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과 아산만

 

뉴스로=이계선의 '김재규 복권소설'

 

“각하, 어느 쪽으로 해서 귀경하시렵니까? 온양을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탈까요? 아산만 방조제를 건너 안중쪽으로 나갈까요?”

 

경호실장 차지철이 굽실거리며 물었다.

 

“안중쪽으로 해서 올라가 보는 게 좋겠군. 5년 전에 완공한 아산만방조제가 과연 풍년옥토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 구경하면서 가보자구”

 

대통령의 말이 안중 쪽으로 떨어졌다. 삽교천을 출발한 1호차는 아산만방조제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아산만방조제를 건너자 경기도 땅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퇴미산(堆米山)이 보였다. 해발 400미터 산이다. 퇴미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쌀가마를 수북하게 쌓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퇴미산(堆米山-쌀을 쌓아놓은 산)이라 불렀다. 정월 대보름이면 근처마을 사람들은 퇴미산에 올라 보름달을 향하여 빌고 빌었다.

 

“쌀더미처럼 생긴 퇴미산 신령님, 퇴미산 정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이 근처 사람들이 쌀 부자가 되게 해 주소서”

 

사람들은 퇴미산을 쌀가마를 쌓아주는 축복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 위에 올라 사방어디를 둘러봐도 쌀이 나올만한 구석이 안 보였다. 벼농사를 지을만한 논(水畓)이 없었다. 산 아래로는 야산과 들판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들판 끝에 아산만이 넓고 푸르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농사를 지을수 없는 짠 바닷물이었다. 쌀 한톨 나오지 않는 두메산골 산간지역인 것이다. 그래서 퇴미산 아래 동내이름이 두매리다.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두매리. 원래는 두뫼리 였는 데 시골사람들이 편하게 두매리로 부른 것이다. 박재홍이 <유정천리>에서 부른 “두뫼 산골 내 고향아!” 하는 두뫼리.

 

그런데 1974년에 박정희대통령이 아산만을 막아 동양최대의 평택호(平澤湖)를 만들었다. 몇 년이 지나자 평택호의 짠 바닷물은 달콤한 담수호로 바뀌었다. 평택호에서 끌어올린 담수호물은 수로를 타고 사방 100리로 퍼져나갔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풍년옥답이 생겨났다. 산 밑으로 들판처럼 퍼져 나가던 야산(野山) 만야(萬野)는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옥답이 돼버렸다. 퇴미산의 기적이 이뤄진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면사소로 달려가 동내이름을 고쳐달라고 떼를 썼다.

 

“우리 마을은 이제 두매리가 아닙니다. 산간지대가 변하여 옥답곡창지대로 되고 전기가 들어오는 문화마을이 됐습니다. 장수리로 바꾸렵니다. 살기 좋아 무병장수 장수리(長壽里), 농수(農水)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나가서 장수리(長水里), 장수리로 할랍니다. 장수리로 바꿔주십시오”

 

그래서 지금은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장수리다.

 

퇴미산이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산 아래로는 잘 익은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추수하는 곳도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을 베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만산만야, 황금 물결치는 대풍평야! 10월의 가을이 아름답구나”

 

대통령은 시를 읊듯 중얼거렸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5천년 묵은 보릿고개를 없애겠다고 5.16혁명을 거사하고 18년이 지났다. 고속도로를 만들고 공업혁명을 일으켜 수출입국(輸出立國)을 세웠다. 그래도 여전히 쌀이 부족했다. 농토를 늘리자. 5년 전 아산만을 막아 동양최대의 담수호 평택호(平澤湖)를 만들었다. 평택호에서 퍼 올린 물줄기는 사방 백리로 뻗어나갔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야산도 산허리도 물이 가득한 논으로 바꿔졌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미전벽해(米田碧海)가 된 것이다.

 

 

123.jpg

대한뉴스 자료 화면

 

 

자신을 얻은 대통령은 5년 후에 삽교천방조제를 만들었다. 삽교천은 아산만 방조제 남서쪽 충청도 당진에 있다. 1979년 10월 26일. 오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다. 삽교천 방조제공사로 삽교천사방에도 거대한 쌀 생산단지가 생겨난다. 후일 정주영은 이곳에 세계최대의 쌀 농장 현대농장을 만들었다. 시골사람들은 현대농장을 현대 쌀 공장 이라고 불렀다. 쌀이 무진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정주영은 대단한 양반이야.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자동차공장, 배를 만들어 내는 조선소공장, 철판을 만들어 내는 철강공장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쌀공장까지 만들어 내다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은 갯벌천국이다. 갯벌은 땅속에 있는 흙 중에 가장 영양가가 풍부한 흙이다. 조개와 꽃게가 맛있는 건 그들이 갯벌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갯벌을 개간한 논에서 수확한 쌀은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쌀중의 쌀인 진미(眞米)에 속한다. 네덜란드는 바다를 개간하여 지상천국을 만들지 않았나? 버려진 갯벌을 막으면 농업단지 공업단지 아파트단지가 될 것이다. 우선 논으로 개간하자. 그러면 쌀이 남아돌아갈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쌀 수출국이 된다. 5천년동안 쌀을 수입해먹던 우리가 쌀을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쌀 수출은 자동차 수출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대통령은 머릿속에 계속 그림을 그려나갔다.

 

쌀이 남아돌아가게 되면 아산만 일대를 공업단지로 변형시킨다. 아산만에 대형항구를 만들어 무역대국 중국을 상대하는 관문 역활을 하게 한다. 그러면 서해안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대통령이 구상한대로 아산만은 후일 한국최대의 공업단지가 됐다. 아산만 북쪽은 경기도안중, 남쪽은 충남 아산 당진이다. 아산만 사방 100리는 한국제일의 공업단지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 현대차와 기아차 공장이 들어섰다. 철강회사 제약회사를 비롯하여 생산 공장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박정희정부는 먼저 구미공업단지 울산공업단지 포항공업단지 광양만 옥포공업단지를 조성했다. 아산만 공업단지는 맨 나중이었다. 시작은 나중이었으나 결과는 제일이었다. 만들고 보니 천혜의 공업단지인 것이다. 우선 서울에서 가까웠다. 한 시간 거리다.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대형항구를 만들 수 있다. 바다건너가 바로 중국이다. 최적의 중국무역의 전초기지가 된다. 평택호와 삽교호에서 나오는 담수가 있어 공업용수는 무진장이다. 그러니 한국제일의 공업단지가 될수 밖에. 나중 된 자가 먼저된 것이다. 아산만은 일찍부터 예언된 축복의 땅이었다. 출애급 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것처럼.

 

<계속>

 

* '글로벌웹진' 뉴스로 '이계선의 김재규복권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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