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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특파원] 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페. 우르진룬데브 초대 주한 몽골 대사, 「새로운 토양(土壤) 위에서 싹을 틔운 상호(相互) 협력 관계(協力 關係)」라는 제목의 기조 연설 이어가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kVXx6g.gif 기사입력

 2020/10/10 [14:21]

【UB(Mongolia)=GW Biz News】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10월 8일 목요일, 몽골 외교부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이 몽골 외교부 청사 1층 주브실출 회의실에서 오후 1시 30분부터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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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심포지엄 현장에는 이여홍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 정관식 공사, 이은옥 참사관이 자리를 같이했으며, 기조 연설은 페. 우르진룬데브 초대 주한 몽골 대사가 맡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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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이여홍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가 인사말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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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어로 진행되고, 현장에 몽한 동시 통역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된 「새로운 토양(土壤) 위에서 싹을 틔운 상호(相互) 협력 관계(協力 關係)」라는 제목의 페. 우르진룬데브 초대 주한 몽골 대사의 기조 연설 요점을 아래와 같이 한국어 버전 보도 기사로 정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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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 연설] 새로운 토양 위에서 싹을 틔운 상호 협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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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 우르진룬데브 초대 주한 몽골 대사

 

지난 1990년 경오년(庚午年) 말띠 해는 몽골의 사회-정치 분야에서의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변혁이 이뤄지던 한 해였음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회 전반이 요동을 쳤고, 모든 일에 혁신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활성화하던 한 해였습니다. 몽골의 민주적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 속에서 외교 정책도 새로워지고 있었습니다. 몽골 정부는 이념과 사회적 구조로 초래된 서로 다름(=차이)에 대한 일방주의(一方主義=unilateralism)를 버리고, 세계 어느 나라와도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와 상호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결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첫 번째가 대한민국과의 한몽 수교 결단이었습니다. 우리의 주도적 제안(=이니셔티브)은 대한민국 정부의 환영을 받았고, 대한민국 정부는 발 빠른 행보를 보여 한몽 수교 협상 전담 대한민국 대표단을 울란바토르에 파견함으로써 한몽 수교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한몽 두 나라 사이의 공식 회담은 1990년 3 월 26일 오전에 본 외교부 청사 2층 콘퍼런스 홀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외교 문서 서명으로 오후에 마무리가 됐습니다. 몽골과 대한민국의 근대 관계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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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그 당시 몽골 국민들은 새로운 사안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한몽 수교를 환영했습니다. 당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평양 쪽 북한 인사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북한 동지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옛 친구를 버리지는 않는다"라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비록 대한민국과 수교를 하긴 했지만 몽골과 북한 사이에 이어져 온 전통 관계 및 상호 협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고, 북몽 관계의 수준이 결코 하향 곡선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당시 몽골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30년 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한몽 수교 당시 두 나라의 국가 원수들, 외교부 장관들, 일본 도쿄 주재 대사들 등 많은 분들의 기여와 공헌은 지대했습니다. 한몽 두 나라 회담을 주도하고 문서에 서명했던 것입니다. 몽골의 욘돈 외교부 제1 차관과 대한민국의 이기주(李祺周, 1936 ~ ) 외교부 차관보의 공헌은 지금 이 시각에도 언급 없이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지대했습니다. 이 두 분은 한몽 수교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한 주역들이었습니다. 한몽 수교 이전에 한몽 두 나라 사이의 상호 협력이라는 것이 사실상 전혀 없었습니다. 상호 관심이나 상호 협력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상호 관심과 필요성은 우리는 물론 대한민국에도 있었습니다. 