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韓정부는 CAT 정체를 안밝히나?
美CIA ‘이승만 납치’의 불편한 진실
뉴스로=김태환 칼럼니스트
우리 모두가 “국부(國父)”라 부르며 존경해 마지않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60년 하야후 하와이 교포들이 성금을 모아 보낸 CAT 전세기를 타고 간 것까지는 대한민국 성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박사가 소위 하와이로 “자진 망명” 하신지도 (1960년 5월 29일) 어언 57년이나 지났다. 그 당시에만해도 정보의 근원이 지극히 제한 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온 시민들이 모두 어진 백성들인 까닭에 정부가 발표한대로 곧이 곧대로 믿어서 오늘날까지 “하와이 교포들 성금으로 보낸 CAT 전세기”로 떠나신 것으로 알고 “지진 하야”와 마찬가지로 “자진 망명”도 아직까지 사실인양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박사를 권좌에서 축출하고, 하야해서 이화장에 있던 이박사한테로 구여권 인사와 특히 군부 인사들까지 몰려들어 그가 다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시도할지도 모른다고 우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박사의 해외 퇴출을 자신이 사실상 주도했다고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의 차석 대사였던 마샬 그린(Marshall Green) 씨가 미국 외교관 교육 훈련 협회(ADST) 회고 회견기에 기술하였다.
특히 회견기의 축약판 <The Fall of South Korean Strongman Rhee – April 26, 1960>에서 그는 노골적으로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권좌에서 물러나고 CIA에 의해 비행기로 남한에서 퇴출되었다 (5월 29일)고 밝혔다. (Rhee stepped down on April 26 and was flown out of South Korea by the CIA.) 주1
그린 씨는 이박사 권좌 퇴출뿐만 아니라, 하야후 미국으로의 납치 연행에 성공하여 미국무부내에서 쿠데타 고수(Coup Master) 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인도네시아, 호주) 미국 국익에 맞게 일을 매끈하게 처리해서 CIA 출신이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필자가 이번에 다시 CAT 문제를 제기하게 된 이유는 앞으로 집필 예정인 “냉전시대 이야기”의 일환으로 “냉전 기간 전후에 일어난 항공기 추락사”(주2) 를 살피던 중에 CAT 항공사의 항공기들이 스파이 작전에 실제로 가담해 비밀 작전 수행중에 격추당한 실례를 보게되었기 때문이다. 이박사도 미 CIA 작전에 걸려들어서 각처에서 격추당한 동종의 비행기에 실려서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납치 당해 가면서도 당시 노망끼로 정신이 혼미해 미국의 용의주도한 작전에 말려들어 두어달 하와이에 요양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전 월간조선 기자였던 이동욱씨는 성금을 모아서 전세기를 보내셨다는 하와이 교포들을 접촉했으나 모두 작고하였으며 당시 하와이 총영사였던 오중정씨를 통해 성금이 거두어진 적이 없었으므로 하와이 교포가 전세기를 보낸 적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CAT 전세기의 정체는 무엇이고, 비행기 전세 대금은 누가 지불했을까? 가 다음 의문점인데, 그 이후 문제는 그(이동욱 씨)가 다루지 않았다. (아니면, 알아보고도 차마 그 부분은 입을 꼭 다물었는지 모르겠다.) (주3)
마샬 그린 증언의 진위 여부는 CAT 항공사의 정체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구글(Google.com)로 Civil Air Transport 를 검색하면 처음엔 자유중국의 민간 항공사로 출발했으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접수해서 극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비밀 작전에 투입했다고 나온다. 미국 CIA 의 위장회사인 것이다.
애초부터 이박사의 비민주적 독재 통치 행태에 비판적이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9년 5월 하순부터 이박사의 노망기가 심해져서 국정을 30대 초반의 비서가 프란체스카 여사와 상의해서 처리한다는 한국 현지 CIA 책임자의 보고를 받는다. 아이크는 이박사의유고 상태를 심각히 여겨서 이 대통령에게 그와 절친한 월터 져드 하원의원 (공화 미네소타)을 비밀 특사를 보내 (1959년 10월 하순)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2선에서 후견하도록 종용하였으나 이박사는 웃고 넘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공식 외교문서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비밀 해제된 외교 문서에만 목을 매단 소위 학자들은 알 도리가 없고 비밀 특사 또는 비밀 작전에 직접 관여한 당사자의 증언(록)에서만 사실을 확인 할수 있다.
