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함께 하는 바느질’ 눈길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 莫逐有緣(막축유연)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 勿住空忍(물주공인)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 一種平懷(일종평회)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 泯然自盡(민연자진)
질박한 삼베 바탕에 한땀씩 한땀씩 메꾸어나가는 작업, 한 생각 들어올 때 들숨을 바라보고, 또 한 생각 놓으며 날숨을 보내는 ‘생각 쉬기’ 연습을 하다보면 바느질 작업이 수행(修行)을 닮아 있음을 보게 한다.
‘바느질 예인’ 이성숙 작가가 <선과 함께 하는 바느질>(도서출판 도반)을 출간했다. 바느질은 옷을 지어입기 시작한 인류의 문명과 같이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바느질은 특히 한복의 역사와 함께 대표적인 규방문화(閨房文化)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성숙 작가(불명 보현성)의 작업은 불교의 선(禪)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앞서 소개한 선어는 삼조승찬(三祖僧璨) 스님의 ‘신심명’ 중 일부를 ‘세계일화世界一花 Ⅲ’ 작품과 함께 수록한 것이다.
<선과 함께 하는 바느질>엔 모두 33개의 작품이 삼조승찬 스님의 선어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도의 이치를 통렬히 깨우는 지도무난(至道無難)의 선어는 작품 ‘염화미소’에, 부질없는 말과 생각을 끊는 절언절려(絶言絶慮)의 선어는 ‘Lotus Bouquet’에 담겨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정교함과 화려한 색감도 눈부시지만 고요속에 침잠한 명상과 참선의 시간도 만나게 한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과 ‘기억’, ‘봄날’의 생동감과 은은한 들꽃시리즈, ‘군불견君不見Ⅰ’ ‘카르마karma’ ‘옴’ ‘달마達摩:無’의 불교적 울림도 눈길을 끈다.
그이가 바느질 공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느 해 안국동 바느질 공방 앞을 지나던 것이 계기였다. 진열창 너머로 보이던 작품들의 질박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에 매료(魅了)되고 말았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일이 반복의 일상에서 집중했더니 문득 흐름이 느려지고 시간과 공간이 모습을 달리 하는 순간들이 보이게 되었단다.
“단전(丹田)에 마음을 두고 고요히 가라앉은 호흡, 바느질의 반복만으로 채워지는, 어쩌면 지루할수도 있는 차분한 공간을 건너가면 내면은 비워지고 생각도 사라져 바늘귀에 실 따라오는 소리만 들리더군요.”
보현성 작가는 바느질 작업을 우리 전통을 멀리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한국 불교를 알리는 업그레이드 된 상품으로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 바느질 작업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 규방 문화를 살펴보고 세계 각국 여성들의 바느질 작품들과 관련된 문화를 깊이 들여다본 것도 그때문이다.
“전통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공감이 되거나, 세계화 시대에 적절한 불교문화적 상품으로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나름의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탈바꿈을 시도하지 않으면 우리 불교상품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복제(複製)되어 건너오는 마구잡이 수준에 주인 자리를 내주게 될 것만 같았고,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방문 기념이라고 구입하는 상품들을 한국의 진면목으로 오해하는 세태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생각들과 염려 속에서 혼자 계속 시행착오를 해오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군요.”
보현성 작가는 올해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콜라보 작품전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뉴욕을 방문한 보현성 작가와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 책을 어떻게 내게 되었나요
“사실 출발부터 대단한 ‘작품으로서의 뭔가’를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꾸준히 해오다 보니 함께 하여 온 벗들이 그동안의 작품을 한 번 쯤은 묶어서 나름의 맺음을 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성원과 가족들의 격려도 막상 허언(虛言)만은 아닌듯 하여 오랜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최소한의 작품과 소품만을 엄선해서 한 번 책으로 엮어보게 되었습니다.”
- 작품과 함께 수록한 선어도 인상적입니다
“해인총림의 원융 스님께서 2008년 7월에 <삼조 승찬>스님의 <신심명>을 편역, <신심명 · 증도가>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는데 그 책의 원문 인용을 원융 스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책으로 나오고 나니 의도하지 않았으나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듣게 되었네요. 이왕 어렵게 작품집이라고 묶어 보고 나니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보아주시는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위에 기획된 작품전을 다소 난관(難關)이 있더라도 한국의 규방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기회로 삼고 또 한단계 up-grade를 이룰 수 있는 계기로 살리고자 합니다.”
- 미국 전시를 소개해주세요
“최근 이런저런 인연이 모아져 작품 컨셉이 서로 어울려지는 작가님 한 분과 미동부에서 콜라보 작품전을 올리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텍스타일 뮤지엄에서 2020년 봄에 하기로 준비하던중 급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가을로 전시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 다른 계획도 있나요
“볼티모어의 작품전 오프닝과 함께 <禪과 함께 하는 바느질>의 영문판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소품을 위주로 한 책상달력 크기의 calendar를 매년 제작 판매하고, 소품을 중심으로 우리의 한국 불교 상품을 현대화/미래화 감각으로 방향 잡고 디지털 세대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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