몽골 상공을 통과하는 항공기 운항을 원했고, 몽골과 사업을 진행하며,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국제 회의, 예술 공연 그리고 체육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단을 파견하고자 하는 의사를 대한민국 측에서는 줄곧 표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국제 관계 "냉전"으로 인해 몽골은 대한민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몽골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는 북한의 영향력도 대한민국의 제안을 꺼려하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한몽 두 나라가 공통으로 추구했던 인류공영(人類共榮)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돼,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긴밀한 동반자가 됐습니다. 한몽 관계가 이토록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한몽 두 나라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1990년대 초반 민주주의 발전의 길에 올라선 몽골은 정치, 경제, 재정적 지원이 풍부한 동서양의 선진 국가들과 동반자 관계를 증진하고자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당시 일본과 미국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몽골과 중국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긴 했으나 중국은 몽골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소련은 우리를 돕기는커녕 자국민 챙기기에도 어렵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한반도 내의 남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사회주의 국가들과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국제 무대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며, 시장을 확대하고자 "북방 정책(北方政策=독일어 Nordpolitik=노르트폴리티크)"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급진적인 개방, 개혁에 나선 몽골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몽골의 민주주의 변혁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북방 정책"의 이런 지향점과도 부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관계 발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관심도 우리보다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호 관심으로 인해, 한몽 수교가 이뤄진 그 해 여름에 대한민국 측은 울란바토르에서 대사관을 개설했고, 이듬해 봄에는 우리가 서울에 몽골 대사관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상호주의에 입각한 두 대사관이 각각 울란바토르와 서울에 개설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정치, 무역, 경제, 문화, 교육 및 관광 교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로써 한몽 두 나라 국민들의 비즈니스와 개인적 업무로 인한 상호 왕래가 훨씬 간편해지게 됐습니다. 한몽 수교가 단행됐던 그 해 봄, 몽골의 역사, 문화를 알리기 위한 몽골의 예술, 문화, 종교 대표단의 서울 방문이 서울의 초청으로 성사됐습니다. 몽골로서는 자국의 홍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 당시 몽골은 그 많은 서울 방문에 나서는 몽골 인사들의 비용을 감당할 만한 재정적 능력이 미약했으나 최서면(崔書勉) 선생(1928 ~ 2020)이 그 행사를 주최하고 모든 비용을 지원해 준 바 있습니다. 한편, 몽골 정부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의 외교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10여개 기업 등의 경제 분야, 경영 분야 대표들이 몽골 방문에 나서 무역, 경제 상호 협력에 관한 다양한 상호 의견을 교환했고, 몽골 시장 현황 파악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인 한몽 상호 협력은 이렇게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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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런 상호 협력의 정치적, 법적 기반이 마련되고 활성화 하는 데에는 1991년 3월에 이뤄진 체. 곰보수렌(Ts. Gombosuren) 몽골 외교부 장관의 한국 방문, 같은 해 7월에 이뤄진 노태우(盧泰愚, 1932 ~ ) 대통령의 특사인 김종휘(金宗輝)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1935 ~ )의 몽골 방문, 또한 10월에 이뤄진 페. 오치르바트(П. Очирбат,1942 ~ ) 몽골 초대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몽골과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은 한몽 두 나라의 관계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현대 국제 관계 원칙에 따라 강화하기로 합의했고, 경제, 과학-기술 분야의 상호 협력 협정, 투자 촉진 및 보호 협정, 대한민국 외교부 산하 KOICA 한국청년봉사단(KYV=Korea Youth Volunteers) 몽골 파견과 관련한 문서 등에 서명을 완료했습니다. 1990년부터 199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몽골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어 1990년과 1991년 동절기에 울란바토르 시민들은 자주 발생하는 정전(停電) 사태를 겪으면서 힘겨운 겨울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요컨대, 체제 전환의 경제적 어려움을 몽골 국민들 스스로 극복하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기에 몽골은 친구들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체. 곰보수렌(Ts. Gombosuren) 몽골 외교부 장관이 한국 방문에 나서 몽골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프로그램과 장기 저리 차관 문제로 한국 측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대한민국 측과의 공감대를 도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몇 달 뒤, 김종휘(金宗輝)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 비서관은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서 몽골을 방문해 페. 오치르바트 몽골 대통령에게 몽골의 민주주의에 대한 노태우 대통령의 심정적 지지 의사를 전하고, 아울러 능력껏 몽골 지원에 나서라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알렸습니다. 다시 그 몇 달 뒤 이뤄진 페. 