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뉴욕서 인천까지 열네시간 넘는 비행끝에 22일 금요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에 짐을 풀고 페이스북을 여는데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故문인숙(벨라뎃다)님께서
2019년 3월 21일 19시 소천하였습니다.
빈소 : 용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용인명지대역)
발인 : 3월23일(토)08시
장지 : 경기도 포천시 송우리 천보묘원
김명식교수님의 반려(伴侶) 문인숙 사모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몇주간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는데 막상 부음(訃音)을 접하니 가슴이 텅 빈 듯 허허롭고 애달픕니다.
김명식 교수님과 사모님을 알게 된 것은 제가 뉴욕에 온지 얼마 안된 2004년이었습니다. 당시 동아대 회화과에 재직중인 김교수님은 연구교수로 뉴욕에 1년간 머물렀고 어느날 제가 근무하는 신문사로 당신의 전시회 자료를 직접 들고 오셨더랬죠. 그때나 지금이나 트레이드마크인 은발(銀髮)의 교수님이 매고온 배낭에서 자료를 꺼내 설명해주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속에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김교수님은 한국에선 90년대 ‘고데기 시리즈’로 잘 알려졌는데, 고데기는 강동구 고덕 지구의 옛이름으로 당신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고데기 시리즈’가 화가인생의 1막이었다면 미국에서 탄생한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김교수님의 국제적 명성을 널리 알리는 2막 황금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는 1990년대말 처음 방문한 뉴욕여행에서 모티브를 얻어 2004년 뉴욕에 작업실을 만들면서 탄생한 작품이지요.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뉴욕의 다문화를 대담한 화면구성과 뛰어난 색채감각으로 완성한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인종갈등을 없애고 화합과 소통을 캔버스위에 구현하며 곧 주류 화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5년 1월 뉴욕 57가 5애버뉴의 리즈갤러리 ‘아시안 3인전’에 초대되는 결실로 이어졌고 같은해 2월 로쉬코스카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등 그 해만 뉴욕 마이애미 밴쿠버 등지에서 5차례의 전시를 통해 미주 화단에 깊이 각인(刻印)되었습니다.
또한 도쿄, 상해, 항주, 마드리드, 시드니 등 해외 각지에서 많은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고 2010년에는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라는 타이틀로 일본 열도 7개 화랑을 돌며 순회전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또 2014년엔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0주년 기념전’을 맨해튼 등 뉴욕에서만 3차례 열고 동아대 교수 및 제자들과 함께 하는 그룹전 ‘Finding Identity’도 개최되는 등의 활동덕분에 저와의 인연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과 친해져 가족들도 교류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소탈하고 격의없는 성품도 그랬지만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사모님이 참 좋았습니다. 두분이 얼마나 살갑게 해주셨는지 교수님이 귀국하신 후에 아내와 아이가 교수님의 부산 집에 놀러가기도 했으니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왜 이렇게 선하고 좋으신 분을 일찍 데려가는걸까요...2년전 사모님의 급작스런 병환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워낙 건강하신 분이었으니까요. 3기라 해도 병마(病魔)를 꼭 극복하실걸로 생각했습니다. 그 전해 동아대를 정년 퇴임한 교수님이 용인에 그림같은 전원주택을 지은 것도 사모님과 함께 노후를 행복하게 지낼 보금자리를 만드신게 아닌가요.
부음 내용을 살펴보니 23일 오전 8시 용인세브란스 병원 발인입니다. 다음날 새벽에만 출발하면 조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산에서 두시간 이상 걸리는데다 교통 문제도 예측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장지(葬地)인 포천의 천보묘원에 바로 가기로 했습니다.
코스를 살펴보니 마을버스-의정부행 시외버스-지하철-마을버스 순으로 타고가면 됩니다. 순서대로 잘 와서 덕정역에서 앙증맞은 78번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주공 아파트 단지를 요리조리 돌더더니 한가로운 ‘김삿갓’ 고향마을과 1천년 고찰 회암사를 거쳐 산길로 올라가네요. 양주에서 회암을 잇는 고개는 아주 험준했습니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험한 고갯길이 있는 것을 신기해 하자 운전기사 왈 “여기가 투바위고개라고 작은 대관령이에요” 합니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목적지인 포천 송우리 천보묘원에 도착했습니다. 경사도가 45도에 이르는 언덕길을 약 800m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오전 10시반인데 묘원은 적막강산(寂寞江山)입니다. 관리소장실은 닫혀 있어서 순간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뜨끔합니다. 미처 한국전화를 개통할 시간이 없어 그냥 왔는데 교수님께 미리 전화를 드릴걸 후회가 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찾으러 위로 난 길을 따라 산마루까지 올라갔지만 한분의 성묘객만 눈에 띄네요. 오르락 내리락 두어번 하다가 간신히 소장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양지바른 녘, 일하는 분들과 함께 묫자리를 잘 닦아놓았더군요. 9시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드리고 오신다 했다고 합니다. 제가 너무 일찍 온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놓치진 않았으니 일단 안도했습니다. 포천의 산정(山頂) 부근이라 그런지 기온이 꽤 낮습니다.
구름이 짙어집니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작은 알갱이더니 곧 눈이 되어 날립니다. 바람도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집니다. 처마가 있는 한켠에서 몸을 기대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영구차량이 올라옵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말해주듯 초췌한 얼굴로 내린 은발의 교수님이 보이네요. 두 아드님과 며느님, 형님 누님 조카 등 가족분들이 보였습니다.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교수님이 눈을 둥그렇게 뜹니다. 미국에 있는 제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라셨겠죠. 그것도 장지에서 말입니다. 교수님 부부와 뉴욕에서 특별한 인연을 가졌던 조성모 화백의 따뜻한 위로 말씀도 전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인생사지만 인연의 힘으로 만난 사람과의 별리(別離)는 늘 처연(悽然)하여 힘들기만 합니다. 지난해 봄,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왔을 때 용인 김교수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청주의 치유원에서 요양중이던 사모님도 일부러 우리를 보기 위해 오셨더랬죠. 물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치료를 받고 있다고 환하게 웃으시는 사모님을 뵐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계절을 잊은 함박눈은 영원의 길로 가시는 사모님을 배웅하는 듯 합니다. 잠시 눈이 그치며 운구(運柩)가 시작됐습니다. 영정속의 고인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네요. 지난해 4월 치유원의 성당 부활대축일 미사에서 사회를 보게 되어 기뻐하시던 모습입니다.
천보묘원은 사모님의 선친께서 마련하신 가족묘가 있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바로 그 옆자리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분들이 모여 마지막 축성기도와 하관 기도를 나지막하게 드립니다.
흙을 정성껏 다지고 장남이 어머님 영정을 향해 두 번 절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참았던 눈물을 끝내 흘리시는 교수님 모습에 저도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사모님, 지난 해 가을 조성모 화백과 한국에 왔을 때 치유원에 계셔서 미처 뵙지는 못했지만 반갑게 맞으시던 전화속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듯 합니다. 이제 모든 시름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모님과 함께 하였던 인연, 감사드립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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