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기업의 세계를 프랑스인 시각에서 바라본 “Ils sont fous, ces Coréens(이 한국인들은 미쳤다)” 라는 저서가 2월 25일 칼만-레비(Calmann-Lévy)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LG프랑스법인 사장직을 역임했던 에릭 쉬르데쥬(Eric Surdej, 59세). 저자가 글로벌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직접 체득하고 목격한 경험담을 전했다는 점에서 책자가 출판되기 전부터 프랑스 언론매체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필립스, 소니, 도시바에서 전자업무 20년 경력을 쌓은 에릭 쉬르데쥬가 LG전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이다. LG전자가 해외지사 현지인을 CEO로 임용한 첫 케이스였다. 에릭 쉬르데쥬는 2007년 LG전자 프랑스법인 부사장으로, 2010년 사장으로 전격 승진하여 2012년까지 프랑스에서 핵심전략사업을 총괄했다. 


아시아 문화에도 식견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저자는 현재 대형유통업체 프낙(Fnac) 스페인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에릭 쉬르데쥬는 ‘이 한국인들은 미쳤다’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재벌기업의 독특한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리한 냉혈동물들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주어진 업무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혹은 성공하기 위해 냉정한 계산과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사회의 원칙은 철저한 성과주의. 성과와 결과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이들 한국인들은 하루에 10시간 혹은 12시간 근무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인다. 


에릭 쉬르데쥬의 시선에서 그려진 한국재벌기업이라는 조직사회는 상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하는 수직적 종속관계,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심지어 사원합숙훈련장소는 사이비종교집단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 상부의 명령이 아랫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입증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이다.   


저자는 파리를 방문했던 회장님의 오찬에서 생긴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재벌그룹의 이미지에 걸맞게 격식을 차린 화려한 연회장에는 프랑스의 고위직 임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임직원들의 직급에 따라 엄선된 좌석배치, 회장님보다 먼저 자리에 앉거나 일어서는 일, 먼저 음식을 먹는 일, 회장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된 분위기에서 오찬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 오찬이 거의 끝날 무렵, 예상치 않은 작은 사건이 발생하는데, 한 임원이 슬쩍 핸드폰을 꺼내 은밀히 회장님을 사진 촬영했고 이를 알아챈 회장님 측근에서는 순간적으로 거북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럼에도 사교적인 웃음과 대화는 여전히 지속됐고 송별오찬은 순조롭게 막을 내렸던지라, 이 행사를 주관했던 저자는 속으로 안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저자는 사진을 찍은 임원을 당장 해고시키라는 명령을 전달받고는 진퇴양난의 난감함에 빠져들고 만다. 


에릭 쉬르데쥬의 저서에는 한국재벌기업체의 놀라운 조직력과 효율성, 사소한 부분까지 완벽한 전략을 짜고 일사분란하게 처리하는 추진력, 목적에 달성하려는 한국인들의 집념과 의지력에 대한 경이감도 담겨있다. 유럽대기업체들이 세계경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재벌기업을 본보기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마저 흘러나온다. 물론 저자가 바라본 한국사회에는 ‘빨리 빨리’ 마인드가 깊이 스며있다.


저서 ‘이 한국인들은 미쳤다’는 풍자와 유머를 가미한 가벼운 필체로 전체주의나 다름없는 한국재벌기업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이다. 


출간 전부터 화제에 오른 이 책은 하나의 신호탄으로서, 앞으로 한국의 국력과 경제력이 신장할수록, 한류물결이 거세질수록 외국인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사회의 민낯은 더욱 더 불거질 것으로 여겨진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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