오치르바트 몽골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한몽 관계에서 신기원을 이루는 중요한 분수령이었습니다. 한몽 두 대통령은 몽골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21세기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최대한 확대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라 한몽 관계의 원칙과 향후 방향을 반영한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몽 두 나라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 문서들이 작성됐습니다. 한몽 두 나라 사이에 개시된 이런 대화는 단기간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지난 30년 동안 정치적 회담의 포괄적인 메커니즘이 만들어졌으며, 상호 이해와 신뢰는 두 나라 사이의 대세(大勢)가 됐습니다. 한몽 고위급 회담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됐고, 1990년 이래 4명의 몽골 대통령과 4명의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으며, 4명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3명의 국무총리가 몽골을 방문했습니다. 한몽 두 나라의 국회의장들도 상호 교차 방문을 실현했습니다. 이러한 방문을 통해서 한몽 두 나라 관계의 수준이 상향 조정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상호 보완, 상호 협력을 발전시켜, 2006년에는 「선린우호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됐고, 2011년부터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 수준에서 상호 협력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한몽 두 나라 외교부 사이의 정책 협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 회담의 일환으로 한몽 두 나라 국방부 장차관(長次官)들이 상호 교차 방문을 이어가며 두 나라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측은 몽골의 연례 군사 훈련인 "칸퀘스트(Khaan Quest)" 군사 훈련 참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몽 두 나라는 지역 문제, 동북 아시아 안정과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울란바토르 대화(UB Dialogue)」에 대한민국 대표단이 정기적으로 참여 중에 있습니다. 두 나라 관계와 상호 협력의 법적인 장치와 제도가 마련됐습니다. 법적인 효력이 여러 다양한 계약, 협정, 문서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몽골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미화 2억 3천만여 달러의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원조는 몽골의 병원, 시골 학교에 대한 전자 장비 공급과 공무원 역량 구축, 기획, 은행, 재정 분야 지원, 타당성 조사 개발, 소규모 프로젝트 등에 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데 활용됐습니다. 몽골 할힌골 지역에 미화 400만 달러 상당의 가축-작물 시범 농장이 세워졌으며, 이 농장 프로젝트가 전면 가동돼 최대로 운영되는 경우에 최우수 품종의 현지 우유, 육우(肉牛), 식량 및 사료 식물 생산을 통해 몽골 동부 3개 아이마그의 수요량 충족이 가능하게 됩니다.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일환으로 1992년부터 대한민국 외교부 산하 KOICA의 한국 봉사단이 몽골에 파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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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국 봉사단이 몽골을 돕고자 하는 자발적 의지로 헌신하며, 몽골의 도시, 시골 어린이들,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또한 자신들도 몽골의 삶과 생활 방식을 체험하는 등 한몽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서로 배우면서 친밀해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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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스크린에 뜬 옛날 사진들은 참석자들의 기억을 한몽 수교 초창기인 1990년대 초반의 훈훈한 추억으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미화 7억 7천만 달러의 장기 저리 차관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 차관(借款)은 보건 분야의 물질 기반 강화, 지역 에너지 공급 개선, 도시 간의 여객 수송 차량 현대화, 지역 통신망 개선, 정부의 통신 분야 수준 향상, 대기 오염, 환경 오염 줄이기, 몽골 국민들의 생활의 질 개선 등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19개의 프로젝트에 활용됐습니다. 재정적 자립이 힘겨운 상황에서 장기 저리 차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실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프로젝트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일회용 주사기-바늘 프로젝트는 질병과 감염의 확산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시행의 결과로 B형, C형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문을 열게 된 의료 진단 센터가 능력껏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국에서 다양한 의료 서비스 혜택을 입을 수 있으며 외화 유출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관의 활용이 전반적으로 다 합리적이고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달란자드가드(Dalanzadgad) 화력 발전소가 완공이 되긴 했으나, 운영이 수월하지 않고, 수년 동안 국가 예산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이 상당이 커서 한동안 말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상호 협력 관계에서 쓴 맛을 보면서 체득한 하나의 산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솔롱고(Solongo)-1, 솔롱고(Solongo)-2, 동네 그리고 10개의 아이마그의 화력 발전소 기능 강화 프로젝트, 그리고 대기와 환경에 무해한 장비 설치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몽골과 대한민국 사이의 무역이 그 동안 미화 2억 달러에서 3억 달러 수준(과거 30년 간의 평균 수치임)에서 이루어졌고, 한국 투자는 미화 5억 달러를 이미 넘었습니다. 