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성(Château de Loches)은 슈농소 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성으로 앵드르 강 위 1600 피트 높이에 서서 로슈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9세기에 지어져 프랑스의 역사를 오래시간 지켜본 성이자, 샤를 7세가 애첩인 아네스 소렐에게 하사했던 성으로 고딕 플랑부아양 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
로슈 성의 역사
로슈 성은 목조로 된 건축물로 9세기경에 방어의 목적으로 처음 세워졌다. 11세기 앙주 백작 풀크 네라(Foulques Nerra)가 돌로 된 탑을 세우면서 요새화 되었고, 12세기에 앙주 백작과 프랑스 왕 사이의 권력 싸움으로 인하여 증축되면서 성의 규모가 커졌다.
1154년 앙주 백작 가문의 앙리 2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며 프랑스에 더 많은 영토를 소유하게 되었고, 카페 왕조는 이에 위기감으로 전쟁을 벌이게 되면서 루아르 계곡 일대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전쟁터로 피폐화 되었다. 이 때 로슈 성은 투렌(Touraine)을 지나 푸아투(Poitour)나 브렌(Brenne)의 통로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 지점이였기에, 앙리 2세는 탑과 성벽을 세우며 깊은 해자를 파 방어 기능을 더 강화시키면서 성을 지키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1204년 프랑스 왕 필리프의 승리로 다시 프랑스 영토에 속하게 되고, 1249년에 루이 9세가 로슈 성을 매입하면서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실의 소유가 되었고, 성은 왕족들의 주거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샤를 7세는 아름다운 로슈 성을 자신의 애첩인 아네스 소렐(Agnès Sorel)에게 선물하며 주거하도록 하며 자주 이곳에서 머물렀다.
샤를 7세와 아네스 소렐의 사랑
샤를 7세의 아버지였던 샤를 6세는 정신병 환자였고, 어머니였던 이자보는 자신의 친아들인 샤를 7세에 대한 모성애가 없던 여인으로 자신의 아들을 무시했고, 영국 왕 앙리 5세에 대한 편애가 심해 프랑스 왕권의 지위를 주려했던 여인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샤를 7세는 변덕이 심하고, 질투가 강했다고 한다.
불운한 가족사와 역사로 샤를 7세는 세상을 등지고 루아르 계곡에서 지내다, 잔 다르크의 도움으로 오를레앙에서 승리했고, 로슈 성의 접견실에서 잔 다르크의 설득으로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루며 정식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샤를 7세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네스 소렐에게서 찾았다. 아네스 소렐은 군인의 딸로, 로레인 공박 부인의 시녀였다. 당시 왕족의 시녀로 일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다.
아네스 로렐이 20세일 때 샤를 7세를 만났고, 샤를 7세는 그녀의 미모와 재기에 반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정도로 사랑했다. 아네스 소렐은 샤를 7세의 후광으로 궁정에서 왕비처럼 행동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며 정치에도 관여했다. 이때부터 왕의 애첩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이 프랑스 대혁명 전까지 이어졌다.
샤를 7세와 아네스 소렐 사이에는 3명의 딸이 태어나고 넷째를 임신한 아네스는 겨울에 원정길에 따라 나섰다가 2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005년 프랑스 과학팀은 그녀의 시신을 부검했고, 그녀의 사망 원인은 수은 중독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죽음에 관련하여서는 샤를 7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루이 11세가 부친에게 영향력이 큰 아네스를 죽였을 것이라는 의심과 함께 수은은 그 당시에 화장품의 주원료였기 때문에 암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네스 소렐이 죽었을 때,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샤를 7세의 슬픔도 그만큼 깊어 그는 아네스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그녀가 좋아했던 로슈 성으로 옮겨와 생 우르스 (Saint Ours) 예배당에 매장했다.
로슈 성의 이모저모
로슈성은 성주인 아네스 소렐이 죽은 이후, 샤를 8세와 루이 12세 때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들어서며 성의 규모가 다시 커져, ‘로슈 왕실 지구(Cité royale de Loches)’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 때 증축은 샤를 8세와 루이 12세와 결혼을 했던 안 드 브르타뉴의 영향이 크게 작용을 했다. 그녀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상징이자 문장인 흰담비 모양이 저택과 예배당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성의 남서쪽에는 20~30m에 달하는 탑들과 요새의 기능을 하는 망루 성벽이 있고, 36m에 달하는 높이의 동종은 15세기부터 프랑스 혁명기까지 정치범을 가둔 감옥이었다.
성 내부의 방들은 고풍스러운 가구와, 화려한 태피스트리, 그림, 무기들이 장식되어 있고, 샤를 7세 방은 왕의 접견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잔 다르크는 이곳에서 왕을 접견했다.
중세 정원은 동종을 감싸고 있는 정원으로, 감옥으로 사용되던 동종의 삭막함과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정원의 부드러움이 대비를 이루며 매력적이다. 정자에 앉아있으면 꿈의 시간으로 데려가 주며, 아름다운 요정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준비된 듯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상큼한 공기 사이로는 장미와 백합의 향기가 흐른다.
정원에서 보이는 루아르 지방의 전망은 지극히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마을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수도원 정원은 약초가 자라고 있는 정원이고, 농부의 정원은 텃밭으로 채소, 사과, 배, 산딸기, 블랙베리 등 다양한 과실주와 채소들이 자라는 곳이다.
성은 1861년에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프랑스 역사문화재로 등재되었다.
Château de Loches(Cité Royale de Loches)
주소 : 37600 Loches
Téléphone : 02 47 59 01 32
개방시간: 7/01-9/15 :9:00 - 19:00
* 9/16-9/30, 3/15-6/30 : 9:00 - 12:00 / 14:00 - 18:00
* 10/01-3/14 : 9:00~12:00 / 14:00~17:00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