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탄역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들
뉴스로=클레어 함 칼럼니스트
나는 시애틀 미디어아트센터및 필름포럼에서 비디오와 영화 야간강좌를 듣고, 나름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독학이나 다름없는 영화인의 길을 걸어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시애틀영화제에서 <오아시스>의 배우 문소리씨 통역으로 가슴 설레며 영화제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한국과 미국 영화계사이의 교량역할을 주로 해온 것 같다. 여러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및 통역도 맡아왔고, KOTRA와 함께 AFM(아메리칸필름마켓) 한국부스에서도 근무하기도 했다. 주요 경력이라면 아마 미국 영화산업지, The Hollywood Reporter에서 일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로 이사온 후, 최근 세월호 참사이후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정지된 시간>을 제작하여 홍보차 2월 중순 베를린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이미 십년이 넘게 참가한 베를린영화제는 아직도 매번 미로(迷路)처럼 느껴진다. 영화가 상영되는 주요 극장들과 영화를 사고 파는 마켓 건물이야 당연히 뻔하지만, 열흘간 넘쳐나는 영화 상영과 참가 게스트들, 행사, 파티 등등 모든 세부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기엔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 베를린영화제와 EFM(유러피언필름마켓)을 비지니스로 참가하는 영화인들은 하루에 3-4시간 눈을 부치고 일주일간 마라톤을 달리는 마음으로 참가한다. 그래서 항상 끊임없이 시간을 들여다보며 스케줄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EFM이 시작하는 첫 주말은 더욱 그렇다.
개막식날 밤에 도착한 나는, 다음날 아침, 급한대로 치과를 찾았다. 최근, 고맙다며 감사 선물로 받은 한과(韓菓)를 먹다가 크라운이 벗겨져 거액의 치료비가 생길까봐서 당황했는데 마침 베를린에 거주하는 의사 친구가 아는 지인을 소개해주었다. 시리아 출신인 그 치과의사에게 내 친구는 나를 뭐라고 소개했을까 궁금해졌다. '가난한 영화인'? '난민지원활동을 하는 인권활동가'? 친절한 그 의사는 꼭 필요한 재료비 30유로를 제외하고는 무료로 치료해주었던 것이다. 예상할 수 없는 치료비용을 위해 현금을 다 싸들고 갔던 나는 무척 기뻤다. 덕분에 몇백 유로에 가까운 마켓배지를 사서 제대로 된 홍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국제앰네스트 뮌헨지부에서 난민돕기 행사도 하고, 개인적으로 시리아 난민들과 친분을 두며 그들이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 왔다. 내가 항상 주기만 했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뜻밖에 큰 도움을 받았다.
치과 약속을 끝내고, 나는 근처에 사는 시리아 난민 가족을 만나러 갔다. 마켓이 시작하는 첫 날이라 시간이 빠듯해서 이런저런 인간적인 고민도 생겼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 두번밖에 못 만나는터라 마음을 비우고 찾아갔다. 아버지 카멜은 인턴쉽의 마지막날이라 서류정리로 귀가가 늦어져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들이 4명인지라 Kinder Joy 한 박스를 선물로 주었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보느라 다들 행복해서 정신이 없다.
시리아 난민들이 2015년 여름 독일 뮌헨중앙역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www.vimeo.com>
* 시리아 난민 독일 도착 동영상
2015년 여름, 뮌헨 중앙역으로 몇십만 명의 난민들이 도착할때 아침부터 자정이 넘을때까지 많은 현지 시민들이 나와 그들을 환영해주었다. 나도 그 환영대 중 한명이었다. 처음 애인 얀과 함께 역에 나갈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표정의 난민들을 맞으면서 뼈에 사무치게 느꼈을 고단한 삶의 피로감과 우리를 보고 기뻐하는 감정이 온 몸으로 전해져서인지 왠지 모를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일부 난민들은 도착하자마자, "독일 만세"를 외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때 난 차갑다고 평판이 난 독일인들에게 처음으로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때 카멜과 그의 큰 아들을 만났다. 사탕과 다과를 넣은 선물세트를 반갑게 받아들었던 그는 "고향을 사랑하지만 한달에만 2천번이 넘는 포격을 받는터라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그리스를 통해 보트를 타고 힘든 여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함부르크 및 베를린 여기저기로 난민캠프를 전전하던 그는 아내와 다른 아이들 세명과 다시 살림을 합쳐서 현재는 독일 정부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복잡한 서류정리를 끝내고 약속시간을 몇시간 훌쩍 넘긴 후에야 도착한 카멜. 전직 엔지니어라 학력이 꽤 높은 그는 영어를 능숙하게 해서 그간 나와 의사소통은 영어로 해왔는데, 이젠 벌써 독일어로 회화가 가능하고 실제로, 나보다 더 어휘가 뛰어나서 그간 게을렀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뮌헨에서 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시리아 친구, 모로는 전직 건축가였고 일년만에 독어 회화를 마스터하더니 벌써 취직해서 세금을 내고 산다. 그는 KBS '세계인'에도 잠시 출연한 적이 있다. 시리아는 훌륭한 교육제도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난민들의 교육수준도 꽤 높아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독일 사회에 양질의 노동력 제공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비디오게임에 열중해있던 큰 아이에게 "아직도 나를 기억하니?"라고 물었더니, "기억하긴 하는데 일년사이 못 알아 볼 정도로, 많이 삭은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답해서 부모와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많이 삭았단다"고 농담반 진담반 답했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잘 모르는 카멜에게 최근 박-최 게이트와 촛불집회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고, 현재 대통령 탄핵 절차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부디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결로, 시리아 난민들에게 전쟁이 유일한 해결방법이 아니고, 대통령 탄핵같은 헙법적 절차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뮌헨역에 도착했을 당시, 그는 자국의 독재자 대통령에 대한 엄청난 분노로 유혈전쟁도 유효한 해결책이라고 언급해서 나를 다소 불편하게 했었다. 그는 1971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아사드 부자(아버지 Hafez al-Assad와 아들 Bashar al-Assad)의 대를 이은 족벌독재체제와 비교하면, '한국의 경우는 그나마 천국이다'라고 부러워했다.
실제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인근의 사이드나야 감옥 (Saydnaya military prison)에서는 2011년- 2015년간 만3천여명의 정적을 교수형(絞首刑)에 처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매주마다 50명을 비밀리에 살해한 것이다.
시리아 치과의사와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고 서둘러 필름마켓이 문닫기전에 등록을 하러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역의 이름은 "사마리탄". 성경에 나오는 "굿 사마리탄 Good Samaritan"은 옷이 찢겨지고 맞아서 거의 반쯤 죽은 채로 길가에 내버려진 여행자를 돌봐주는 진정한 이웃으로 상징된다. 가끔, 한국인 유학생들이나 교민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난민들로 인한 불편함 내지 두려움이 대부분이고, 그들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는데 어떠한 방법으로든 도와줄 의향이나 계획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나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고위직 직함이 우리 한국 국민들을 국제사회의 "좋은 이웃"으로 자동적으로 존경받게 하지않는다고 믿는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살던지 시민 개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보다 더 힘든 이들과 함께 손잡을 때 한국인에 대한 좋은 평판이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뮌헨역에서 난민 환영을 하고 있을때 어느 난민이 내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다. 내가 한국이라고 하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하고 답했을때 그의 얼굴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같은 글로벌시대에는 국민 모두가 외교관이다.
* 시리아 난민 독일 도착 동영상
글‧사진|클레어 함 다큐멘터리 <정지된 시간> 프로듀서
*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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