이 두 수치 모두 한몽 두 나라의 능력에 못 미치는 초라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수출을 많이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며 게다가 수출과 수입의 격차를 줄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몽골의 수출 측면에서 보면 원자재(몰리브데넘, 광석 정광 등)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시장 가격 변동 가능성으로 인해 수출과 수입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안입니다. 몽골과 대한민국은 교육, 문화, 과학, 보건, 관광, 노동 시장, 인문 등의 여러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상호 협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자금이나 기업 자금, 장학금, 학교 간의 교류를 포함한 많은 지원으로 수천 명의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 유학했고, 지금 몽골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8,000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대학과 어학원에서 유학 중에 있기에, 몽골의 지적 자산(知的 資産)를 확대해 나가는 데에는 한국 국민들의 도움이 크다고 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몽골학 연구가 되살아나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몽 두 나라 학자들이 역사, 고고학 관련 여러 프로젝트들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몽골 여러 대학과 과학원에서 한국인들이 몽골어, 문학, 역사, 외교 관련 강의들을 수강하고 수십 편의 논문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에 한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정말 그런 평가가 나올 만합니다. 한국 음악, K-pop, 드라마, 한국 음식은 몽골 국민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몽골 현지의 20여개의 대학에 한국어 및 한국학과가 개설(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생 수는 대략 2,000 여명 정도임)돼 있고, 15개 정도의 초중고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진행(4,000 여명의 초중고교생이 한국어 학습 중임)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몽골의 3개 대학에는 대한민국 정부 지원으로 한국문화와 한국어 보급에 나선 세종학당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몽 두 나라 정부가 한국어와 문화를 열심히 배운 몽골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며,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필요한 조치를 단행할 시기가 됐습니다. 이렇게 돼야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학습한 자신에 대해 후회나 실망감을 갖기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몽 두 나라 정부의 관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라고 사료됩니다. 한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또한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 덕분에 건강을 되찾은 수십여 명의 몽골 국민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아산 병원, 세브란스 병원, 성애 병원 등에서는 몽골의 수십 명의 의사와 의료진에게 현대적 진단 및 치료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습니다. 한국 의료진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몽골 의사들이 자국에서 간(肝) 및 신장(腎腸) 이식 수술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종자 이식 기술도 한국 전문가들의 지원으로 몽골 정착화 작업 진행의 성과가 좋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한몽 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몽골 국민들에게 혜택이 많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몽골 국민들은 수긍할 것입니다. 일찍이 1990년대 중반부터 몽골 국민들이 한국의 공장, 농촌,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34,874 명의 몽골 국민들이 계약에 근거해 한국 내에서의 노동을 개시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근로 계약에 의거해 일하고 있는 5,000여 명의 몽골 국민들이 체류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 계약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보다는 개인적으로 일하는 몽골 국민들이 더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관광 사증(査證)을 발급 받아 한국에 입국한 뒤 만료 기간 전의 복귀 기한에 맞춰 몽골로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말 17,233명에 육박하는 이 사람들은 사실 잘 살아 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긴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국회, 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 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수만 명의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몽골과 대한민국의 관계 속에서 몽골 국민들의 문화, 음식, 의복, 사회 발전, 공공 서비스에 도입된 새롭고 좋은 서비스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대중 교통에 전자 카드를 활용함으로써 교통 분야에서의 큰 진전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종류의 여러 가지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가 몽골에 서서히 유입되고 있습니다. 