회고 회견기는 저명한 전직 외교관의 생애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겪었던 중요한 업적이나 사건들을 기술하는데 그린씨의 회견기는 1995년 3월 2일 그가 79세일 때 외교관 생애 전체에 관한 회견을 찰스 스튜어트 케네디 씨와 행해졌고, 이박사 하야와 출국에 관한 한정된 축약본은 1988년에 동일 인물과의 회견을 통해 이루어졌다. (주4)
그린씨가 솔직하게 진술한 사건 기록을 수많은 학자들이 읽었을텐데 왜 아직까지 이 박사의 출국이 “망명”이 아니고, 사실상 “위계에 의한 납치”였다는 점을 밝히지 않는지 궁금하다. 한국 정부는 잘못된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은폐해 나가려는지 자못 통탄스럽다.
끝으로, 앞에서 얘기한 CAT 항공기들이 미국 CIA 작전에 참가했다가 격추 당한 사례를 “냉전 기간 전후에 일어난 항공기 추락사”에서 살펴보면서 이박사 부처의 출국도 이와 같은 작전의 한 면모였음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사례 1: 1952년 10월 29일 CAT 소속 C-47 수송기가 서울을 이륙하여 중국 지린성에 암약하던 자유 중국 스파이를 데려 오려는 작전을 수행했는데 지정된 장소에 접근하려 내려가는 도중에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중국 군경의 소화기 공격을 받아 안투시(市) 인근에 불시착하였고 공작기는 즉시 소각되어서 조종사 로버트 스노디와 노만 슈와츠는 화상으로 사망해서 인근에 매장당하고 CIA 공작원 죤 다우니와 로버트 펙토는 체포되어 간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근 20 여년간 옥중 생활을 하며 주기적으로 심문을 받았다. 그런데 1972년 닉슨 방중 이후 펙토는 석방되고 다우니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간첩 행위를 인정한 다음인 1973년에 석방됐다. 사건 발생 시기는 한국전쟁기였으나, 그들이 군용기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또한 군인 신분이 아니었기에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없어서 휴전이후 석방될 수 없었다.
사례 2: 제1차 월남전 (1945년 태평양 전후부터 1954년 남북월남으로 분단되기전까지의 프랑스에 대한 월남 독립전쟁) 시기 동안 미국은 월남의 식민 체제를 연장하려는 프랑스에 군수 물자를 제공했는데, 이들 수송에 CAT 소속 수송기들이 주역을 맡았다. 그 유명한 디엔 부엔푸 포위 작전중인 1954년 5월에 공수 작전을 담당했던 CAT 소속기 한대가 월맹군의 대공포화에 피격당하여 조종사 두명(제임스 맥가번과 월러스 버포드)이 사망했다. 맥가번의 유해는 추락 장소 인근에서 2002년에 발굴되어 2006년에 신원이 확인되었다.
미국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의 유해를 찾는데 각별한 정성을 들이고, 아직도 북한 지역에 사망했으나 유해를 못 찾은 군인들의 유해 일부라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은 당시에 프랑스 군에 각종 무기를 포함한 군수품을 제공했으나, CAT 라는 위장 회사를 활용해서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사례 3: 미국은 1950년대 후기에 인도네시아내의 반 수카르노파에 무장을 지원하고 정부군 지역을 CAT 소속 비행기로 폭격도 감행했다. 1958년 5월 18일 몰루카의 암본 섬에 있는 비행장의 정부군에 폭탄을 투하하고 귀환중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대공포에 맞은 B-26B 1대가 격추되고 조종사 앨런 포프와 비행운항사 헤리 란퉁이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았으나, 1962년에 석방되었다
주 1: The Fall of South Korean Strongman Rhee – April 26, 1960 -- http://adst.org/2013/04/the-fall-of-south-korean-strongman-syngman-rhee-april-26-1960/ 미국 외교사의 순간들 (Moments in U.S. Diplomatic History) 의 시리즈의 일부로 작성됨
주2: Aircraft Downed During the Cold War and Thereafter -- http://sw.propwashgang.org/shootdown_list.html
주3: http://wildkim.tistory.com/496 이승만은 하와이에 망명한 적이 없다
주 4: http://adst.org/wp-content/uploads/2012/09/Green-Marshall.pdf
The Association for Diplomatic Studies and Training (ADST) 의외교사 구술 프로젝트 Foreign Affairs Oral History Project 의 일환으로 촬스 스튜아트 케네디와의 회견으로 작성함.
‘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김태환의 한국현대사 비화’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