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품질은 포도 품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개성에 크게 지배된다. 결국 품종이 같다면 재배지가 다르더라도 품질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품종이라도 수세기 동안 어떤 곳에서 재배된 특정 품종은 자연 돌연변이에 의해서 클론(Clone)이 탄생한다. 즉 품종이 또 다시 분류된다는 말이다.
클론이 많이 발생하는 포도는 대개 DNA구조가 불안정하다. 피노누아나 람부르스코가 대표적이며 카베르네 소비뇽도 엄청난 숫자의 클론이 있다. 이탈리아의 몬탈치노(Montalcino)마을에서 재배하는 브루넬로(Brunello)도 산지오베제(Sangiovese)의 클론 품종이다. 이렇게 품종의 변이가 계속되면서 클론이 생기다 보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아예 새로운 특성을 가진 품종이 탄생하기도 한다. 피노 그리스(Pinot Gris)와 피노 블랑(Pinot Blanc)이 그런 새로운 품종들로 둘 다 피노누아의 돌연변이 클론(Mutant Clone)으로 분류된다.
포도알에는 씨가 들어있지만 포도나무는 씨로 번식시키지 않는다. 씨를 심기보다는 포도줄기를 자른 꺽꽂이로 번식시키는 방법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꺽꽂이로 번식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와인 생산자가 재배하는 포도의 특성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포도는 바람을 타고 자체적으로 수분(自家受粉)을 할 수 있지만 다른 포도나무의 꽃가루가 달라붙어서 수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1대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여러 대가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새로운 특성을 가진 포도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포도의 맛과 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하나의 생명체에 들어있는 DNA가 다양해지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형질을 갖게 해 주므로 생물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와인 생산자에겐 달가운 일이 아니다. 품종에 맞게 재배법과 양조법을 완성했는데 포도 특성이 자꾸 바뀌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재배법과 양조법을 다시 연구해야 하는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와인을 만들 때 기대하는 맛과 향을 맞추기 힘들고 품질 유지를 하기도 어려워진다. 예를 들자면 탄닌이 많은 와인을 만들고 싶어서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은 후에 포도 씨앗으로 계속 번식을 시켰더니 어느새 다른 품종의 DNA가 섞여 들어가서 몇 대가 지나지 않아 포도의 탄닌이 많이 줄어드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서 자라난 가지를 잘라서 꺽꽂이로 번식시키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가 있다. 새로 심은 가지에서 열리는 포도의 특성은 모체가 되는 포도나무의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생산자는 포도의 특성이 변할까 걱정할 필요없이 항상 균일한 맛과 향을 가진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세포의 유전단위가 그 기능을 급격히 변경시킬 때 나타나는데 자연 상태에서의 돌연변이는 임의적이며 보통 식물체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 드물게 나타나는 유용한 변이를 놓치지 않고 선발하면서 불리한 변이나 바이러스에 걸린 그루는 도태시키고 언제나 가능한 최선의 개체로부터 품종을 유지, 개량시키는 것을 영양계 선발(Clonal Selection)이라고 하며 품종개량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품종이 결정되면 어떤 클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시 한번 와인의 품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특히 피노누아는 변종이 많아서 부르고뉴에만 약 150개의 다른 클론이 있는데 알맹이 크기, 색깔의 강약, 타닌 함량 등이 다양하여 와인 생산자의 결정과 최종 와인의 품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품종의 선택보다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클론의 선택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경도 민족의 구분도 사라진지 오래된 현재의 인간들 세상에선 선민사상도 타종교를 배타하는 이기주의도 모두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선택받지 못하면 멸종한다. 영원한 단일종의 영속은 없다. 나를 열고 변화해야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독선적인 이기주의는 위험하다.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며 발전해 가는 것, 나에게 주어진 삶의 한 봉우리를 넘어가며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우리 생명의 존엄과 가치가 거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피터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