몽골 국민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일반적인 이양 방식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몽골 시장에 이런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돈을 대어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러한 서비스와 문화를 몽골에 도입하고 정착시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최첨단 서비스와 문화를 꼽으라면 한국의 유통 체인 씨유(CU)(=24 시간 체인점), 이마트(Emart), 탐앤탐스(Tom n Toms), 카페베네(Caffebene), 씨제이(CJ) 그룹의 뚜레쥬르(Tous Les Jours)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신속하고, 질 좋은 서비스가 도입됨으로써 국민들의 소비가 혁신적으로 바뀌면서 몽골에 새로운 시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 중 그 누구도 이처럼 광범위하고, 몽골의 거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혜택을 입는,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한 상호 협력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지난 30년 동안 몽골과 대한민국은 공동의 노력으로 시간의 흘러가도 결코 변하지 않았던 강력한 관계 기반을 구축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몽 두 나라 관계의 경제적 기반은 아직 미약합니다. 이것은 한몽 관계에서 제일 취약한 부분입니다. 몽골 국민들은 한몽 상호 협력에서 많은 혜택을 입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소 상대적인 개념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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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외교부 주최 한몽 수교 30돌 기념 심포지엄 현장.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심포지엄 개막 직전에 30돌 기념 사진들을 둘러 보았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향후 우리가 힘을 합쳐 한몽 관계와 상호 협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만들어 놓은 가치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와 향후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받아들일 건 절실히 받아들이고, 버릴 건 과감히 버리는 지혜가 담긴 발언으로 부디 경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역과 투자는 한몽 두 나라의 능력과 잠재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수출과 수입의 격차를 줄이고, 균형을 바로잡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의 농업, 광업 원자재를 가공해 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지 않은 채 수출을 늘리고, 균형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지난 몇 년 동안의 관계에서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투자, 탁월한 기술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해 광산, 축산 분야의 원자재 가공 공장의 공동 건설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에서 대한민국의 이해 관계를 확실하게 해 주고, 활용 가능성의 기회를 포착하게 해 주고, 정책으로 추진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여러 대기업과 국영 기업이 몽골 시장에 진출하게 만들 수 있었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우리는 놓쳐버린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광업진흥공사, 포스코, 한전 등 10여개의 국영 회사, 민간 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몽골의 광산 개발에 참여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불발로 끝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몽골의 정치적 불안, 법률 구조의 변화, 인프라 시설 개발 미숙, 몽골 국민들의 비전문적인 태도 등에 지쳐 몽골 시장 진출을 회피하게 됐음을 깨달아 신뢰할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여러 대기업이 몽골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몽골 시장을 떠났던 실례가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와 차관(借款)에 대한 정부의 통합적인 정책 추진의 지지부진(遲遲不進)과, 정부 각 부처, 관련 기관들의 미흡(未洽)한 효율성 조사와 기획으로 인해 추진하기에 좋은 프로젝트를 시행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비용도 증가하는 이유가 되어 왔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사증(無査證=무비자=No-entry visa)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만 이것은 오늘이나 내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관광 개발의 일환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연중 특정한 기간 동안만이라도 복수 입국 사증으로 몽골을 방문하도록 만들면,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통해 몽골로 날아올 수 있는 관광객들이 증가하여 수익도 증대할 것입니다. 관광객 수치를 늘리는 것은 긍정적인 투자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몽골에 투자한 한국인들, 기업, 교육, 인도주의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 그들의 가족 구성원들을 위한 쾌적한 근무 환경과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체류 기간을 자주 연장하도록 되어 있는 현재의 관련 규칙이나 규정 변경이 불가피(不可避)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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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 led by Foreign Minister N. Enkhtaivan.     ⓒ Alex E. KANG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kang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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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사입력: 2020/10/10 [14:21] 최종편집: ⓒ GW Biz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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