.
CB 라디오는 설치하지 못했다. 트럭의 CB 라디오 전선이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지난번 주문한 CB는 반품했다. 제품이 문제가 아니었네. 다음 트럭을 받을 때까지 CB 설치는 보류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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